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인
에이미 벤더 지음, 한아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책장을 처음 넘기면 시작되는... 프롤로그의 이야기가 있다.
모든 사람이 영원한 삶을 사는 한 왕국에서, 더이상 버틸 수 없는 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왕이 명령을 내렸다. 한 가족 가운데 죽어야 할 사람을 한 명씩 고르라고... 선발된 사람들을 처형하는 날이 다가오고, 모든 가족들이 한 사람씩 골라 처형을 기다리는 때에 어떤 한 가족은 끝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가족 중의 한 사람도 죽는 것은 바라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내 놓은 해결책은... 가족 구성원 한 사람마다 각 부위를 잘라내어 한 사람 분량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신체 절단식이 행해진 이후, 이들의 완전했던 모습을 아는 왕국의 그 어떤 사람도 이들의 빵(이들은 빵집을 하고 있었다.)을 사먹지 않았으므로 이들은 이웃마을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당시 온전했던 아기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병에 걸려 탈저로 다리가 떨어져나가자 이들은 아이가 동지가 되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했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사인>>의 주인공 모나는 이 이야기를 열 번째 생일날 아빠에게 듣는다. 그리고 그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아빠는 삶의 의욕을 잃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다. 프롤로그의 이야기의 다리를 잃고 나서야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던 그 아기처럼 모나는 아빠 병의 동지가 되고자 한다.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아빠를 뒤로 하고 자신의 찬란한 삶을 누릴 수가 없어서 모나가 잘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그만두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들을 그만두는 의식으로 모나는 나무 두드리기를 함으로써 자신만의 즐거움을 모두 나무 속에 가둬놓는다. 하지만 모나가 그만둘 수 없는 것은 그 나무 두드리기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프거나 죽는다면 자신이 즐겁거나 행복한 것에 죄책감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겐 가족의 우환이 때론 구속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겐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많아야 하지 않을까. 모나에겐 그런 사실을 알려주는 어른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모나가 잘하는 것들을 그만두고 점점 시들어간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주지 않았다. 모나가 좋아했던 전 수학선생님이자 기분에 따라 숫자 밀랍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철물점 주인 존스 아저씨는 모나의 나무 두드리기를 살펴주었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나의 세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모나는 관심을 받고 싶었다. 온통 회색빛이 가득한 아빠에게서, 집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스무살이 되도록 그 회색빛에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이건 사람의 마음이에요. 나직이, 내가 말했다. 나는 바로 그때 누군가의 마음을 들고 있었다."...240p
"나는 아저씨에게 내가 살펴온 전부를 얘기하고, 아저씨가 살펴온 모든 사실들을 듣는 일 말고는 정말로 다른 목적이 없었고, 그 두 가지 우리의 살핌이 어떤 규칙을 만들어내면 나는 그 규칙을 생활의 지침으로 삼으리라 기대를 했다."...296p

모나는 자신이 수학 선생님이 되어 만난 리사와 스미스 선생님, 존스 아저씨와의 소통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삶을 되찾아간다. 자신에겐 아직 많은 삶이 남아있음을... 굳이 아빠의 회색빛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은 자신만의 행복을 가져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안해요, 하지만 더는 아빠의 동반자가 되어주지 못하겠어요. 나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323p

모나는 아빠를 따라하는 회색빛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의 의리...라는 것을 지키고도 싶었다. 그래서 주위에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사인을 보냈다. 자신을 보아주기를... 알아봐주기를...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빠 또한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주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러한 모나의 사인을 알아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사인>>은 우리가 얼마나 소통 없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서로 주고 받는, 관심이 한 아이에게,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행복이 될 수도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모나 또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사인을 누군가는...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몇몇은 알아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위로에 모나는 자신만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프롤로그의 이야기와는 반대로, 모나가 리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롭게 각색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속 딸이 누구 하나가 죽는 것을 선택하거나 어떤 한 부분을 잃음으로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선택을 하는 대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고, 용기있게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딸은 바로 모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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