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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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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내가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수화기를 붙잡고 그에게 “아 모르겠어. 이 책 이상해! 무슨 신문처럼 나눠져 있단 말이야!” 그랬다. 이 책을 스윽 넘겨보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만만찮은 두께에 나를 제압하는 표지. 난 이 책에 엄두를 못내고 붙잡고 스윽, 넘길 뿐이었다. 그런데 중간 한 장을 두 문단으로 나누어 깨알같은 글씨가 눈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는데 - 아, 아득하다. 제 아무리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컬러가 눈의 피로를 정화시켜준다 한들, 전자의 이유때문에 이 책을 ‘어려운 책’이라고 멋대로 간주해 버리고서는 손도 대지 않고 최대한 멀리 했더랬다. 그러길 몇일, 주욱 방치해 두다가 더이상 미뤄둘 수 없어,라는 판단 아래 책을 들었는데, 어라? 괜찮네. 반 토흐 선장이 G.H 본디에게 도롱뇽에 대한 정체를 털어놓았을 때, 그에게 했던 말을 정정했다. “아니야! 점점 재미있어 지려고 해! 도롱뇽이 진주를 캐다준대!” ㅡ 하지만 책을 다 덮고 나선 앉아있는 자리에서 땅 속 깊은 곳으로 추락하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책을 다 읽었는데도 읽지 않은 것 같은, 그런 찝찝한 기분. 그럼에도 내가 작품해설은 물론이고 역자해설까지 읽지 않은 것은 원래 읽지 않는다는 까닭도 있겠지만, 역자해설까지 멀리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면서 그조차도 거부한 까닭은 책을 막 끝낸 멍한 상태로 어영부영 읽을 것을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읽으나 마나한 아니, 읽지 않는 것보다도 못한 사태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고심고심해서 썼을 그 이야기들이 내게 훌훌 읽혀버리는 것 또한 그들도 바라는 바는 아닐 터. 나중에 서평을 다 쓰고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된다면, 그 때 읽어도 괜찮겠다 - 생각을 해본다.

 

 

 

 

도롱뇽,이라고. 내 눈이 기억하는 것은 결코 책에서 말하는 그런 형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을 수록 도롱뇽이라는 것은 공룡의 형상으로 다가오기 충분했는데, 그것은, 키가 열 살 꼬마 정도 되고 몸은 거의 새카맸어요. 물속에서는 헤엄을 치고 해저에서는 똑바로 걸어 다녀요. 똑바로요. 선장님이랑 저처럼 말입니다. 근데 계속 몸이 흐느적거려요. 이렇게, 또 이렇게요. 계속 그렇게……네, 선장님, 손도 있어요. 사람하고 똑같아요. 아니, 손톱은 없고요, 애들 손 같아요. 아뇨, 뿔이나 털은 없어요. 네, 꼬리는 있는데, 물고기 같지만 꼬리지느러미는 없고요. 머리는 큽니다. 바타크 놈들처럼 둥근 머리예요. 아닙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입술만 쪽쪽 빠는 것 같았어요. 이 구절이 내 머릿 속에 새로운 도롱뇽 친구를 주선했다. 이 책의 결론을 말하자면 인간의 추악이 태동케 만든 탐욕의 산물이 바로 도롱뇽이라는 점이다. 나이프만 주면 진주조개를 캐주는 도롱뇽 -실은 그들이 食이 되는 조개 속에 간혹 들어있는 진주는 그들에겐 얼마나 귀찮을 존재였을꼬, 책에서도 그들은 돌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산업으로 이용하는 도롱뇽 신디케이트를 결성하게 된다. 그러다가 쿠르트 폰 프리슈가 도롱뇽들을 진주조개 채집 이외의 좀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다른 사업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한건지 질문하며, 항구를 더 깊이 판다든가, 방파제를 건설한다든가, 제반 수중 기공 사업에 도롱뇽들을 활용할 가능성을 함께 주장한다. 그렇게 도롱뇽들은 인간에 의해 문명을 배우고, 인간에 의해 도롱뇽교가 생겨 신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심지어 전쟁이 발발하게 된 까닭인 우두머리 도롱뇽도, 실은…….

 

 

 

 

어디에도 도롱뇽의 입장은 찾아볼 수 없다. 아, p232-233 의 것이 도롱뇽의 입장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과연 도롱뇽들은 책에 적혀 있는 대로, 그리 생각했을텐가. 고개를 갸우뚱거려보아도 글쎄,라는 단어밖에 흐르지 않음은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공통된 생각이 아닐런지. 인간의 지독하리 만큼 끝도 없는 탐욕에 실소가 터져 나오는데 마냥 웃고 있기엔 발가벗겨 놓은 것과 같은 적나라함이 얼굴을 내리친다. 퍽 -, 직격이다. 얼굴을 내리친 혐오감은 그대로 땅으로 추락하여 피로 얼룩진 그곳에 일그러진 얼굴 모양을 한 화석이 된다. 그것을 먼 훗날, 도롱뇽이 집어들고 금세 숨이 넘어갈 듯 깔깔거리며 웃겠지. 어리석은 인간들,이라며. 그래. 허구만이 아닌 허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로 낯뜨거운 영상을 보는 것처럼 붉어지는 얼굴을 뜯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이 책을 읽었지만, 네개 이상의 별을 줄 수 없는 것은 순진한 -결코 순수한,은 될 수 없는- 한 인간의 거북함이다. 그만큼 거북했다. 인간의 피폐한 잔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척이나 애탄스럽기 그지없었음을, 어쩌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동물이라고 감정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이 책에서 도롱뇽이라는 생물체는 영혼이 없는 인간에 의해 착취된 도구의 모습으로써 자리메김을 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아, 뭔가를 더 써야하는데 머리의 전원이 꺼지기 직전이다. 그의 말을 인용해야겠다. ……그 다음은 나도 잘 모르겠네.

 

 

오탈자 p207 …… 고등 교육을 받은 도롱뇽들은 탱크선의 목사를 <파파 도롱뇽>이라 불렀다→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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