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갈 즈음 엄마는 집에 있던 동화 전집을 세계 명작 전집과 교환하셨다. 맨날 책만 파고 있는 첫 딸을 위한 배려셨고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날은 세계 명작 전집이 막 집으로 온 날이었고 현관 입구에 세로로 죽~ 쌓여있었다. 지금까지 읽던 책과는 다른 책,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제인 에어>나 <테스>, <폭풍의 언덕> 같은 작품을 읽을 생각에 들떠있던 내게 가장 첫 번째 책으로 찍힌 책은 어이없게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었다. 퇴근하시던 아빠가 쌓여있던 책들 맨 위에 얹혀 있던 그 책을 보시곤, "아직 저 책은 읽으면 안되는데!" 하셨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듣지 않았더라면 관심도 끌지 못했을 책이 그 한 마디로 내게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둔갑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데?' 하면서.

 

비단 호기심 왕성한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가보다. "금서"로 찍힌 책들은 오히려 은밀하게 유통되고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결국 금서의 벽을 뚫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금서가 왜 금서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하는 안일한 수긍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좋은 책은 결국 살아남지 않을까...하는 긍정을 가장한 무관심이었을 것이다.

 

<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는 금서들에 대한 책이다.

 

"책이 세상에 나와 금서가 되었다가 다시 해금되는 이 투쟁은 사회 진보와 시대 변혁의 과정이었다. 금서와 권력의 전쟁을 통해 사상이 진보하고 문명이 발전했다. ... (중략) ... 한마디로 금서는 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자유의 수준을 판단하는 잣대다."...13p

 

금서는 일반인들에게 정말로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해지지 않는다. 정부나 종교와 같은 사회에서 자신들만의 잣대로 일반인들에게 숨기고 싶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이유로 정해진다는 점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는 금서를 통해 우리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작가는 작가를 여러 기준으로 나누어 이 책이 왜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금서에서 풀려날 수 있었는지 일화 등을 통해 설명한다. 권력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금서가 된 명작이라거나 자유로운 사상에 대한 통제로, 풍기문란이라는 누명을 쓴 금서도 있다. 지금은 우리가 명작이라고 일컫는 책들이다.

 

금서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금서로 정해지고 작가가 탄압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명작들을 읽을 수 있었을까, 작가뿐 아니라 출판사들이나 편집인,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 끝에 지금 우리 곁에 이 명작들이 남아있었을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갓 스무 살이 되어 읽었던 두 권의 책이 있다. 한 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한 권은 한국 작가의 책이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두 권의 책은 그야말로 극과 극 체험이었다. 약 한 달 사이를 두고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포르노와 명작의 차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책이었다. 금서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억지로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하지 않는 순진한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 오히려 읽지 못하게 함으로 대중은 더욱 집중한다. <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속 책들 중 읽은 책도, 읽고 싶었던 책도 있지만 더욱 더 읽고 싶어진 책이 많았던 것이 아주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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