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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답이 있다 - 과학적 혁신에 영감을 준 자연의 13가지 아이디어
크리스티 해밀턴 지음, 최가영 옮김 / 김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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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자연에 답이 있다 (크리스티 해밀턴, 김영사, 2024, 11)

제목이 책 내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부제가 과학적 혁신에 영감을 준 자연의 13가지 아이디어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의 답은 모두 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의약품 보존기술부터 의료영상진단기술까지 최신 연구 성과들이 어떻게 자연에서 답을 발견했는지 사례로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수많은 과학적 혁신이 자연의 진화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동시에 전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지식이 확장될수록 더욱 겸손한 자세로 자연을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저절로 그러한 것(자연)이 가장 최상의 덕이라는 철학적 깨달음을 과학적 혁신을 통해 재확인하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관심과 끈기가 있어야 답이 보인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적 혁신은 모두 누군가의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문제든, 답이든 관심이 없으면 찾을 수 없다. 또한, 그 관심을 바탕으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끈기가 없다면 최상의 답에 도달할 수 없다. 나는 저자가 소개한 연구자들이 모두 관심과 끈기가 있었기에 결국 답을 찾았거나, 앞으로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날 앤절은 훗날 수백만 광년 떨어진 엑스선도 잡아내는 망원경의 개발로 이어질 아이디어를 이 사소한 해양생물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56, 별을 낚다.)

 

문제든, 답이든 그것이 아무리 우리 주변에 널려있더라도, 그것을 발견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시급한 곳은 학교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은 물론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암기력만을 가르치고 절대적인 평가 기준으로 활용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암기 공부 이외의 다른 영역에 관심을 두는 순간, 학생은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이 책을 옮긴이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년이 꿈을 꾸기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과학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꿈꿀 수 있어야 미래도 있다.”(401, 옮긴이의 글)

 

우리 학생들이 관심과 끈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학생들이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끈기 있게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도록 실패를 인정해주고, 끝까지 지원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선 당장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지원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우리 교육의 폐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 하나뿐이라는 믿음이다. 이 잘못된 믿음은 우리가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크나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정답이 하나만 존재할 수 없음을, 그리고 답이 하나의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이곳저곳에서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화는 선구안을 갖고 있지도, 신성한 계획 같은 것을 미리 세우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 생체모방은 주어진 제약 조건 안에서 적당한 방향을 제시할 따름이다.”(12, 들어가는 글)

 

벌집 구조는 자연이 튼튼하고 가벼운 건축을 위해 발전시킨 기술이지만 망원경용 반사경에도 쓸모가 크다.”(51, 별을 낚다.)

 

교사로서 십수 년을 살아왔다.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은 신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늘 자괴감이 드는 것은 모든 수업이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정답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할 때, ‘정답을 하나만 쓸 수밖에 없도록 평가 문항을 만들 때, 학생이 시험에 나오나요?’라고 질문할 때 그런 자괴감이 든다. 시험에 나오는 것은 중요한 것인가.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공부할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이런 식의 교육으로 우리 학생들은 정말 우리 문제를 해결할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자연은 거대한 도서관이다.-

 

자연에서 답을 찾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공통으로 발견한 부분이 있다.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다. 연구자들은 자연은 거대한 도서관으로, 엄청난 지식을 품고 있는 가능성의 보고(寶庫)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아주 소중하게 다룬다. 우리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고 그 가능성을 파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그 자연을 아주 쉽게 대상화하고, 전혀 거리낌 없이 파괴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아마 자신이 파괴한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졌는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교육을 통해 최소한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주변(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면 우리는 인간의 시야와 사고가 얼마나 편협한지 알 수 있다.”(71, 별을 낚다.)

 

벌 무리는 협동 본능이라는 타고난 특기를 십분 발휘해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엄청나게 빨리 모은다.”(125, 누가 책임자입니까?)

 

자연의 탄소 처리는 순식간에 감쪽같이 끝난다. ……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인간의 창작물에서 나온 탄소가 대부분 고스란히 쌓여갈수록 태산을 이루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211, 콘크리트처럼 탄탄하게)

 

자연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나게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과학적 혁신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세상 모든 물질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내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고, 어떤 물질과 함께 생활하는지를 찾아보게 되었고, 과한 것보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결과를 보여준 곰의 동면을 통해 영양제를 과다하게 복용할 바엔 손실을 줄일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몸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화학적 약물치료로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빛과 눈과 두뇌가 창조해낸 바깥세상이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내 잘못된 태도를 반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답을 발견하더라도-

 

관심과 끈기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은 연구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답은 우리 삶에 바로 적용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가 인정하는 안정적인 해결책이 우리 앞에 딱 나타나더라도 우리는 그 답을 실제로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욕구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도 하다.”(350, 창문이 주는 고통)

 

인간의 욕구와 새의 안전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내 불편함을 통해 새의 안전을 지켜주겠다고 선택하는 인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의 욕구가 중요한가, 해결책이 중요한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에서 발견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은 단순한 개인의 의지에 맡겨서는 해결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정치적 논쟁과 제도적 규제를 통해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초 연구는 인간에게 직접적이고 분명한 파급력을 미치는 이른바 상급연구의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387, 지혜의 빛)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당장 상품화가 되는 기술은 투자와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의 기초가 되는 연구들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순수한 호기심과 관찰에 투자할 기업이 있을까. 역시나 이 부분도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엄청난 영감과 혁신을 줄 수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완해줄 답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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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 다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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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공감의 시대 (프란스 드 발, 김영사, 2024, 21)

생물의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는 공감 능력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생존을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매우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갖춘 동물로 진화했기에 지금과 같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근거가 유인원 연구라는 점에서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다. 유인원이나 돌고래, 코끼리뿐만 아니라 심지어 새조차 인간과 유사한 공감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이나 로크의 사회 계약설에서 우리가 배운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전제를 모두 허구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생물학이 인간 사회를 새롭게 해명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꺼이 정치적 논쟁에 뛰어든다. 경쟁이 만연한 시대, 능력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저자는 인간의 공감 능력이 필요한 시대, 공감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물학과 정치학-

 

생물학이 정치적일 수 있을까. 저자는 생물학이 인간 사회를 해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사회학이나 정치학,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본성은 온갖 억측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생물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전제를 바로잡으려고 정치적 논쟁에 뛰어들었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저자가 연구하는 유인원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산업화 이후 엄청나게 발전하였지만, 근본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욕구인 안전과 생존에 대한 욕망은 동물과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만이 예외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사회적 진화론을 배운다. 이런 질서가 우리 주변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바로 경쟁이다. 경쟁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원리는 자본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무한 경쟁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주변에 있는 사람을 경쟁자로만 보고, 그들을 밟고 올라가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아니 홀로 생존할 수 있을까. 물론 저자도 인정하듯,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일부는 고위직에 올라갈 수 있고, 타인을 짓밟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소통을 통한 신뢰를 구축하면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진정한 자연의 질서다. 경쟁하는 것만을 추구하거나, 공감만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인간의 본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만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장치일 뿐, 실상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경쟁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인 공감과 신뢰, 협력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바뀌었다.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묵인할 수 없는 새로운 상류층이 생겨난 것이다. 이 상류층의 많은 이들은 불과 몇 세대 전에 하급 계층에 속했었다. …… 그러니 부를 공유해야 마땅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그들은 밑에서 일하는 자들을 무시하는 건 당연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게 흠잡을 데 없이 명예로운 일이라는 말에 전율했다. 스펜서는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며 그들을 안심시킴으로써 부자들이 느낄 만한 양심의 가책을 말끔히 없애버렸다.” (53, 2. 다른 다윈주의)

 

저자에 따르면 진화론과 자본주의,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의 도덕적 양심을 떨쳐버리게 한 이데올로기였다. 그래서 저자는 이 이데올로기가 가져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동물의 본성 1, 공감-

 

그러면 공감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공감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형태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신체적 연결이 먼저 일어나고, 이해가 그를 따른다.”(107, 3. 몸이 몸에게 하는 말)

 

맞은편에 앉은 상대방의 행동을 무심코 따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영역이 아니라 체화된 반응이다. 그래서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기적’, ‘이타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 타인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이다. 우리는 분리되기보다 협력하고 함께하는 것을 더 원한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이 이런 공감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대다수 생물체가 공감을 할 수 있지만, 그 공감에도 일정 수준과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공감을 위해서는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여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를 거울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데, 유인원들은 거울을 보며 자신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자신과 다른 타인이 어떤 상황인지 분명히 인지하고 그 필요에 맞춰 도움을 주는 맞춤 돕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 신체적으로 연결되는 감정적 단계와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한 이해 단계가 잘 결합하여야만 공감을 통한 협력을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동물은 많지 않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공감을 할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만이 이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이 단계에 도달한 사례로 든 동물은 고래와 코끼리가 있다.

 

 

-동물의 본성 2, 공평, 공정-

 

저자는 공감을 통한 신뢰의 회복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보지 않는다. 협력만 추구하는 공동체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바로 공동체의 가장 큰 적, 무임승차자 문제다. 만약 누군가 타인과 공감을 바탕으로 협력을 하고자 했는데, 상대방이 그를 배신하고 이익만 취한 뒤 떠나버린다면, 타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결국 공동체가 붕괴하는 상황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물의 또 다른 본성이 진화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평함, 공정함에 대한 욕구이다. 그래서 동물은 본능적으로 평등주의자이면서 혁명가들이다.(222)

 

수백 명의 사람이 모두 서로를 신뢰하며 하나의 제트 여객기를 만들거나 여러 다른 단계의 직원들이 하나의 회사를 구성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조직화하고, 일을 분담하고, 과거에 교류했던 것을 기억하고, 노력에 맞는 보상을 하고, 신뢰를 쌓고, 무임승차자를 막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247, 6. 공평하게 합시다)

 

저자는 이 공정성, 공평함이 두 얼굴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동등한 수입(분배)이고, 다른 하나는 노력에 따른 보상이다.(265) 저자는 이 두 가지 공정성이 모두 중요하며, 하나만 극단적으로 주장했을 때 발생하는 폐해에 대해 경고한다. 그리고 이 두 공정성이 균형을 갖출 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라고 설명한다.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이상인 자유, 평등, 박애 중에서 미국인은 계속해서 첫 번째만을 강조하고, 유럽인들은 두 번째만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만이 포괄, 신뢰, 공동체에 대해서 말한다.”(268, 6. 공평하게 합시다.)

 

자유와 평등,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룬 사회에서만 상호 공감과 신뢰를 할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가 구축된 사회야말로 박애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세 가지 이상 중에서 박애를 가장 최상위의 상태라고 보고 있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 공감의 범위 넓히기-

 

저자는 인간의 본성이 구부러진 나무(274)처럼 쉽게 바뀔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조정할 수는 있다고 본다. 진화는 기존의 것을 내다 버리지 않고 그대로 품고 있기에 마치 러시아의 전통 인형처럼 가장 안쪽에는 자동화된 과정이 있고, 그 바깥에는 복잡한 인지 과정으로 이루어진 외층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282)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본성(기초)을 그대로 인정하되, 공감의 범위(외피)를 넓히는 방향으로 조정을 하자고 주장한다.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와 시장의 힘으로만 형성된 사회는 부를 생산해낼 수는 있어도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단합이나 상호 신뢰를 이끌어내진 못한다. 이것이 가장 행복도가 높게 측정되는 곳은 가장 부유한 국가가 아닌 시민들 간에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에서 나오는 이유이다.”(298, 7. 구부러진 나무)

 

얼마 전 읽은 압축 소멸 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소멸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행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행복함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공감하고, 신뢰를 회복하며, 서로 협력하고, 무임승차자를 잡아낼 수 있는 공정함을 지켜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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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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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압축 소멸 사회 (이관후, 한겨레출판, 2024, 11)

명쾌하고 속 시원한 진단이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대한민국이 왜 빠른 속도로 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한다.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빠른 속도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이 위기의 원인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해 나가기에는 엄청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아니, 이 위기를 극복할 수나 있을까.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이대로 소멸해버릴 것인가.

 

 

-압축 성장과 압축 소멸-

 

우리는 일제 식민 지배를 극복했고, 건국 직후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민주화, 산업화, 근대화를 이룩해 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이런 압축 성장이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추가되었고, 지금도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압축 성장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더욱더 빠른 속도로 압축 소멸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진국이 제시해 주었고, 그들이 발전 과정에서 겪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며 정해진 답을 암기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이 압축 성장의 시기에는 가장 중요했다. 지금 우리가 암기력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고, 그것으로 인재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이유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미래에 만나게 될 문제가 무엇일지도 상상할 수 없다. 당연히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하는지도 지금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압축 소멸을 경험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압축 성장시기에 만들어진 틀 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선진국인데, 대응 방식은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성장을 위한 원동력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것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현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더는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이 없다는 건 무엇일까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뜻일 겁니다. 이 공동체에서의 삶이 지금도 행복하지 않지만, 앞으로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44~45, 1부 대한민국은 왜 소멸을 선택했나)

 

희망이 없으면 무기력해진다. 어떤 목표도 달성할 수 없기에 당장 눈앞의 현실에만 집중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소멸되든 말든, 내 행복을 위해 지금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게 학교나 회사,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체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면, 대한민국이 소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라는 해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자는 정치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정치가 소멸해버렸고, 그래서 이 위기를 극복할 힘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정치란 가능성의 기예이며, 인간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갈등을 폭력이나 강압이 아니라 조정과 합의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76, 1부 대한민국은 왜 소멸을 선택했나.)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적 위기 상황이다. 대화와 타협, 협력과 소통은 이미 사라졌다. 이게 유독 현 대통령의 성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일 것이다. 권력 장악에만 급급한 정치인들을 보며 국민은 정치를 혐오하고, 무관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에서 보았을 때, 전형적으로 망하기 직전의 국가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제국을 경영한 경험이 없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모두 제국을 경험했고, 그 유산을 물려받았다. 나는 그 제국의 유산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한다. 제국은 단순히 주변 지역을 침략하고 식민 지배하면서 약탈만을 일삼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제국이 주변을 침략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지역, 다민족, 다문화를 품을 수밖에 없다. 하나의 순수한 집단, 민족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제국을 경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상 강력했던 제국은 모두 다원주의와 포용성을 근간으로 한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나 원()과 같은 과거의 제국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도 비슷하다. 우리의 제국 경험은 고구려나 발해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유산은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치학으로 본 한반도 현실-

 

정치학자인 저자는 한반도의 현실을 복합적 위기로 본다. 그 대다수는 현재 언론에도 보도되어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일부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이 사실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중요한 내용이 있어 그 부분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좋은 대학 나와서 안정적이고 괜찮은 소득이 보장되는 직장에 취업해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식이다. 굉장히 엘리트 집단 지향적이다. 표준 자체가 너무 높은 내러티브다.”(67)

 

충격적이다. 모두가 위와 같은 표준적인 삶을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저것이 상위 10%만 누릴 수 있는 엘리트 집단의 모습이라는 것을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아이에게 저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학급에서 3등 안에 들어야만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생각인가. 또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대다수 아이는 당연히 저 10%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또 저 10%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평범한 수준일 뿐이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이다.

어떤 이유로든 얄타 체제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세계 질서가 제1,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야만적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험을 의미합니다. 강대국들의 힘의 경쟁을 제어할 수단이 사라지고, 제국주의적 본성이 세계 곳곳에서 다른 나라들과 충돌하는 것입니다.”(120)

 

얄타 체제는 소위 우리가 아는 냉전 체제다. 이 냉전 체제가 전 세계적 평화를 유지하는 힘의 균형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냉전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우리 처지로서는 냉전이 우리의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이 주장에 약간 거부감이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냉전 체제가 있었기 때문에 강대국들의 상호 견제가 가능했고, 그 덕에 우리 같은 약소국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미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최전선에 있는 국가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북한이 파병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듯, 우리도 이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간과한다. 당장 미국의 힘이 동아시아에서 사라진다면,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중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도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소멸이 생물학적 자정 작용의 하나(134)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전 세계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문제를 대한민국이 가장 앞서서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그대로 소멸할 것인지, 아니면 이 위기를 극복할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니면 잘못된 해법만 계속 고집한다면 소멸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정치를 복원하고, 우리 문제를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현상만 보지 말고, 그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야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창조의 영역(252)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없는 것을 지어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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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답이 있다 - 과학적 혁신에 영감을 준 자연의 13가지 아이디어
크리스티 해밀턴 지음, 최가영 옮김 / 김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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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자연에 답이 있다 (크리스티 해밀턴, 김영사, 2024, 11)

제목이 책 내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부제가 과학적 혁신에 영감을 준 자연의 13가지 아이디어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의 답은 모두 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의약품 보존기술부터 의료영상진단기술까지 최신 연구 성과들이 어떻게 자연에서 답을 발견했는지 사례로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수많은 과학적 혁신이 자연의 진화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동시에 전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지식이 확장될수록 더욱 겸손한 자세로 자연을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저절로 그러한 것(자연)이 가장 최상의 덕이라는 철학적 깨달음을 과학적 혁신을 통해 재확인하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관심과 끈기가 있어야 답이 보인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적 혁신은 모두 누군가의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문제든, 답이든 관심이 없으면 찾을 수 없다. 또한, 그 관심을 바탕으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끈기가 없다면 최상의 답에 도달할 수 없다. 나는 저자가 소개한 연구자들이 모두 관심과 끈기가 있었기에 결국 답을 찾았거나, 앞으로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날 앤절은 훗날 수백만 광년 떨어진 엑스선도 잡아내는 망원경의 개발로 이어질 아이디어를 이 사소한 해양생물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56, 별을 낚다.)

 

문제든, 답이든 그것이 아무리 우리 주변에 널려있더라도, 그것을 발견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시급한 곳은 학교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은 물론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암기력만을 가르치고 절대적인 평가 기준으로 활용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암기 공부 이외의 다른 영역에 관심을 두는 순간, 학생은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이 책을 옮긴이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년이 꿈을 꾸기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과학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꿈꿀 수 있어야 미래도 있다.”(401, 옮긴이의 글)

 

우리 학생들이 관심과 끈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학생들이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끈기 있게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도록 실패를 인정해주고, 끝까지 지원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선 당장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지원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우리 교육의 폐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 하나뿐이라는 믿음이다. 이 잘못된 믿음은 우리가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크나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정답이 하나만 존재할 수 없음을, 그리고 답이 하나의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이곳저곳에서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화는 선구안을 갖고 있지도, 신성한 계획 같은 것을 미리 세우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 생체모방은 주어진 제약 조건 안에서 적당한 방향을 제시할 따름이다.”(12, 들어가는 글)

 

벌집 구조는 자연이 튼튼하고 가벼운 건축을 위해 발전시킨 기술이지만 망원경용 반사경에도 쓸모가 크다.”(51, 별을 낚다.)

 

교사로서 십수 년을 살아왔다.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은 신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늘 자괴감이 드는 것은 모든 수업이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정답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할 때, ‘정답을 하나만 쓸 수밖에 없도록 평가 문항을 만들 때, 학생이 시험에 나오나요?’라고 질문할 때 그런 자괴감이 든다. 시험에 나오는 것은 중요한 것인가.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공부할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이런 식의 교육으로 우리 학생들은 정말 우리 문제를 해결할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자연은 거대한 도서관이다.-

 

자연에서 답을 찾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공통으로 발견한 부분이 있다.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다. 연구자들은 자연은 거대한 도서관으로, 엄청난 지식을 품고 있는 가능성의 보고(寶庫)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아주 소중하게 다룬다. 우리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고 그 가능성을 파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그 자연을 아주 쉽게 대상화하고, 전혀 거리낌 없이 파괴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아마 자신이 파괴한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졌는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교육을 통해 최소한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주변(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면 우리는 인간의 시야와 사고가 얼마나 편협한지 알 수 있다.”(71, 별을 낚다.)

 

벌 무리는 협동 본능이라는 타고난 특기를 십분 발휘해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엄청나게 빨리 모은다.”(125, 누가 책임자입니까?)

 

자연의 탄소 처리는 순식간에 감쪽같이 끝난다. ……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인간의 창작물에서 나온 탄소가 대부분 고스란히 쌓여갈수록 태산을 이루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211, 콘크리트처럼 탄탄하게)

 

자연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나게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과학적 혁신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세상 모든 물질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내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고, 어떤 물질과 함께 생활하는지를 찾아보게 되었고, 과한 것보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결과를 보여준 곰의 동면을 통해 영양제를 과다하게 복용할 바엔 손실을 줄일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몸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화학적 약물치료로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빛과 눈과 두뇌가 창조해낸 바깥세상이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내 잘못된 태도를 반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답을 발견하더라도-

 

관심과 끈기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은 연구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답은 우리 삶에 바로 적용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가 인정하는 안정적인 해결책이 우리 앞에 딱 나타나더라도 우리는 그 답을 실제로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욕구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도 하다.”(350, 창문이 주는 고통)

 

인간의 욕구와 새의 안전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내 불편함을 통해 새의 안전을 지켜주겠다고 선택하는 인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의 욕구가 중요한가, 해결책이 중요한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에서 발견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은 단순한 개인의 의지에 맡겨서는 해결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정치적 논쟁과 제도적 규제를 통해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초 연구는 인간에게 직접적이고 분명한 파급력을 미치는 이른바 상급연구의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387, 지혜의 빛)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당장 상품화가 되는 기술은 투자와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의 기초가 되는 연구들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순수한 호기심과 관찰에 투자할 기업이 있을까. 역시나 이 부분도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엄청난 영감과 혁신을 줄 수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완해줄 답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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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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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

산문, 에세이를 읽은 것이 참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뭔가 허름한 노포 술자리에서 임지은이라는 사람과 진지한 대화를 하며 술 한잔을 진하게 기울인 듯한 느낌이 든달까. 그녀가 내 곁에 앉아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최근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매우 진솔하게 말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세이란게 이런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이 매우 신선했다.

 

선생님, 에세이는 도대체 뭘까요? …… 그러니까 에세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고 급기야는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야말로 에세이인가 싶기도 하고 …… 아직까지 제게는, ‘나 자신의 이럴 수밖에 없음에 대한 글이긴 한데요.”(221~222, 우정)

 

저자의 말 대로라면, 작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쓴 이 글이야말로 에세이인가 싶다.

 

 

-좋아함과 싫어함-

 

작가의 깊은 통찰에 탄복했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한 쌍이라는 부분을 읽으며 내가 왜 그토록 밋밋한 삶을 사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없는 만큼, 싫어하는 것도 별로 없다.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길수록 거기에는 모난 마음들이 불현듯 솟아나는 나에게 짙은 애정과 미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쌍이다.”(7, 작가의 말)

 

내가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좋아하게 될수록, 그것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친구를 매우 좋아한다면, 그 친구가 내게 소홀히 대하는 경우, 나는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작가의 이 통찰 덕분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비법(?)같은 것을 하나 얻을 수 있었는데, ‘이유 없이싫어하는 마음은 분명 어떤 좋아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균등하지 않은 사랑’(15)이다.

비단 이 진실은 내 마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내가 싫어하는 만큼, 다른 누군가도 나를 싫어할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쉽게 알아챌 수 있지만, 그가 나를 왜 싫어하는 지는 사실 잘 알아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지 생각해 본다면, 나를 싫어하는 그는 바로 그것이 싫었던 것일테니까.

 

 

-타인으로 인한 그늘-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지만, 모두 다 의존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만큼이나 타인으로 인한 그늘’(33)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 그것은 자라나기까지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나보다 훨씬 잘 알려진 사람이기에 분명 많은 사람으로부터 수많은 말을 들을 것이다. 나 또한 지금껏 살아오면서 타인에게 나에 대한 다양한 말들을 들었다. 오늘만 해도 어떤 말이 내 기분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것이 나를 흔들고 불쾌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꼭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말 덕분에 내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불필요한 눈치를 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비유해 보자면, 나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다. 수많은 말(파도)이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나는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무거운 평형추(타인으로 인한 그늘)가 필요하다. 타인의 말을 들으며 자라난 그 평형추는 큰 파도가 몰아쳐도 나를 안정감 있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라나는 그 그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자신의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세상을 벗어나려 애썼다. 자신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하고 배반(54)하며 살았다. 안정감 있는 평형추가 있었기에 작가는 좁은 연안을 벗어나 더 넓고 거친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작가가 그 흔들림과 든든함을, 밝은 면과 어두운 그늘을 함께 가져가려고 한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내가 더 오래 세상을 살아왔지만, 작가는 마치 인생 선배인 양 내게 아주 훌륭한 조언을 건네고 있었다.

 

 

-묘한 기시감-

 

이 책을 읽으면서 든 그 기시감. 너무도 이상했다. 뭔가 작가의 모습 속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쳐 보인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봐야겠다.

일단 어린 시절 가정환경으로 반지하. 맞벌이로 귀가가 늦은 부모님. 나를 위해 사주신 비싼 전집, 대백과사전. 그리고 그걸 열심히 읽는 나. 그 덕에 부모님보다 더 좋은 학력을 갖게 되었고, 인생을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술을 마셔도 절대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취한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일 바엔 위험하더라도 그냥 집에 혼자 가버리는 나. 외로움에 사무쳐 친구보다는 연애에만 집중했던 대학 생활. 미친 듯이 이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셔버리겠다는 호기로 매일 술을 마셨지만, 지금은 술을 거의 입에 대지도 않는 모습. 결정적으로! 작가의 동거인의 이름이 나오는데... 내 이름과 같다. 뭔가 이 부분에서는 화들짝 놀라게 되었다. 덕분에 이 책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가며 예전의 내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 보았다. 무엇이 달라졌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작가가 언급한 그 리셋 버튼’(177)도 지금의 내가 거의 매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내 인생에 후회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작가는 화실에서 강사로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이 부분 또한 내게 뭔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가 도망가지 않으면 아이들도 도망가지 않는다. 내가 진지하게 대하면 아이들도 진지해진다. …… 아이들은 어른보다 심장도 빠르게 뛰고 체온도 높아서 그 열기로 뭐든 익힐 수 있다.”(192, 쓰잘데기 없는 예체능)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당당함, 진지함, 아이들을 존중하고 믿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아이들을 충분히 믿고 있는지를 반성해 본다. 작가는 내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사람, 뭔가 멋짐이 뿜뿜 느껴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보고 싶다. 간절히 이런 친구를 사귀고 싶다. 어쩌면 작가는 내가 학생들 때문에 열을 뿜어내고 화를 토해낼 때,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사다 줄 것(208)만 같은 그런 친구다.

 

 

작가는 이미 충분히 든든한 어른이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나도 그처럼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어른들처럼 힘 있는 인간은 힘없고 연약한 인간을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었다.”(227, 나의 쪼그라든 개구리)

 

같이, 많이 웃고 살아!”(247, 죽은 할머니 안심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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