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사과의 마음 - 테마소설 멜랑콜리 다산책방 테마소설
최민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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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 크기일 테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우울을 테마로 한 소설 묶음집이다.

 

보통의 우울은 거리감과 함께 찾아오는 듯하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공들인 시간과 반비례하는 성취도, 갑작스럽게 변화 된 주변 상황과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상황 사이의 괴리감 등 무언가로부터 멀어지고 떨어지면서 마음이 끝없이 추락한다. 누군가는 외줄타기 하듯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낼 테고 또 누군가는 시소에 올라타 앉은 듯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위로하며 견뎌낼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의 이야기가 6가지의 단편에 담겨져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없이 무언가를 잃어간다. 어릴 적 내 분신과도 같았던 애착 장난감도, 언제 불러도 뛰어나올 것 같던 같던 옆집 친구도, 평생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던 할머니가 불경을 읽으시던 목소리도. 눈앞에서, 기억에서 자꾸만 사라져가는 게 이젠 익숙해지는 것이 더 겁이 날 지경이다. 제일 슬픈 건 내 자신까지 잃어가는 걸 덤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존감도 용기도 없어지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도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어서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무슨 나쁜 일이나 슬픈 일이 들이닥쳐야 느낄 것 같았던 우울감이 그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나를 잠식해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낯설고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렇다 할 원인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서 이따금씩 드는 어두운 감정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런데 이 책의 6가지 이야기가 이건 비단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은주가 겪는 눈의 이물감, 미듬의 수모에 생긴 구멍과 같이 정면으로 마주하고 치유해야 하는 감정의 신호가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도 와 있을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 중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불행한 것일까. 일어나지 않았어야했던 인재로 인해 고용환경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이 커져 문제 제기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면 그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은 우울한 사회적 이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겠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진정시킬 여유도 없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부인이 혹여나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까봐 불안해하는 경조의 심정은 얼마나 막막할까. 삐쩍 곯아빠진 외로움이 신체를 지배하는 여관직원의 헛헛한 마음은 지면을 타고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은주를 차로 친 남자처럼 겉만 봐서는 그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좋은 인상에 속는 일이 없다면 잘못된 결혼이나 사기를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눈 여겨 보는 일에 서툴다면 내 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힘들고 피곤한 마음을 달래고 위안이 되는 무언가를 기꺼이 제공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간 은영이 아버지처럼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용기를 짜낼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여행지에 간다고 해도 내 마음이 맑지 못하면 그 무엇도 눈과 마음에 담아낼 수 없다. 이 책을 보고 우울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내 마음이 아직은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그저 다른 깊이로 우울감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이 잘못되거나 실패한 인생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우리 안에 존재하는 우울이라는 씨앗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그것이 더 크게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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