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의 나열이 주는 다양한 느낌들이 있다. 단순한 명단이 묘하게 불러 일으키는 감정들... 학창시절 교실 뒤에 붙은 전교 석차 명단을 보면서 얘네는 뭐하는 애들이냐.. 싶었던 이질감도 생각이 나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 지원했던 대학교에 찾아가 내 이름이 없는 합격자 명단을 우러러 봐야했을 때 부러움과 자책으로 괴로웠던 기억도 떠오른다. 한창 rock을 듣던 20대 때는 각종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보며 두근두근 흥분에 휩싸였고, 이후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여러 논객들의 글을 찾아 읽게 되면서 칼럼 모음집 표지에 나란히 적혀있는 이름들 앞에서 참 든든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이렇게 1명도 아닌 무려 12명의 대작가 이름들이 줄지어 있는 한 권의 책... 사뭇 경외심을 갖게 한다.

 

경외감을 주는 이름들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우리와 다를 게 없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달리 뭘 어쩌랴. 타고난 재능은 타고난 재능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신이 주신 선물이라면 이들이 얼마나 그 선물을 잘 받아 쓰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의미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선물을 잘 쓴다는 건 저절로 주어진 것이라고해서 그 행운에 안주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노력을 거듭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소질만을 믿고 우쭐해하거나 우연히 찾아올 1%의 영감을 기다리며 99% 나태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영감을 기대하기는 커녕, 포크너는 "영감이 뭔지 모르며 영감에 대해 들어는 보았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뭔가 일상이 여유롭고 머리만 굴려대는 반백수같은 생활이 어울릴 법한 직업이지만 그들의 일정은 빡빡했다. 하루키는 작품을 쓸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달리기나 수영을 하고 하루 꼬박 6시간을 작업한다. 파묵은 일상의 감정과 작품의 독창성이 섞이지 않도록 독립된 공간을 마련해 그 곳에서 하루에 열 시간씩을 보낸다. 필립 로스는 아침, 오후, 밤까지 하루 종일 글을 쓰고 그렇게 2~3년을 보낸 이후에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이언 매큐언은 매일 9시 30분에 일을 하러 나가서 평균 600 단어를 쓰고 "운이 좋으면" 1,000 단어까지 쓴다. 헤밍웨이도 매일 쓴 단어의 갯수를 기록함으로써 글쓰는 생활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컨트롤했다.

 

도표 위에 쓰인 숫자는 매일 쓴 단어 수를 뜻하는데, 이 숫자는 450, 575, 462, 1250, 다시 512와 같이 다양하다. 헤밍웨이가 평상시보다 일을 많이 한 날 써놓은 큰 숫자는, 그가 다음 날 멕시코 만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한 것이다. (p.395)

 

건강하지 못한 몸에서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운동을 하고, 최소한 작업기간 중에는 술을 멀리 하려는 노력도 한다. 또한, 소설 한 편 잘 됐다고 만족하지 않으며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의 기존 작품들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한다. 자기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언제나 지금 쓰는 소설이 첫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매달린다. 구조물을 세웠다가 부수고, 글을 썼다가 찢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지웠다가 다시 쓰고, 쓰고, 또 쓴다. 많은 사람들이 재능을 타고 나지만 모두가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면, 그토록 부단한 노력이 따랐기에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선물을 단 한 조각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이 작가들 덕분에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무언가 대단한 비법이라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던 이 엄청난 작가들. 서가에 5만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너무 많이 알 필요는 없다고 농담처럼 진담을 하는 에코도, 서서 글을 쓰는 습관답게 단호한 돌직구를 날리는 헤밍웨이도, 특별한 비기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인터뷰는 그저 자기가 잘 할 수 있고 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내어놓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오래도록 고된 글쓰기 노동을 해온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고, 많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고, 실패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단어와 문장과의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굳이 대가들의 비법을 꼽으려고 한다면 바로 이 고집만이 자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책은 다 새로운 책이지요. 예전에 써본 적이 없으며, 써가면서 스스로에게 글 쓰는 법을 새롭게 가르쳐야만 하지요. 제가 과거에 책을 썼다는 사실은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항상 초심자라고 느끼며, 계속해서 똑같은 문제, 똑같은 장애물, 똑같은 절망에 부딪히지요. 작가로서 너무도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너무도 많은 형편없는 문장과 생각을 지워버리고, 너무도 많은 가치 없는 부분들을 버리면서, 마침내 배우는 것이라곤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니 작가란 직업은 참으로 겸허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폴 오스터, p.185)

 

우리 모두는 우리가 꿈꾸는 완벽함에 필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가능한 일에 얼마나 멋지게 실패하는가를 기초로 우리들을 평가합니다. 저는 만일 제 모든 작품을 다시 쓸 수만 있다면 더 잘 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확신이야말로 예술가에게 가장 유익한 조건이지요. 이것이야말로 계속해서 글을 쓰고 다시 시도하는 이유입니다. 예술가는 매번, 이번에는 글을 성공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요. 물론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만, 이렇게 실패하는 것도 유익합니다. 일단 자신이 품고 있는 이미지와 꿈에 필적하게 써내는 데 성공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목을 따거나 완벽함의 정점에서 자살을 위해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윌리엄 포크너, p.437~438)

 

그들의 이야기에는 소년의 순수와 청년의 열정과 중년의 지혜와 노년의 관록이 넘쳐 흘렀다. 이 사람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구나. 이렇게 쓰는 책이었구나. 내가 읽는 그들의 책 속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담겨 있었구나... 책 한 권이 예사롭지 않다. 책에 대한 태도를 가다듬어 좀 더 높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평생을 내면 천착에 쏟아야 할 운명을 지닌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책.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 신의 선물이듯 우리 독자들에겐 이들의 존재가 신의 선물이지 않을까. 아래 헤밍웨이의 말처럼,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이 위대한 작가들 덕분에 우리의 삶은 미처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크고 작은 의미들을 찾게 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일어난 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알고 있거나 알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재현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요. 당신은 그것을 살아 있게 할 수 있고, 만일 당신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면 그것에 영원성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이유이고 우리가 아는 한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모든 이유가 있다면, 그런 이유는 어떤 것일까요? (어니스트 헤밍웨이,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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