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연인 - 이탈리아에 간 카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강혜경 옮김 / 시공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어렸을 적 한번도 빼놓지 않고 보던 TV 프로그램 중에 <말괄량이 삐삐>가 있었다. 주위 사람들 눈치만 보며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으로 행동하는 나와는 정반대로,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자신감 넘치는 행동을 하는 "삐삐"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굴하지 않고, 그녀 특유의 재치와 명랑함으로 어려운 환경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삐삐"를 보면 마치 내가 삐삐인 양 도취되곤 했다. 

나중에, 나중에 우리 아이의 그림책을 읽다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이름을 발견했고 그녀가 바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이며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마치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듯이 기뻐했다. "삐삐"는 TV 프로그램의 캐릭터가 아닌 책 속의 인물이라는 사실...그럼,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같은 것 말이다. 그 기쁨 안에는 "삐삐" 속에 저자의 어린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는 사실도 있다. 그래서 이 저자에 대한 알 수 없는 친밀함이 깃드는 것이다. 

어른들이 볼 때는 천방지축 망아지 같은 아이이고, 어린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삐삐"가 20대가 되면 어떤 느낌일까? 바로 그런 상상을 해 볼 수 있는 책이 <<베네치아의 연인>>일 것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자전적 여행 소설"이라는 문구 아래 말이다. 

카티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속기사로 일하는, 책벌레이면서 재기발랄하고 감수성이 무지 풍부한 아가씨이다. 함께 살던 이모가 결혼하여 미국 시카고로 이사간 후, 이모의 집을 물려받게 된 카티는 친구 에바와 1년간의 동거에 들어간다. 어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2년 이상 사귄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와의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 혼자가 되었어도 그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주위가 불안정하거나 걱정이 되기는 해도, 과감히 "독립"을 선택할 줄 아는 카티는 "삐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카티가 바라는 어떤 "사건"은 삐삐의 "모험"이나 "개척"과 같은 것이 아닐까?

카티는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는 친구를 장난(그 장난으로 불같이 화를 내기는 했어도..^^)으로 위로해주거나, 자신이 느낀 감동을 전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귀찮게 하기도 하는 등 조금 엉뚱하기도 하다. 이런 카티가 친구 에바와 함께 하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을 만나게 된다. <여행 소설>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이탈리아 곳곳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다. 카티의 감탄사를 읽으며 나도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 이 나이가 되도록 소렌토를 몰랐다니! 물론 소렌토에 대해 자주 듣긴 했지만 직접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누구든 내 앞에서 소렌토라는 이름을 꺼내기만 하면 눈앞이 희미해지고 멀리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넋을 읽고 서서 그곳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192p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소렌토를 모르고 "소렌토"하면 스파게티집이 생각나니...정말 한심할 뿐이다. 스스로를 책벌레라고 부를만큼 책을 많이 읽는 카티는 어떤 장소에 어떤 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지 잘 알고 있어 매우 부러웠다. 그런 감성들이, 그 여행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려서 여행을 간다면, 꼭 이런 친구와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카티는 사랑의 굴곡에 따라 여행지가 반짝거리기도 하고, 무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과정과 감정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귀여운 여인 카티가 다음엔 또 어떤 곳에서 어떤 사건을 기다릴 지...  그리고 렌나르트와의 사랑은 계속 이어질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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