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각자 살아온 인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인생관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그 책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오직 하나뿐인 책이 될 가능성이 많다.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이어도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면 "이 책이, 왜?"라고 되묻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생이고,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주인공들. 새로운 신도시를 개척하려는 1세대 부모들을 따라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와, 한 초등학교에서 만나게 된다. 2000년대를 미지의 세계로 생각하며 '희망'과 '꿈'이라는 단어로 가득했던 그때, 그들은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27년 후, 마흔살에 타임캡슐을 열기로 하고 각자의 소중한 소지품들을 땅에 묻는다. 하지만 마흔살이 되기 일년 전, 학교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들은 타임캡슐을 꺼낸다.

주인공들과 나는 10년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아주 많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당시 온통 논밭이었던 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새롭게 떠오르던 곳, "잠실"로 이사한 것이다. 4학년 겨울방학 때 이사하여 5학년 전학간 곳은 나처럼 새로 이사한 아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워낙 이곳저곳에서 이사한 아이들이 많아 텃새...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6학년으로 진학했고, 난 6학년 3반이 되었다.(주인공들과 같다. 이렇게 신기할 때가...^^)

어렸을 때 친하던 친구들, 혹은 친하지 않았더라도 부러워했던, 혹은 시기했던 그리고 동경했거나 무시했던....친구들을 어른이 된 후 다시 만나는 느낌은 어떨까. 어릴 적의 내가 지금의 나와는 상당히 다르듯이 친구들도 그때의 그 느낌은 물론 아닐 것이다.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으나 동경했던 친구가 너무나 초라해 보이거나...혹은 은근히 내가 더 잘났다고 무시했던 친구가 오히려 동경할만한 위치로 보인다면..그 당혹감은...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은 그렇게 만난다. 겉으로는 예전 그대로인 것 같지만 "마흔"이라는 나이의 그들은 이미 "도라에몽"과 그 친구들 별명을 가졌던 예전 그대로의 그들은 아니다. 시라이시 선생님이 남긴 유언같은 편지의 마지막 말,



"여러분의 마흔 살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지금 행복한가요?"....71~72p

 

이 말에 자신있게 "네!"하고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아니, 조금은 모자란 듯 언제나 밝고 명랑한 고헤이 한 사람을 빼놓고는.

21세기가 미래였던 시절 그들이 꿈꾸던 것은 더욱 밝고, 더욱 행복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흔을 앞둔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21세기는 힘겹고, 고통스럽고, 쓸쓸하기만 하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도 힘에 부친 이들에게 어렸을 적의 '희망'과 '꿈'이 있는 미래는 이미 현실이 되었건만 그 어디에도 '희망'과 '꿈'은 보이지 않는다.

나도 친구들을 만났다. 2000년을 막 넘은 때였던 것 같다, 그당시 한창 유행했던 한 사이트를 통해 나의 6학년 3반 친구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친구는 단 한 번의 참석 후 다시는 나오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다들 그 옛날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인데, 자신만은 너무 변한것 같아서 못나오겠다고 했단다. 그때 떠오른 단어가 '위선'이었다. 나의 위선. 나도 그 예전의 나는 아닌데, 그 친구에게 그렇게 보였다면...난 거짓이었구나..하는 생각. 우리 모두 조금씩은 그런 위선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데쓰오가 비록 지금은 체격도 작고 가족에게 버림받는 처지에 있지만 어렸을 적 <도라에몽>의 자이언 모습으로 남아있고 싶어했던 것처럼 말이다. 

시라이시 선생님의 물음에 대한 답은... 마흔이 되어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은 또 한 번 타임캡슐을 묻는다. 10년 후의 나에게 남길 소지품을 담아, 다음엔 선생님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4, 5년 후면 나도 마흔이다. 마흔...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서른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정점에서 내려가는 길만 남은듯한 느낌. 그때 나는 무엇을 타임캡슐에 담을 수 있을까. 또,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내게도 어렸을 적 꿈꾸던 '꿈'은 사라졌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몇 년 후에도 '희망'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꿈'도 꿈꿀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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