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다. 어떤 대상, 나의 반쪽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으로 솟구칠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책 소개]

  2010년 6월. 나는 요즘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니 무척이나 어렵다. 사랑한다고 머리로 생각할 수는 있어도 가슴속으론 아직도 갑작스레 뭉클하고 속으로 삼키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릴 때도 있고, 여튼 정의내리기가 여간 쉽지 않은 것이 사랑이었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무척이나 서투른 사람이다. 사랑에 서투른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니 말 그대로 좌충우돌 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다. 나는 그래서 책을 꺼내들었다.『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고전 평론가 고미숙씨의 연륜에 비친 사랑의 진실한 모습을 알고 나 또한 건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고미숙 선생님은 사랑도 애써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절대 사적인 것이 아니며 사랑으로써 발현되는 욕망이 모두 우주적,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는데 어찌 그것을 배우려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담아두려고만 하는지 독자들에게 되물었다. 속으로 담아두는 것 자체가 무지의 소치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의 지식인, 인텔리들에게 나타나는 변태적 성 욕망은 젊은 시절, 그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흔히 그들이 밥 벌어 먹고 사는 지식처럼 배우려 들지 않고 그저 그렇게 넘어간 데서 비롯된 욕망의 변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 도대체 어찌 배워야 할까? 고미숙 선생님이 말하는 사랑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고미숙 선생님은 사랑에 대해 말하기 전, 먼저 우리 시대의 왜곡된 사랑에 대해 꼬집어 말했다. 일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만과 편견에 대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것. 예전의 나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 싶다. 좋지 않은 추억이 있던 어린 시절, 콤플렉스에 쌓여 흔히 드라마에서나 보일 법한 순수한 것인지 순진무구한 것인지도 모를 그런 아이였다. 사랑에 대해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하는 사랑을, 무지한 나는 그 ‘고유의 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배우려 했고, 내 지난 젊은 시절. 같잖은, 연애 경험 같지도 않은 경험 속에서 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힘들어했다. 왜 힘들어했는지 생각해보았더라면 답은 빨리 나왔을지도 모르건만. 그리고 그 조언은 수십 가지였으나 흔히 말해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느니 이렇게 행동하면 여자들이 좋아한다느니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조언을 주는 이들 모두 사랑에 관해서는 자칭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인물들이었다. 고미숙 선생님의 사랑에 대한 오만과 편견 중에 인상 깊었던 통찰은 소위 ‘선수’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재정의였다.

"이들은 연애를 스포츠 경기나 게임 같은 걸로 간주한다. 그래서 늘 경쟁모드로 임할뿐더러,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해 안달복달한다."

-p.26, ‘선수’들의 ‘비열한 게임’ 중
 

"선수들의 특징은 자기가 연애와 인생살이에 관해 상당한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가장 멍청하고 무능한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온갖 잔머리를 굴리느라 자신의 원초적 욕망을 다 거세시켜 버린 탓이다. 즉, 존재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원초적 에너지를 완전 ‘침묵, 봉쇄’시켜야만 이따위 짓거리를 할 수 있다."
-p.28, ‘선수’들의 ‘비열한 게임’ 중


  20대라는 청춘 속에서 무방비의 자유 속에 어찌할 줄 모르던 20대 초반 시절. 흔히 존경해(?) 마지 않던 친구, 선후배들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사랑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사랑에 관한 또 다른 오만과 편견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말은 바로 ‘시절인연’ 이었다. 나는 그동안 그 같잖은 연애 경험 같지도 않은 경험 속에서 참으로 많은 원망과 감정적 분노심 속에 지내왔다. 흔히 ‘두고 봐라’ 라는 식의 마음가짐 속에서 그 감정적 굴레를 벗어나고 있지를 못하고 있었다. 고미숙 선생님은 실연이나 또는 차이거나 하는 감정을 위로, 위안 받아봤자 우리에게 득 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며 분명한 자기 성찰 없이는 또 다른 실패의 연속점에 서 있을 뿐이라고 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시절인연’ 이었다. 사계절 속 봄이 오고 가고, 또 여름이 오고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시절인연'. 즉 때마다 자연스레 찾아오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었다. 차거나 차이거나에 관계없이 시절이 어긋나면 인연이 아닌 것일 뿐이고, 분명히 누구에게나 시절인연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의 시작이 별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인연이 끝나는 것에도 별 이유가 없다는 것. 굳이 말하자면 그저 시절인연이 끝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무지하게 내 자신을 막연히 학대하며 내 인연 속 지나간 사람들을 감정적인 분노로 대해왔는가. 또한 내 자신을 애써 스스로 위안하며 ‘그년들은 벌 받을거야’ 라는 식의 내 자신에게 마음의 훈장을 주어왔었는가. 말마따나 그저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지나갔으면 그 뿐이었을 것을 말이다. 또한 얼마나 많이 바래왔으냐는 말이다. 대가성을 바라는 순간 딱 그만큼 잉여가 발생한다는 논리와 같은 말로 희생이 아닌 교환이자 거래로 변질되는 것만큼, 나는 얼마나 주는 만큼 받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느냐는 말이다.

나는 깊이 반성했다.

내가 무지했던 것에 대해, 무지한만큼 세상이 말하는 대로 가감 없이 받아 들여만 왔던 것에 대해, 그리고 내 자신을 위안 삼고자 상대방을 내 감정적 분노심 속에 집어넣어버리는 나의 지독했던 이기심에 대해.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존재의 궤적을 만든다.”
-p.145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마음가짐을 같이 비교해본다. 책을 읽으며, 그리고 ‘제대로’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 순간, 나는 크게 동감한다.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나 또한 지금 이 순간 제대로 사랑하며 매번 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무의식적으로 발동하는 호감의 문제이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사랑의 지속성과 연관된, 어떻게 사랑해 나갈 것이냐는 바로 내 자신의 문제. 내가 얼마나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이라는 것을 매번 가슴으로 느껴왔기 때문이다.

“요즘 커플들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는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 터.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의 내부는 비어간다. 결국 연애를 할수록 몸으로부터의 소외가 일어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는 셈!”
-p.77, '매뉴얼만 있으면, 만사 OK!' 중

“사랑이란, 상대를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가치가 보다 온전한 것으로 더욱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장벽이 없이 상대를 마주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p.189 , 「농담의 ‘애살론’」인용


  사랑하는 사람과 있는 순간, 행복한가? 라는 물음에 yes라고 말한다면, 다시 그 사람과 있을 때 내적 충만감이 가득 채워지는가를 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온전히 빛난다고 느끼고,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자신의 내적 변화가 진정 찾아오고 있느냐는 말은, 사랑의 순간 떨림을 넘어 사랑의 지속성으로 인한 그윽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최고의 교훈이었다.
 


또한 인정해야 한다. 사랑은 변한다는 것을. 상황과 특성에 따라 한결같아야 하는 사랑의 모습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사랑은 변해간다. 처음 이 사람을 만났을 때 가슴 떨림과 시간이 지난 후 이 사람을 만날 때의 가슴 떨림은 분명 다르다. 가슴의 떨림이 적고 많고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물론 좋고 나쁘고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긍정적인 방향에서의 다른 느낌. 새로운 떨림이다. 물론 이런 새로운 떨림. 그윽한 행복감이 계속 오도록 해야 한다면 사랑의 지속성을 계속하기 위한 나 자신의 문제에 의식적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것도 함께 덧붙이면서.

     2010년 6월. 나는 요즘 사랑을 한다. 사랑이란 어쩌면 누군가의 조언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온전히 생각하고 느끼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 갈구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시대가 말하는 사랑이 아닌 자신의 사랑을 위한 모든 청춘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고미숙 선생님께서 동양고전평론가인만큼 사랑에 대한 시조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옛날이든 오늘날이든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항상 같았구나 라는 통찰을 주는 조선시대의 짤막한 시조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부터 보이는 것은 예전과는 같이 않더라.

- 조선 정조시대. 문인 유한전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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