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그리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그리스는 여러 나라들로부터 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지배 기간(BC 388년 ~ BC 2세기), 로마제국·동로마제국의 그리스 지배(BC 2세기 ~ AD 1453년), 오스만제국의 그리스 지배(1453년~1830년) 이후에 그리스에는 입헌군주제가 부활했지만(1949년~1967년) 곧 파파도풀로스의 군사정권(1967년 4월 ~ 1973년 11월)과 이오아니데스의 군사정권(1973년 11월 ~ 1974년 11월)이 들어섰다. 그러다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사회당(PASOK) 집권(1981년~1989년)하고 이듬해는 미초타키스의 신민당이 집권(1990년 4월 ~ 1993년 10월),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의 사회당(PASOK) 재집권(1993년 10월 ~ 1996년 1월), 시미티스 총리의 사회당(PASOK) 집권(1996년 1월 ~ 2004년 3월),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의 신민당(ND) 집권(2004년~2009년 10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의 사회당(PASOK) 집권(2009년 10월~)하고 있다.
감상에 젖어 그리스를 여행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리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금융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금융위기 원인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았지만 최근의 프레시안 기사가 사태 추이를 잘 파악하고 있어 길지만 인용해 본다.
2008년 9월 중순 리먼 브라더스(Leman Brothers)가 파산한 날로부터 벌써 4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 거대한 투자은행의 파산으로 세계금융은 시스템 붕괴라는 현실적 위협에 직면했다. 리먼 파산 이후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에이아이지( AIG)가 파산했고 한 달이 지나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은행도산으로 기록된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이 파산하고 그 다음에는 와코비아 은행(Wachovia Bank)이 구제 요청을 해왔다. 이후 유럽 은행들의 파산 물결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자본주의는 시계제로의 상태에 놓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리먼 사태는 2000년대 초 미국의 부동산 거품과 관련이 있다. 소득도 일자리도 자산도 없는 "NINJA(No Income No Job or Asset)에 대한 무분별한 대출," "'사기에 가까워진' 증권화"로 발생한 대폭발은 금융권과 실물부분에까지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리먼의 파산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1막"의 절정에 해당한다. 이 사태로 자본주의가 붕괴하지는 않았지만, "금융계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모습까지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세계를 흔든 이 대폭발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월스트리트는 다시 활력을 찾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알맹이 없는' 월가 개혁은 소리만 요란했지 별 다른 소득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적인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월가는 죽지 않았으며,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의 구제는 원했지만 규제는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제2막'인 유럽의 재정위기와 유로존 붕괴 혹은 재편의 상황으로 전환했다. 스페인의 위기를 분석한 오스카르 구티에레스(Óscar Gutiérrez)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유럽은 "EU의 지시대로 GDP 3퍼센트 이내로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한 가위질로 고통 받고 있다." 긴축으로 경제 불황이 심화되어 실업률이 크게 증가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남미로 이주하며 사람들은 보건 의료와 교육 등 복지 부문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유럽에 닥친 불황이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강타할 때만 해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스페인 사람들이 돌연 최근 몇 달 사이에 비관주의에 빠진 것이다. 복싱에 비유하자면 스페인은 아직 녹다운되지는 않았지만 연타를 당해 휘청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미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체념한 채 자신들에게 처한 현실에 그대로 순응하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반란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점거운동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세계로 확산된 'Indignad@s 운동', 영국의 예산 삭감과 세금 면제에 대항하는 직접행동 'Uncut'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에 분노하며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긴축에 반대한다", "부자에게 세금을",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금!" 등. 이들의 외침은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억압당하던 사람들의 분노이며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금융자본에 대한 분노이자 1퍼센트 부자만이 행복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의 주류 언론에서 소개된 것처럼 그리스의 국가부도위기는 그리스인들의 방만한 행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은 게으르다", "그리스에는 휴일이 너무 많다", "그리스는 우리 돈으로 명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리스인은 사리사욕이 심했다", "그리스인은 분수에 넘치게 살았다" 등 그리스인들의 행태가 이번 위기를 야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로존 위기는 유로통화체계의 구조적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이 구조적 불균형은 물론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은행에 대한 막대한 구제금융이 재정위기를 촉발했다. 그리고 단일통화체제를 사용하면서도 부채에 대한 최종 부담을 각 국 정부가 지기했기 때문에 발생한 금리격차로 재정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나아가 경쟁력, 투자, 단위노동비용 등에서 나타난 생산력 격차로 국제수지 불균형이 나타났는데도, 단일통화체제로 인한 자국 통화평가 절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문제는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또, 긴축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긴축으로 유로존 전체는 시체처럼 뻣뻣하게 경직되고 있다. 긴축에 따른 공공부문의 정리해고, 임금삭감과 노동조합의 약화, 퇴직연금의 감소와 퇴직연령의 증가, 공공 투자의 급격한 감소, 소비세 인상, 노동시장의 유연화 증대, 국부의 사유화 등 유럽에서는 '죽음의 한 방'이라 불리는 구타가 진행 중이다. 또한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자산 소유자들의 강도질이 긴축 정책의 도움을 받아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공적 구제금융, 금리격차를 이용한 돈벌이로 배를 불리고 있다. 나아가 긴축은 경제성장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자본이 이번 위기의 주범임에도 이들은 막대한 구재금융을 통해 국민전체의 부를 사유화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시장은 다시 통제되어야 하며 채권자들이 보유한 채무도 투명한 방식으로 탕감되어야 한다. 그리고 단일은행지구를 창출하고 회원국의 부채를 유럽중앙은행 부채로 전환하며 회원국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안적 경제사회 모형이 필요하다. "단순히 과거체제의 붕괴를 막거나 복구하는 것만으로는 노동 대중의 이익을 지키고 권리를 보장할 수가 없다. 이는 새로운 발전 모델, 새로운 사회모델, 새로운 노동 모델을 바탕으로 달성될 수 있다." 한마디로 긴축과 성장에 대한 대안은 '탈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
-금융 자본도, 구좌파도 믿을 수 없다! 프레시안, 201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