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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살다보면, 누군가가 작정하고 나를 파멸시키려고 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에서 심지어는 세상이 나를 버렸다,라는 생각마저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실타래가 엉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는 상황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매듭을 풀고자 손을 댔는데, 그것이 생각과 달리, 더욱 엉켜버릴 때, 세심하지 못한 성격에 그것을 힘으로 해결하려 들고, 그럴수록 더 팽팽해지는 끈들에 있는 짜증을 다 내며 가위로 싹둑 자르는 나와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아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풀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이도 있고, 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손을 놓고 그 상황에 휩쓸려 가게 되는 이도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 실타래를 움켜 잡은 한 남자가 있다. 그것은 그의 손을 지나 몸 전체를 휘감아 그를 밑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그는 그것을 잘라낼 것인가,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인가, 그냥 손을 놔버릴 것인가.
모든 것이 …… 파괴되었다. 아내와 나, 우리는 정상이 아니다. 우리 사이의 소중한 뭔가에 금이 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른다. 아니, 어떻게 하면 우리집을 차압에서 지킬 수 있을지, 아니, 아니, 심지어는 아이들 놀이집을 짓는 방법조차 난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내 주머니에 채 1만 달러도 안 되는 수표가 달랑 한 장 들어있다는 것. 그 수표는 우리가 퇴직 후 마지막으로 기댈 수입원인 연금을 한꺼번에 현금화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p96
경제 담당 기자였던 ‘맷’은 시장에 관해 일 년 내내 글을 써서 번 돈보다 시장에 투자를 해서 번 돈이 더 많았을 뿐만 아니라, 강아지를 훈련시켜 신문의 주식 면에 용변을 보게 한 뒤 똥이 떨어진 곳에 있는 주식을 사더라도 연 20퍼센트의 수익은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유로 90년대 후반에 잘 다니고 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금융 사업에 뛰어 들어 그것을 시(詩) 형태로 제공하는 사이트를 개설한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의 돈벌이가 되지 못했고,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다시 신문사에 복직을 하지만, 경영 악화로 인해 단 4개월만을 근속 기간으로 인정받고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런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당장 7일 안에 3만 달러에 달하는 밀린 할부금을 주택 담보 대출 회사에 갚지 못하면 차압당할 집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단순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지, 라고 치부해버리기에 그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상당한 미모를 지닌 아내 ‘리사’와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들 ‘테디’ , ‘프랭클린’이 있는 집에서의 가장이다. 그럼에도 그 모든 사실을 아내인 리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는데, 아내의 동태에 요즘 들어 미심쩍음을 느끼고 있던 참인 까닭. 그러는 사이에 단 7일이라는 기한은 그의 숨통을 죄어온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세븐일레븐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 마리화나를 얻어 피운 그는 불현듯 무엇인가가 머리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아! 마약상을 하면 되겠구나!
책 속에서 그의 생활은 정말이지, 길고 긴 터널 속에 갇힌 것과 같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마리화나 밀매를 하겠다는 어리숙한 그의 생각이 멍청해보이기도, 미련해보이기도, 심지어는 철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내게 있어 그를 미워 할 수 없는 것은 단연코 삶에 대한 의지였는데, (물론,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보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는 것이 나를 감동케 했지만) 끄나풀을 잡고야 말겠다,는 마지막 발악이었던 마리화나가 또다시 수포로 돌아가면서 나 역시 책의 표지에 있는 그와 함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매번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만 떨어지는 그의 삶이 처량하고 안쓰러워서 어루만져 주고도 싶지만, 그는 독자로부터 동정표를 받는 것, 그것을 당당하게 제지한다. 세상에.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은…… 스스로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짓거리이다. p419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지 않는다는데, 내가 그를 동정할 까닭은 전혀 없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것은 분명 나는 멀리, 낯선 곳에 살고 있는 낯선 이의 삶을 건너보고 있는데, 왜 나의 아버지가 그 삶에 자연스레 포개어지는가. 읽으면서 그의 행동때문에 실소가 뿜어져 나오는데, 그 실소에 씁쓸함이 배어져 나오고, 한숨이 포옥,하니 새어져 나오더란 말이다. 웃으면서도 웃을 수 없는 연유는 그것이었다. 우리집 가장, 나의 아버지. 맷, 그가 모든 가장의 자화상,이라고 한다면 너무 억지스러운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하나의 책과 다시금 마주했다. 리디 쌀베르의 「회장님의 끝내주는 애완작가」-. 그 책을 통해 이미 비슷한 내용을 경험한 바 있었던 게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곧 물질적인 풍요로움에서 나오는 행복이라는 것은 진정성이 결여된 행복이라고. 「회장님의 ~」에서 토볼드는 자신의 권력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 믿었지만, 그는 누군가 자신을 밟고 일어설까봐, 하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면, 「시인들의 ~」에서는 가진 것 쥐뿔도 없는 맷이지만, 할부금으로 산 집이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차압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며칠 밤을 꼬박 새는 것이다. 그 권력이, 또 그 집이 결코 자신의 행복 중 전부가 아님에도 노심초사·전전긍긍하며 그것을 손에 움켜 쥐고 있으려는 꼴이다. 나 역시 하루가 멀다하고 물질적인 무엇이 필요한데, 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게 된다. 한 손에 떡이 있는데도 양 손에 떡을 쥐고 싶단 욕심이다. 그것이 꼭 있어야만 내가 행복한 것은 아닐진대, 나는 그것이 내 행복의 한 부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게다. 책을 놓고 나서도 난 금세 물리적 행복을 소유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데,- 라며 인터넷 세상을 떠돌며 쇼핑을 하겠지만 말이다. 책에 대한 감상(이랄 것도 없지만)을 적고 있노라니, “실은 나, 이 책의 엔딩에 대해 불만족스러움을 표시한다.”라는 말이 쏙 들어간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야 만족스럽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지 않았는가. 치매로 모든 것을 잊었으나, 나무집을 짓는 방법은 끝내 잊지 않은 아버지의 망치질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에 옥신각신하는 맷과 리사의 모습에서, 맷이 세 달에 걸쳐 모은 20달러로 영화를 보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오탈자 : p12 , 10째줄 : 세븐일레븐에서는 4리터들이 우유가 9달러나 한다. (이거, 나만 말이 안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가.)
p58 , 4째줄 : 따옴표(”)
p84 , 12째줄 : 빛 → 빚
p272 , 7재줄 : 빛 → 빚
ps. 정말 이 책의 역자는 정말 ‘빚’을 ‘빛’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모든 것이 심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