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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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박현수,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한국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식민지 조선에 등장한 새로운 음식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경성 맛집 산책󰡕, 󰡔식민지의 식탁󰡕 등을 썼다. 이번 책은 근대 문학에 묘사된 8가지 디저트를 담았다. 그래서 저자는 일종의 음식 문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디저트 문학자라고 해야 할까.

100년 전 식민지 조선에는 일본 문화가 강제로 이식되었다. 특히 저자가 선택한 8가지 디저트(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는 근대 문명의 가면을 쓴 음식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그 모습과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고 이 땅에 들어온다. 저자는 일본을 통해 이식된 근대가 우리의 전통을 단절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옳고 그른가보다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가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식민지 조선에 새롭게등장한 음식을 다루면서도 그 원조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음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를 찾는 데 주목한다. 그래서 그의 논문이 재미있지 않다는 평을 들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 소개에 이런 표현이 있다. ‘얘기나 강의를 하면 재밌는데, 논문은 안 그렇다는 말에 울컥해, 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는 글을 쓰려 노력 중이다.’) 아무래도 대중은 음식의 원조에 더 관심과 흥미를 보이지 않겠는가. 농이다.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

 

“100년 전 디저트를 다룬 이 책은 누가 더 많이 먹는지를 겨루거나 맛집 찾기에 몰두하는 데서 벗어나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를 더듬어보려는 작업의 하나다.”(6, 들어가며)

 

저자는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를 찾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넘나든다. 특히 이 책에서 선정된 8가지 디저트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밝히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 과정이 짤막하면서도 매우 깊이 있는 순서로 배열되어 있어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면서도 지금 우리가 먹는 디저트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게 되면서 놀라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물론 이 모든 디저트의 역사를 알게 된다고 당장 그것을 많이 먹는다거나 아예 먹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지 않은가. 100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커피를 마셨을지. 커피를 마시면서 무엇을 떠올렸을지. 커피는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했을지 생각해보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100년 전과 지금-

 

지금은 곳곳에 카페가 널려 있다. 간단히 시간을 보내거나, 공부하거나, 차를 마시기 위해 주로 찾는 공간이다. 일터로 가기 전에 잠시 들러 사서 가기도 한다. 한국인의 카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카페보다 다방이 더 식민지 조선에서 주류였다는 점은 매우 놀라웠다.

 

술과 함께 여급들의 에로틱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되면서 가족 손님이 더 이상 카페를 찾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51, 커피)

 

놀랍게도 100년 전 카페와 다방은 지금과 완전 정반대였다. 어쩌다 지금은 그 의미가 바뀌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분위기가 달라진 계기가 있을 것이다. 커피라는 낯선 음료가 식민지 조선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음료의 맛보다는 그 음료를 파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탄산음료와 물의 관계도 위와 유사했다. 일제 강점기 너무나도 익숙했던 자연의 물이 탄산음료의 출현으로 비위생적이고 전근대적인 표상을 얻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가 공장에서 생산한 음료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다시 물이 그 순수함과 깨끗함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물론 100년 전과 다른 의미의 표상이지만 말이다. 100년 전에는 자연에서 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었다면, 지금은 물조차도 공장에서 생산한 것을 사서 먹는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는 8가지 디저트는 이름만 닮았지, 그 실체는 100년 만에 많이 달라졌다. 그 의미조차 이제는 대부분 희미해졌다. 대부분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 유입된 디저트는 신기하게도 모두 단맛을 낸다. 커피는 하얗게 정제된 설탕을 듬뿍 녹였고, 만주는 달콤한 팥 소를 품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 단맛을 좋아해 이들을 찾는다. 그렇다면 이 단맛은 어쩌다 우리 곁으로 오게 된 것일까.

 

-일본과 조선, 서구 문물-

 

일본은 우리보다 빠른 속도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다. 음식과 디저트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이 책에 등장한 대부분 디저트는 모두 일본이 먼저 받아들여 크게 유행을 시켰고, 그것이 식민 지배와 함께 조선 땅으로 유입되었다. 물론 호떡만은 예외였지만, 그 호떡마저도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해 이주한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가지고 들어온 디저트였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일본이 서양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소화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중국 만두를 일본 만주로, 단팥빵으로 만들어 내거나, 서양의 멜론을 도입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참외 품종을 개량하려고 시도했다는 점 등이다.

반면에 식민지 조선은 말 그대로 대부분 디저트가 이식되었다. 일본에 비하자면 매우 수동적인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식민지 조선이 주체적으로 문물을 수용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일본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근대를 식민지 조선은 너무도 쉽게 동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근대에 열광했던 이효석이 조선의 자연미를 발견하는 장면과 이상이 죽기 전 초고가의멜론을 먹고 싶어 했다는 장면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이 얼마나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근대 문명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생생해 보여준다. 내게는 그것이 매우 충격이었다.

 

 

-익숙한 듯 낯선 역사적 사실-

 

한반도에 중국인이 대거 유입된 시기는 언제일까. 나는 그 시기를 임오군란(1882)이 발생한 이후라고 알고 있었다. 대규모 청군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상인들이 한반도에 진출했을 것으로 추측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것과 조금 다른 이야기도 실려 있다. 청일전쟁 패배 이후 오히려 많은 중국인이 본토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1920년대가 되면 식민지 조선에서 대규모 건축, 토목 공사가 시작되면서 값싼 쿨리(苦力)가 대규모로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 유입된 중국인은 청일전쟁 이전과 달리 하층 노동계급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호떡과 같은 값싼 음식을 파는 상인이 함께 등장했다고 한다. 한반도의 화교 역사에 대해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1898년 프랑스 신문에 실린 삽화(열강이 중국 영토를 분할해 빼앗으려는 모습)가 중국을 피자가 아닌 호떡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새롭게 알았다. 삽화의 원래 제목이 중국 호떡 나눠 먹기라고 한다. 이렇게 잘 알려진 삽화조차도 내가 모르는 점이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사실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디저트의 명칭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연원을 밝힌다. 동시에 그것이 식민지 조선에서 유행하게 된 상황까지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지를 살핀다.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일본이 가져온 근대에 열광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전통을 잃어버렸다. 일본이 내세운 선전과 세계관에 동원되고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인을 타자화하고 멸시했다. 지금 우리는 100년 전 새롭게 도입된 디저트를 먹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정제된 설탕과 초콜릿, 탄산음료가 건강에 좋고, 약으로도 사용된다는 근대 문명의 근거 없는 오만함은 이제 사라졌지만, 오히려 건강에 좋은 잃어버린 우리 전통 먹거리를 되살리려 노력하고 있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근대의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강제된 잘못된 세계관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는지도 살필 필요가 있다. 일본은 서양 문물을 도입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문화를 그렇게 발전시켜 나갈 역량이 충분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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