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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과거는 참 묘한 것이다. 과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p46
난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이십사 년을 살고 있는 까닭에, 동네 주변 곳곳에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허공을 유영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때의 기억‘만’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 언니·오빠·친구들과 담을 넘었던 곳도, 여름이 되면 물놀이를 했었던 우리들만의 집이었던 폐가도, 지금의 우리집이 개조되기 전 신나게 아기사방을 했던 앞마당도, 한여름 어스름한 저녁빛이 세상을 감쌀 때 나타나던 모기차도, 그것을 신나게 따라다니던 어린 우리들도, 이젠 없다. 그것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고, 모든 것이 변했다. 추억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말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몇 달 전에 어느 책에서 (사실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책이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페이지마다 각 장이 있었던 에세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소를 두고 연인과 사랑의 맹세를 했는데, 후에 그 사랑은 깨어졌고, 장소는 변했다,고. 결론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장소도 변하고 만다던. -
조지 볼링은 뚱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패티’ 혹은 ‘터비’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친구의 권유로 경마 베팅에 10파운드의 돈을 내걸었다가 뜻밖에 17파운드(현재 시세는 파운드당 2,000원이지만 1938년에는 47.3배라고 한다. 따라서 17파운드는 1,608,200원이다.)라는 배당금을 쥐게 된다. 좋은 남편이자 아빠라면 그 돈으로 아내에게 옷을 사주고 아이들에게 부츠를 사주었겠지만, 15년동안 그 역할을 하던 그는 그것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기에 본능적으로 그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까, 하는 고민에 빠지다가 떠나게 된다. 그는 ‘숨’을 쉬러 나간다! 하지만 숨을 쉬러 나간 곳에서 할 말이라고는, 이제 과거로 돌아가 본다는 생각일랑은 끝이다. 소년시절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숨 쉬러 나가다니! 숨 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 있다.(p311) 왜? 그에겐 무슨 일이!
옛 시절 우리가 살던 모습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그것은 그림 같지 않았다. p302
숨 쉬러 나간 곳에서 숨 쉴 공기를 찾지 못하고 그 속에서 방황하는 조지 볼링. ‘현대’라는 괴물은 그의 유년시절이라는 못을 쓰레기매립장으로 변모시켜 버렸고, 더불어 그가 유년시절에 낚았던 고기는 알고 보니 쓰레기였던 것이고 그가 봤다던 정말정말정말(!) 큰 고기는 대용량의 쓰레기로 둔갑한 거다. 아, 이게 무슨 난리지.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어쩔까, 어쩌면 좋을까, 이 불쌍한 중년 사내를.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이 손에 쥐어졌다. 그는 그 중에서도 최소의 위험을 가져다 줄 선택을 하겠지. ㅡ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조지 오웰을 나타내주는 한 문장이어서, 이 작가를 잠시 미뤄뒀을런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폐쇄적인 성향이 잠재되어 있어서 다른 누군가의 정치적 성향과 맞물려 굴러가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그 톱니바퀴는 자연스레 중간에 멈추게 되고, 끝내 그것은 고장난, 그래서 교체되어야만 하는 상태에 다다르게 되고, 따로 떨어져 분리가 되버리는 것이다.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될 것이고. 그래서 난 고맙다. 이 책이 나에겐 그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이. 이것으로 「동물농장」과 「1984」를 삼킬 듯 읽어보고 싶다,는 허기가 지려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