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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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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가 진다. 손 끝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깊고 애절한 그리고 집어 삼킬 듯 탐욕스러운 허기가 내 안에 존재하고, 나는 때때로 그것과 마주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추악한 그것이 더이상 추악하다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아련하고 슬퍼져서 그만 그것을 어루어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내가 말하는 허기가 비단 굶주림만이 아니라는 것 만큼은 추측할 수 있을 터. 육체의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허기의 선연함은 자신 이외에는 감히 아무도 느낄 수 없는 하나의 무언의 대화와도 같아서 그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닌 오롯한 자신의 몫이다. 헌데, 나는 늘 그것을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해 채우곤 했던 것이다. 허기가 진다는 것 자체는 삶에 대한 깊은 굶주림이고 회한인데, 지금 이 순간, 어쩌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허기가 지는 때에 그에 걸맞는 제목인 「허기의 간주곡」을 읽게 된 것이.

 

 

 

에텔 - 부르주아 가정의 소녀가 보는 세상, 그리고 그런 그녀의 성장기를 그려낸 한 권의 소설이 여기에 있다. 증조부 솔리망씨가 에텔에게 보여준 연보라색집은 이 책에서 희망이 되는 단 하나의 실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던 중 혁명으로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어머니와 언니들과 러시아에서 독일로 도망갔다 마침내 프랑스에 거주하며 연명해나가는 삶이 힘들다는 제니아와 친구가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깊어져 가는 골이, 돈을 둘러싼 다툼들이,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음이 느껴지는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에텔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없는 까닭일까, 친구 제니아의 질척거리는 힘겨운 삶이 에텔에게는 신비로움을 넘어 동경하는 삶으로 싹트는 것이다. 만약 제니아에게, 제니아의 어린 시절에, 그녀가 살아온 삶의 매 순간에 그런 신비로움이 없었더라면 에텔이 그녀를 그처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에텔은 자신의 감정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 그런 허접을 안고 있음을 깨닫고 괴로워했다.(p46) 그렇게 에텔에게서 우정과 사랑, 애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솔리망 씨뿐인 듯했던 그 시절은 지나고, 그것의 화살은 제니아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다른 증조부 솔리망씨가 숨을 거두면서 남긴 유산은 친권자라는 명목 아래 아버지인 알렉상드르에게 넘어가게 되고, 그것은 그녀의 유복할 미래를 몰락으로 몰고가기에 충분한 시나리오를 작성케 한다. 그와 동시에 에텔은 성장하고 있었다. 채 성장이 마치지 못했을 때,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전쟁과 개인이라는 지층은 두텁고도 단단하여 쉬이 깨뜨릴 수 없다. 그렇게 전쟁의 한가운데에 그녀의 몸이, 조금 더 나아가서 한 가정 -브룅 가족-이 던져지며 그렇게 또다른 생이 주어진 것이다. 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야 했다. 삶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 모든 것에.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러니까, 더는 척하지 않기 위해.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잊기 위해. 마침내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두 눈의 물기는 말라 있었다. (p159) 그녀는 그렇게 급작스레 어른이 되어버렸다. 더이상 코탕탱 가의 살롱에서 어른들의 대화를 수첩에 받아 적던 어린 소녀가 아니었기에, 공증인 봉디를 만나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수순을 밟지만….

 

 

 

아르튀르 랭보의 「허기의 축제」를 인용하며 출발하기에, 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라는 문장이 첫 스타트가 되며 육체적인 허기를 이야기하기에 보이는 그대로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허기를 잘 알고 있다는 문장의 끝은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그것과는 또다른 허기에 관한 것이다. (p14) 이었기에 그와 반대되는 정신적인 허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심지어 책을 다 읽고 난 뒤 서평을 쓰면서조차도 - 허기에 대한 본질적 의미는 그대로 밑바탕에 깔아두고, 현상적 의미를 끌어올리려 애썼다. 가까스로 끌어올렸는데, 나는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게 맞는가, 자문하고 있었던 게다. 그러다 문득, 아무렴 개개인의 독자가 받아들이는 것 말고 또 다른 정답이 있을까, 싶었더랬다. 어쨌든, 그것은 에텔의 우정과 사랑, 애정을 받을 수 있는 단연코 한 사람뿐인 솔리망씨의 상실에 대한 허기였다. 좀 더 나아가 에텔의 로망이자 꿈이었던 연보라색집의 상실로 인한 허기였고, 고향에 대한 애수(향수)에 대한 허기였으며, 앞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허기인 것이다. 그런 허기들이 하나의 음을 되찾고, 결국 그것은 웅장한 교향곡 사이사이에 끼어들어가 간주곡이 된다. 그녀가 울리는 허기의 간주곡을 들어볼 생각이 없는가. 당신이 조금 허기진 상태에서 듣게 된다면 그것을 채워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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