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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ㅣ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덥다,는 말로 형용되지 않을 만큼 푹푹 찌는 한 여름의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을 이른바 ‘추리소설’을 읽는 시간으로 정해놓으며 그 시간에만 추리소설을 읽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멀티로 책을 읽었던 때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나,) 아마, 으스스한 시간에 읽는 것으로, 책의 묘미를 더 느껴보고자,는 것이 더 컸던 까닭이었음은 아니었을까. 나에게 있어 추리,라 불리는 장르는, 그 어떤 장르와는 확연하게 다른, 블랙홀과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편 그 자리에서 읽는 게 대부분이어서 읽고 난 후면 어질함이 남아있기도 했었다. 그것이 바로 (적어도 나에게는) 추리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 지금와서, 그동안 추리소설에 관해 ‘고정관념’이라 불릴 만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내가 읽어오던 추리소설과는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작품, 스틸 라이프.
캐나다 퀘백주의 작은 마을 스리 파인스,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평화로운 그곳에서 ‘제인 닐’이라 불리는 노부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평소 온화하고 선량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죽음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누구랄 것 없이 모두 꽂힌다. 그녀의 죽음은 때마침 사슴 사냥이 빈번한 시기였기에 사슴 사냥꾼의 오발로 인한 실수라고 판단되어지는 듯 하지만, “(…)무기는 화살로 보입니다. (…) 제가 그렇게 ‘보인다’고 말씀드린 것은 어떤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입니다. 과실이었다는 추정에 반하는 사실이니까요. 자수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우리는 살인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라 말하는 가마슈 경감 에 의해 사건은 어느새 마을 사람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방식의 추리가 된다. 과녁 쏘는 화살로 무얼 죽이려면 엄청나게 운이 좋아야 할 겁니다. 아니면, 운이 나쁘든지. (…) 과녁 쏘는 화살은 실촉이 아주 작아요. 총알 끝과는 다르죠. 하지만 사냥용 화살은 전혀 다릅니다. 라고 말하는 활쏘기 클럽의 사람들. 이는 의도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포커스를 맞추고 쏘았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인 닐이 죽음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자는 누구인가.
사람들과 함께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가마슈 경감은 잔잔한 강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자녀와의 갈등이라던지, 부부의 불화라던지, 경제적 어려움_ 그것과 사람들은 무리 속에 얽혀 있었다. 이에 따라 저자는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 사고를 가진 인물 대신, 마음이 따뜻하고 세심하여 감성적 사고가 먼저 작용할 것만 같은 가마슈 경감을 내세움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모습과 마주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 된다. 추리 소설이라 하는 장르에서 그들의 상처를 보고 또 위로해준다,라는 거. 언뜻 전에 읽었던 미나토 가나에의 「야행관람차」도 떠올리게끔 만든다.
여느 추리 소설이 그렇듯, 사건이 있은 뒤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이도 마찬가지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와는 약간 다르다는 점도 명시해둬야겠다. 이는 사건보다 사람을 중심에 놓았고, 그로 인해 사건이 풀리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서두름이 없다. 따라서 나로 하여금 관찰자로서 범인을 좇는 가마슈 경감의 자취를 따라 발걸음을 내딛던 내 두 발이 민망함을 느끼며 멈칫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것만,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적어도 내게는 에러였다. 너무도 세밀한 묘사들에 따분함마저 드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으니까. 그것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아름다운 경치 구경 좀 하고 가세요,라며 친절한 관광버스 아저씨의 호의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그 아름다운 경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였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작품에는 클라이막스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범인이 밝혀졌을 때의 희열과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었음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되려 허탈한 기분이었달까. 그 친절함이 싫지는 않았지만, 추리라 하는 장르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고전 추리는 나랑은 조금 맞지 않는가, 싶은 생각과 함께 가마슈 경감의 시리즈가 나온다면 다시 손을 뻗을 것인가,하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글쎄…라며 약간의 주저하는 듯한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탈자 :) p 329 ː 앙드레는 어깨들 들썩했다 → 어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