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건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환하고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은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소강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관계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느냐는 각자의 몫.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참으로 오묘하면서도 신비한 과정을 통해 일어나고 아마도 그 사랑을 지켜나가는 건 더 큰 믿음과 배려가 밑받침 되어야 하는 일이리라.

알랭 드 보통은 우리들이 쉽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어떤 것"들에 많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이다. 때문에 그의 책들은 읽을수록 놀라고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채는 기쁨이 있다. <<너를 사랑한다는 건>>은 그의 사랑에 대한 3편의 소설 중 완결편에 해당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소설이라고 얕보면 안된다. 처음 <서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내팽개칠 독자가 꽤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소설이 전혀 로맨틱하지도, 친절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작가가 시도한 어느 평범한 한 여성에 대한 전기를 쓰면서 느끼게 되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발전 단계,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낱낱이... 무척이나 철학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진 논문인 셈이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 첫인상에서 느꼈던 그 혹은 그녀에 대한 느낌이 두 번이나 세 번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변해가고(물론 첫 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지켜보며 그 또는 그녀에 대한 애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한 번이라도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 아마도 이 기간은 사랑에 빠진 본인으로서는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버리는 밝고 기쁜 추억의 한 부분이라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소설을 통해 밝혀준다. 물론 소설 속 "나"는 이사벨의 전기를 쓰기 위해 만났기 때문에 다분히 이성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소설 속에서는 "나"에 대한 말이나 입장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이 책은 이사벨에 대한 전기 형태를 취하고 있다.) 더욱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와 이사벨은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둘은 보통의 남녀가 그렇듯 오해하고 갈등의 과정을 겪기도 한다.

"감정생활에서만큼 사람을 터무니없이 오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것은 사랑에 빠졌을 때만큼 상대의 성향에 몰두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며, 그때만큼 상대의 불편한 악습들을 그렇게 열심히 잊으려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상태란 사람을 잘못 아는 것이 무엇인지, 엉터리 전기를 쓰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교묘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174p

남과 녀는 일상적인 대화를 편하게 나누게 되면서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른 어법의 차이에 따라 그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다. "나"와 이사벨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친숙한 단계인 전기의 후반부에서는 이 전기도 다소 객관성을 잃고 자신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기도 한다. 

독특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누가 "사랑"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표현해낼 수 있단 말인가! 책 중간에는 이 책이 마치 사실적인 전기임을 의미하듯이 이사벨에 관한 사진이 몇 장 들어가 있다. 그럼으로 과연 이 소설 속 이사벨은 실존 인물일까...하는 의혹이 매우 증폭된다. 간혹 책 속에서 나타내는 이사벨 가족의 다양한 관계도, 그녀의 연애 표 등은 조금은 삭막한 이 책을 읽는 데에 활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소설의 진면목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많은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좁은 나의 독서력으로 이 책을 100% 이해하지 못했음이 조금 아쉽다.(언젠가는 꼭~ 푸르스트의 작품을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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