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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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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거의 대부분을 <나는 전설이다>에서 묘사되었던 그 황량한 도시의 거리...를 떠올렸다. 
그래! 세상이,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되겠구나...하는 느낌.
아버지와 아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다른 동물들도, 식물들도 그 어떤 생명체도 만날 수가 없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것은 기쁨이 되지 않고 그들만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먹을 것도 없고 살아가기 힘든 그곳에서 자신들만이 살기 위한 자신들만을 위한 투쟁.

사실 처음 책을 집어들고 아무 사전지식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서는, 난 계속해서 어떤 "사건"을 기다렸다.
내가 좋아하는 재난 영화와 같은, 혹은 <나는 전설이다>와 같은 공포소설 속의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고 2/3 지점을 읽을 때까지도 그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계속해서 그 길을 걸어갈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 바다를 향해, 또 다른 곳을 향해 계속 걸어간다.

그 자체가 공포로 다가온다.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살기위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그들에게, 또 내게, 읽는 독자들에게는 공포이다.
"남자는 자신이 위험하게도 이 횡재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에도 했던 말을 했다. 행운이란 이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 남자는 거의 매일 밤 어둠 속에 누워 죽은 자들을 부러워했다."...260p
아들이 없고 자신만 있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목숨.
망가진 세계가 되기 전의 세계를 알고 있는 남자로서는 지금 엉망이 되어 그 무엇하나 생명의 불씨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 세계를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고 고통이다.

자신이 살아남고자 하는 의욕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원하는 아들과 아들과 살아남기 위해 철저하게 이기적인 남자.
누가 옳고 그른지,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악한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행성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모든 것이 불타버렸고, 하늘에서는 끝도없는 재가 내린다.
과연 이 행성에 "희망"은 있는걸까?

"한때 산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중략) .....등에는 벌레 먹은 자국 같은 문양이 있었다. 생성되어가는 세계의 지도였다. 지도와 미로.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시는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3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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