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순천역까지 갈 수가 없었다. 순천에서 밀려난 경찰들에 의해서 외곽지역이 봉쇄되고 있었던 것이다. 적의 반격은 의외로 신속했다. 이십삼일아침부터 중심가를 향해 무차별 비행기 폭격을 감행하는 것으로 반격을 개시했다. 지상군에 앞서 비행기 폭격이 감행되고 있는 것은 미군의 본격적인 출동을 의미했다. 무고한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읍내 전투를 피해 병력을 외곽으로 분산시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병력 분산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적들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순천 읍내로 진입했다. 이틀 동안 적을 외곽으로 유인해내기 위한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여수 쪽의 상황변화에 대처하고 있었다. 여수앞바다에는 미군 함정이 떠서, 읍내 중심가를 향해 또한 무차별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여수에서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십육일 밤을 기하여 모든 병력을 순천 외곽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백운산을 거점으로 하는 부대 편성과 이동이 구체화되었다. 그것은 투쟁의 장기화를 위한 작전수립이었다. 따라서 투쟁지역을 지리산과 그 주변으로 확대시켜 기존 지방조직들과 공동투쟁을 전개한다는 목적이포함되어 있었다.

*지리산(빨치산)투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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