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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435p의 책장을 덮는 것과 한숨이 내쉬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것은 비로소 이 책을 다 끝냈다는, 그리고 더 이상은 그녀의 삶과 내 삶을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인 셈이었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붙잡고 있었을까, 손가락을 하나, 둘 세어 따져보니 족히 열흘은 붙잡고 있었지않나 싶다. 그것은 나의 구미를 잡아당기지 않는 이 책의 한계,라고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10월 끝무렵부터 한 장, 두 장 읽어가 11월, 열흘동안 50p도 못나가리 만큼 지루하여 하품을 자아내는, 그러다 끝내 잠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그녀의 삶을 이제는 끝내야했다. 물이 없는 우물 속의 두레박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내는 딱딱,거리는 소리는 두레박이 내는 것이 아닌 내 마음 속의 자명종과 같은 것이었음을 알아챈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갈증이 전혀 나지 않는 상태에서 물을 들이키는 것은 차오르는 배를 바라보며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는데, 내게 있어 그것이 그녀의 인생이었다. 치졸함과 추악함이 맛깔나는 잼으로 변모하여 빵 속에 들어가 그녀의 생을 눅눅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자전적 소설, ‘검정도 색깔이다’ 그녀는 검둥이 애인 빌을 정신병원에서 탈출시키고 그를 48시간 내에 이 땅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엄명을 받게 되어 그와 두 아이와 함께 독일로 이주하여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일, 매춘으로서 돈을 얻게 된다. 책 전체가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서른 두 살 이후의 삶에 조명을 비추고 있기에 줄거리에 대해 나의 어쭙잖은 말은 삼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한 평점을 이렇게밖에 줄 수 없는 이유가 프랑스 소설이어서, - 실은 그 까닭에 마음이 무거워진 탓도 있었으나, 비단 그것만으로 이 책을 거부하였더라면, 난 이 책 자체를 읽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그 까닭으로 읽는 것에 부담을 느꼈더라면 전에 읽었던 기욤 뮈소의 작품도 하나의 작품만 읽고 안녕,해버렸을 것이 분명한데, 나는 그의 책을 꼬박꼬박 읽어왔었다. 프랑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 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도 아니었고, 소위 말하는 매춘부에 대한 거부감 역시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가파른 언덕을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이 숨차게 올라가는 나에게서 일말의 미소라도 원했던 것이라면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나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거부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책으로 다가왔는데, 그 까닭을 구태여 찾자면 문장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내게 있어 위장을 헤집는 것과 같은 불쾌함을 동반한 졸렬함이었고, 그것은 음식물을 섭취한 후에 이 책을 손에 집는다는 것은 내게는 무척이나 고역과 다름없는 역겨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사랑의 결정체라고 불리우는 섹스라는 것이 그녀에게는 사고 파는 것으로 간주된 그 순간부터 경계했었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시대상황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다고 줄곧 생각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몇 번의 노동기회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침으로써 매춘부라는 것은 오롯이 자유의지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말고는 다른 것에 대한 열정은 보이지 않았고, 뭔가를 하고 싶다는 열정조차도 내 검은 눈동자에 만큼은 비치지 못했으니까. 세상이 그녀를 병들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병들게 했다.
게다가 “진실로 사랑해보지 않은 자는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길. 책은 그런 사람의 손 안에서보다 더러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좀 더 따스하게 머물 테니까.”이런 오만한 그녀의 글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어 내리기에 내 심장은 그렇게 말랑말랑한 상태가 아니었음이 애석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사랑이란, 그래.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 무엇인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녀가 끄트머리에 진정으로 사랑했다던 로드웰, 그를 기억하고 찬양하기 위해 쓰여졌다던 그 역시 내 눈엔 다른 자들과 같은 사람들처럼 보였음에 왜? 라는 말을 반문해야했는데, 남이 보기에 자질구레한 사랑도 자신에게는 영속할 줄 알았던 그녀의 사랑이 가엾기까지 하다. 부록에 ‘매춘은 혁명적인 행위이다.’라고 쓰여져 있고, 그곳엔 그녀가 제네바의 길거리를 걸으며 써내렸던 글이 있다. 오만함의 극치는 어디까지인가, 나의 한숨은 얼마나 더 깊어갈 것인가. 그녀의 글은 오만하고, 그런 그녀의 글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뿐이다. 장하다.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하여서. 나는 남의 인생을 내것인 양 가타부타하기는 싫지만, 내 한참 모자란 서평이 그녀의 생에 어디까지 참견하려 손을 뻗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한마디는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한 벌로 몸은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고 그것을 시작으로 입 주변에 꽃봉오리들을 피울것이다. 얼룩덜룩한 그 꽃봉오리 속에는 독을 품을테지. 그것의 이름은 ‘매독’······. 아, 도저히 안되겠다. 마음 속을 정화하고자 나는 다른 프랑스 소설을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