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91 | 19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를 잊어 주세요. 제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아십니까? 다음 블로그의 다음 주소로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정말! 정말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많이 유명한 사람입니다. 지난 주에 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보도가 있었습니다. 아내를 살해한 후 그는 도주하여 거의 2달 만에 사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가 평소에 남겼던 글이 아직도 인터넷 상에 떠돌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글을 그대로 두는 것이 이상하지만 유가족이 삭제 요청을 하지 않는 이상 그의 글은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망각하고 싶지만 망각되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죠. 그의 블로그에 가면 수많은 악성댓글들이 달려 있습니다. 입에 담지 못할 부끄러운 만들이 온라인 상에서 아무렇게나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황덕하라는 분을 무조건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살인과 자살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와 별단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을 두고 결과만보고 비판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루빨리 이 블로그가 폐쇄되기를 기대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유가족들의 책임이니 별도리가 없습니다. 그분을 잊어주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며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김춘수님은 이렇게 노래했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눚짓이 되고 싶다.' 분명 아름다운 싯구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식되며 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구이니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과거를 보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좋겠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부분을 지우고 싶은 것이죠. 황덕하씨는 자신의 전생애를 지우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추한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처럼 인터넷상에 유령처럼 떠도는 그의 글은 아무래도 그가 편히 잠들지 못하게는 것입니다. 

잊혀진 권리가 고인들에게는 있는 것이죠. 아니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연예인들은 사사건건 대중들의 조명을 받고 관심의 대상이죠.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이 그들의 꿈입니다. 그들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악몽이요 옌예인으로서의 생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기억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칩니다. 어떻게 해서든 잊혀지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악몽이기도 합니다. 기억은 모든 이들에게 힘겨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원제는 삭제: 디지털 시대의 망각의 미덕입니다. 미국에서는 300달러는 내면 죽은 사람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들을 모두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재미있죠. 꼭 필요한 장의사가 아닌듯 싶습니다. 저도 죽고 난나면 제가 남긴 글들을 삭제해주는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망각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망각을 이겨내기 위하여 인간은 최고의 멋진 기술을 하나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자'랍니다. 

문자는 망각을 막아내고 기억을 돕는 최고의 수단이죠. 기록된 것은 일단 남게 됩니다. 초기의 기억보존은 노래와 춤 그리고 절기 행사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절은 이러한 기억장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하자 좀더 체계적인 장치가 필요하게 된 것이죠. 문자를 바로 이러한 요구의 확실한 답이었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서는 기록이 '증언'이라고 표현하고 있더군요. 말은 언제나 변형이 가능하지만 기록된 문자는 그렇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법정에서는 문서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모릅니다. 왜곡과 변형을 막는 최고의 수단이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기록한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이었습니다. 11세기 수도원에서 일했던 필경사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필경하는데 바치고 22년이나 공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60권 남짓의 책밖에 필경하지 못했습니다. 기록에 남긴다는 것이 이만큼 힘이들고 돈이 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종이가 발견되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기록은 넘치기 시작했고, 가치가 적은 것들은 시중에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클릭한방이면 수천페이지의 글도 아무곳에 도배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기억은 이제 '가치'가 아닌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들어오는 스팸이메일과 문자들, 수많은 팜플렛과 정보지들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 버리고 선별해야하는 고통은 안겨주고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는 정보의 쓰레기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기억할만한 가치가 전혀없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기억술사]라는 책에는 기억의 천재인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죠. 그러나 그안에서 기억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 고통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찾고 싶어서 떠났던 여행이지만 결국 실망하고 돌아온 [귀향]은 기억이 결코 진실만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신이 기억하고 상상했던 아버지가 전혀 다른 존재로 현실 속에서 나타날 때 충격이란....

 

 

기억은 날조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럼에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는 것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날아오는 문자들은 모두가 나를 이용하고자 것들이죠.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으로 개인을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빠져나가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구가 오늘도 불일듯 합니다. 

 

이젠 나를 잊어 주세요. 제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억이란 이름으로.... 

 그냥 우연하게 접하게 된 책들이다. 그러나 읽고 나서 우리 주변에도 아직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 중의 한가 옛 다리들이다. 현대화된 문명 속에서 잊혀져 버린 느린 여유를 주는 풍경이다. 한 사람이라야 겨우 건거는 곳이지만 아직 건널만 하다. 서두르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작 느리지도 않다.

 

 

 

 

 

 

 

 

대원사에서 출판한 책들은 우리의 것들을 담았다. 서낭당, 솟대, 농기구, 우리네 부엌... 정개 또는 정지라고 불렀던 부엌의 모습이 많이 그립다. 한쪽에는 장작이 있도, 한쪽에는 솥단지가 걸려지 있는 풍경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추수를 마치고 동네 어른 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지붕갈이를 할 참이다. 초가집에서 살았던 시절 지붕갈이는 큰 행사였다. 모두들 좋은 짚을 골라 엮은 다음 지붕갈이를 했다. 일년이면 모두 썩어버리는 짚의 성질상 해년마다 지붕갈이는 해주어야 했다. 풍성한 가을 찬도 많이 준비해서 그렇게 지붕을 갈았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양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모두가 장수를 기원하거나 복을 비는 모양이다. 국화, 대나무, 학, 용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기원했던 조상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젠 추억처럼 흘러가 버린 것들이지만 아직 우리곁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고있다.

 

 

 

 

 

 

 

 대원사의 책들은 모두 놓치고 싶지 않는 우리의 과거와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령화 사회, 문제인가 기회인가?


우리나라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노령화지수는 1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의 노령인구의 백분율로 나타낸다. 우리나라 노령화 지수는 1995년 25.8에서 2000년에는 35로 크게 높아졌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이미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령화 또는 고령화는 많은 사회적인 변화와 문제를 만들어 내고있다. 1995년 고령인구 1명을 청장년 12명이 부양을 했으나 2000년에는 9.8명으로 감소하여 부양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비해 유소년 1명은 1995년에는 3.1명을 부양했으나 2000년에는 3.4명으로 증가하여 부양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줄고 65세 이상의 노인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고령화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단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앞서서 밝힌 것처럼 부양해야할 노인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고령화로 인해 경제성장율이 2020년에는 3.2%로 떨어지고 2030년에는 1.7%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것은 고령화가 문제는 넘어 재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의 문제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양해야할 노인들이 많아짐으로 결혼을 해도 출산을 지연하거나 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고령화는 더욱 급격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고령화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는 조기퇴직으로 인해 거리에서 배회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요즘 거리나 지하철 또는 쌈지공원 등에는 노인들이 모여서 장기를 두거나 할 일없이 거니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만을 양산하는 것은 아니다. 고령화는 전문화를 뜻하기도 한다. 지난해 L기업에서 부장으로 지내다 퇴직한 김씨는 현재 중소기업의 비슷한 직장에 재직하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대기업보다 연봉도 작고 일도 많지만 아직 자신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 기업은 전문인으로 수 십 년을 대기업에서 근무한 김씨를 적은 연봉으로 다시 맞이함으로 많은 이득을 보았다. 그동안 전문 기술인이 적어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김씨를 얻음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2년 전 모 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최씨는 현재 강사로 활동 중이다. 공직에 몸을 담고 있을 때는 공직자로서 체면도 생각하고 시간의 여유도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있다. 40년이 넘는 교직 생활을 해온터라 학부모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해주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한 학원이나 학부모 단체등에서 학업관련 강의를 요청해 와 예전보다 더 바쁘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고령화는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경륜이 함께 아루어진 전문가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새로운 인생이 되고 있다.


인생 후반전에 자작나무만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된 분도 있다. 주인공은 사진가 원종호씨다. 그는 미술학도였지만 젊은 시절 목장에 반해 목장을 만들고 후에는 사료 판매상으로 지내다 백두산에 오르다 자작나무에 반하게 된다. 자작나무를 심고 자작나무를 찍는 사진가로 변신하게 된다.


노인의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지 오래다. 이제 노인에대한 창조적 시각으로 문제들을 해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서로 머리를 싸매야 할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jy 2011-09-1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령화사회를 문제니까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딘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나도 저런 시골에서 저런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농촌에서 20년을 살다 도시로 올라와 정신 없이 20년을 지내왔다. 바쁜 일과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요즘은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절로난다. 그래서 자꾸 시골로 내려가고 싶어진다. 쉼과 여유가 있는 그런 시골 말이다. 우연히 시골길을 가다 본 전원주택이다.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도 준2층이 자리한 집 모습이 내가 그리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전원주택을 소개한 책 몇 개를 골라 보았다. 전원 주택을 지으려면 마음에 생각을 풀어낸 장소와 설계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는 전원 주택은 1층은 화로가 있고, 거실과 창문이 시원하게 자리한다. 내부 계단으로 만들어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면 2층에 침실과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넓직한 테라스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고 쉴 수도 있다. 앞 마당에는 넓다란 잔디가 500평 정도 평쳐져 있고 뒷 마당으로는 자그마한 텃밭이 자리하고 있다. 고추도 심고 상추도 심어 유기농 농사를 짓는 것이다. 철마다 열리는 과일이 담장을 대신해 자리하고 있으며, 한쪽 구석에는 자그마한 수영장도 있다. 꿈같은 집이다.  텃밭을 가꾸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찾아보니 다행이 여러원의 책이 검색된다. 굳이 시골이 아니라도 작은 텃밭을 가꾸는 재미는 유별나다. 아 그리워라... 고향이여!

  

 

 

 

 

 

 

돌아갈런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런 곳에 살고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jy 2011-09-1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자두,복숭아,앵두,매실 열리는 과실수들을 이뻐라하구요~ 뒤란에 장독대와 지하창고, 선인장새끼치기,화려한 꽃밭~ 이런거 꿈꿉니다^^;
 

불편한 그 남자, 무엇 때문일가? 

 

수희씨는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남자 친구인 명철이는 찾아갔다. 그랬더니 평상시 답지 않게 짜증을 내면서 왜 이 시간에 나를 찾아 왔느냐고 따지 묻는 것이었다. 시간을 보니 아직 밤10시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수희씨는 보통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밤9시는 이른 저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명철이의 이외의 반응에 놀란 수희는 마음이 상해 집으로 돌아갔다. 명철이는 수희의 예의 없는 행동에 화가났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아는 사람이라고 찾아 온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명철이는 평소에 시간관리를 잘하고 밤10시가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잠자리에 들고 아침 7시가 되면 일어나느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수희와 명철이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사람마다 이처럼 자기만의 보이지 않는 생활 패턴과 성격에 의해 움직여 지고 있다. 수희씨는 자신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명철이가 못되게 보였고, 명철이는 아무렇게나 찾아오는 수희가 문란해 보인 것이다. 이것은 서로의 성격이 다르고 삶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대부분이 관계중심형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남자는 주도형과 분석적 성경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루종일 이야기하는 것을 지겨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따분해하고 힘들어한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거나 성취할 무엇인가가 있으면 남자들을 쾌감을 느낀다. 여자들은 안정적인 반면에 남자들은 모험을 좋아하고 스릴이 있는 게임을 즐긴다.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인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두를 절대화 시킬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 이러한 상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좌뇌만을 주로 사용한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자는 좌뇌와 우뇌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반면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것이 특징이다.  산만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남자들은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하지 못하고 한 곳에 집중하는 능력이 탁월한 반면, 여자는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해내는 만능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자들은 여자를 논리적이지 못한 열등한 존재로 본 것이 역사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여자는 멀티형 성격으로 인해 이 시대가 원하는,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상담을 하면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어떤가? 한가지 일에 지나칠 만큼 집중하고 투자?를 하다 시대를 읽지 못하고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답은 여자가 어떤존재인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91 | 19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