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발견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0
스텐 나돌니 지음, 장혜경 옮김 / 들녘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인터넷에 "존 플랭클린"이라는 이름을 검색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적다.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이지만 가장 많이 북극 탐험을 했으면서도 북서항로는 발견하지 못한 "실패한 탐험가"로 알려져 있다. 결국 최초의 북서항로 발견...이라는 타이틀은 52년 후 로알 아문센에게 돌아간다.
세계 역사에 남겨지는 이름(일반인들이 기억하는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은 무언가를 처음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것이다. 분명 그 사람들이 이룩한 결과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실패가 있을텐데,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여기, 장애로 보일만큼 모든 일에 서투르고 느린 아이가 있다. 그를 가르친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학생 F.가 느린 이유는 눈에 띈 것을 아주 오래 관찰하기 때문이다. 한번 포착하면 철저하게 탐구하기 위해 상 자체를 정지시킨다. 뒤따라오는 상들은 지나친다. 학생 F.는 완벽성을 위해 세부(細部)를 희생시킨다. 세부를 보자면 머리 전체를 사용해야 하며 다음 세부가 다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 (2권 69p)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굼뜨고 서투른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눈 앞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을 제대로 쫒아갈 수가 없고 온전히 이해한 후 행동하기 때문에 느리며, 서두르다보면 제대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서투른 것이다.

하지만 존 플랭클린은 자신이 "느리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면 자신의 이런 단점(남들이 생각할 때)을 장점(좀 더 효율적으로)으로 바꿀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며 바꾸어 나간다.

민첩하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배" 안에서도 그는 그만의 노력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 진지함, 성실성으로 여러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빠르게 행동해야 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다. 이런 과정들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

그는 명성보다는 명예를 중요시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면 오랜 시간 남들에게 멍청하게 보이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1권 238p) 느리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그는 기억하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런 결과로 탄생한 그만의 <프랭클린 시스템>.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윗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만의 느림에 맞는 "신뢰의 대가로 충성을 다 한다."는 시스템을 만들고 배에서, 그리고 총독을 맞게 된 반 디멘즈 랜드(오스트레일리아 남쪽)에서 실행에 옮기게 된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를 믿고 따르는 정직한 인간으로서의 실무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총독 임무는 실패하게 된다.

그의 마지막 위대한 항로에서 그는 끝내 북서항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기록들과 지도, 항해술 등은 분명 그 후의 탐험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위대한 실패가 있었기에 위대한 발견도 있는 것이리라.

이 책을 읽는동안 난 전기소설의 함정에 빠져있었다. 이 모든 내용들이 사실일 것이라는 함정. 하지만, 분명 이 책은 "소설"이다. 작가의 말을 읽고나서야 상당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속 플랭클린의 삶 속에는 바로 작가의 삶(영화와 학교에 대한)과 생각(느림에 대한)이 많이 녹아있다는 사실.

작가 스텐 나돌리는 아주 오랫동안 존 프랭클린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따라서 이 책은 작가 본인의 노력의 산실이다. 제목 <<느림의 발견>>은 아주 천천히 존 프랭클린의 인생을 더듬어왔던 작가의 발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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