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슬픔입니다. 얼마 전에 시집을 보고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나쁜 건 아니지요. 이 말도 했군요. 시집을 보고 느낀 슬픔과 이 소설집을 보고 느낀 슬픔은 조금 다른 듯도 합니다. 살다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기도 하잖아요. 그건 산다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 느낀 건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슬픔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슬픔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서로를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슬픔,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 더는 감당할 수 없음에 관계를 끊는 데서 오는 슬픔, 알 수 없는 까닭으로 관계가 끊어지는 데서 오는 슬픔. 더 있을 테지만 생각나는 건 이만큼뿐이네요. 이런 슬픔도 살다보면 찾아오는 것과 다르지 않지요. 세상에는 사랑뿐 아니라 슬픔도 흘러 넘칩니다. 이런 말 때문에 이 책 못 읽겠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면 안 될 텐데. 여기에 슬픔이 담겨 있다 해도 눈물을 쏟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한줄기 눈물을 흘리게 할 뿐입니다. 이건 저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는 소설 보면서 작가는 잘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끔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쓴 최은영은 일본 사람 친구가 있고, 독일 플라우엔, 프랑스 리옹,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가 본 적이 있을까 했습니다. 다른 나라가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이에요. 이장욱은 어딘가에 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갔다오기도 했더군요. 그때 바로 소설을 쓴 건 아니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썼다고 합니다(《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담긴 소설). 최은영은 어땠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게 별난 건 아니지만, 최은영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 소설에 쓴 건 아닐까 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쇼코와 소은은 최은영 자신일까 하기도. <미카엘라>에서도 최은영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는군요. 작가는 자신이 쓴 글 자체만 보기를 바랄 텐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다르지만 비슷한 것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런 것을 생각해도 책 읽기에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봤습니다.

 

다섯번째까지 보면 관계가 끊어지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쇼코의 미소>(마음속으로는 웃음이라 생각하고 봤습니다)에서는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한국학생과 일본학생 문화교류라는 것으로 만난 소유와 쇼코가 한주를 소유네 집에서 함께 보내고 편지를 나눕니다. 소유와 쇼코만 편지를 나눈 게 아니고 소유네 할아버지와 쇼코도 편지를 나눠요. 소유네 외할아버지한테 쇼코는 친구였어요. 소유한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쇼코한테는 했어요. 소유와 쇼코가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부터는 연락이 끊겨요. 소유와 쇼코가 편지를 나누지 않게 됐지만 몇해 뒤에 소유가 쇼코를 만나러 일본에 갑니다. 그때 소유는 괜히 쇼코를 만났다 생각합니다. 그것을 보니 피천득 수필 <인연>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소유 할아버지가 죽고 소유는 쇼코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됩니다. 쇼코가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걸. 소유는 할아버지가 쇼코한테 보낸 편지로 할아버지 마음도 조금 알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한테 자기 마음을 터놓기 어렵죠. 식구와 마주이야기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지.

 

다음 <씬짜오, 씬짜오>는 독일에서 베트남 사람과 독일말로 말합니다.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도 자기 나라 말이 아닌 다른 나라 말로 이야기 하는군요. 같은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할 때가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말로 할 때는 더할지도. 그래도 서로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습니다. <한지와 영주>는 조금 다릅니다. 프랑스에서 케냐 사람인 한지와 한국사람인 영주는 영어로 말합니다. 둘은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는 듯하지만, 그걸 겉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한지는 케냐로 돌아가기 두주 전부터 영주를 피합니다. 한지는 영주한테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영주는 한지가 왜 그럴까 하지만 한지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묻지 않습니다. 물어도 한지는 대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생각할 수 있는 건 정을 떼려고 했다는 거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는 국경도 없다 하지만, 한지는 돌보아야 하는 여동생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이해하지 못해 관계가 틀어지고(<씬짜오, 씬짜오>), 문화가 달라서 멀어졌네요(<먼 곳에서 온 노래>).

 

관계가 끊긴다 해서 슬프기만 한 건 아니예요. 따듯함도 느껴집니다.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자신은 잘살고 순애 언니는 못사는 것 같아 더 보기 어렵다 생각한 <언니, 내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순애 언니한테 자신이 한 잘못을 용서받았다 여깁니다. 사는 게 차이가 많이 나면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울까요. 저도 저랑 상관없는 사람이 자랑하는 걸 보면 부러워하면서 이런 말을 했네요. 남은 남, 자신은 자신이다 생각하면 괜찮을 텐데, 지금은 좀 괜찮습니다. <먼 곳에서 온 노래>는 세 사람이 중심이라 해야겠네요. 소은과 미진 그리고 율랴. 소은과 미진이 함께 산 적 있고 미진과 율랴가 함께 산 적 있네요. 미진이 세상을 떠나고 소은과 율랴는 함께 미진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유와 쇼코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나누는군요(<쇼코의 미소>). <미카엘라>와 <비밀>도 관계가 끊어지는 거 맞네요. 죽음으로. <미카엘라>는 조금 먼 사이지만 슬퍼합니다. 가깝지 않다 해도 그때(20140416) 한국 사람은 모두 슬퍼했네요. <비밀>은 손녀가 중국에서 죽음을 맞고 할머니가 손녀를 그리는 이야기예요. 이걸 읽으면 손녀가 죽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된 건가 했습니다. 아직 슬픔이 가득해서 차마 그 말을 못하는 건 아닌지. 할머니는 자신이 죽었다면 손녀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할머니는 예전에 암으로 죽는다고 했는데 다 나았습니다. 앞으로는 딸과 사위와 함께 살아가겠지요.

 

슬프지만 따듯하다 말했는데 왜 그런지 제대로 말하지 못했네요. 그냥 그럴 때가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한 시간이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겠지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습니다. 헤어질 것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사귀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플 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있어서 기쁠 때도 많잖아요. 그 사람은 식구, 친구,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말하는 거예요.

 

 

 

희선

 

 

 

 

☆―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쇼코의 미소>에서, 18쪽)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한지와 영주>에서, 17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