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지능 -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일곱 가지 수학 지능
주나이드 무빈 지음, 박선진 옮김 / 까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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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수학지능,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7가지 수학 지능 (주나이드 무빈, 까치글방, 2025, 초판 2)

 

나는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수포자였다. 수학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의 언어였으며, 암기의 대상일 뿐이었다. 모든 공식과 모든 문제를 암기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수학에서 쓰디쓴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수학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그 두려움만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났다. 교황청에서 발급하던 면벌부를 구매한다면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이 책은 평생 마음의 짐이었던 수학이라는 원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품게 해 주었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지적하고, 인공지능에 의존하게 되었을 때 발생할 문제를 방지할 목적으로 이 책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평생을 오해한 수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수학은, 특히 저자가 지적한 수학 지능은 내가 좋아하는 역사를 닮았다. 우리의 수학 교육이 품고 있는 원천적인 한계 때문에 내가 그 사실을 지금껏 몰랐을 뿐이다. 어쩌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그런 상상할 수 없는 모습까지도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았다.

 

 

-인간과 기계-

 

저자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에 가까워지고 있는 기계를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기계를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위해 기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학 지능은 생성형 AI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가드레일인 것이다.”(13, 한국어판 서문)

 

그래서 수학 지능은 과거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인류의 유산이지만, 인공지능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올 미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게다가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하고 활용하는 것은 현재의 수준에서나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참 아이러니한 책이다. 기계로 대체될 운명을 맞이할 수학자가 그 운명을 막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 운명을 맞이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자신감 있어 보이고 좋았다.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더라도 당당히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저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나는 수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문제가 주어지면 그 문제를 풀이할 해법과 정답을 암기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철저히 계산의 과정에만 머무른 것이다. 수학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조선의 수학자 홍정하(이창숙)”를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수학이 곧 일상생활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때부터 수학의 역사, 수학자의 역사를 찾아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학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이 책을 보면서도 역시 쉽게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수학의 역사가 지루한 계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노력(25)’이라는 표현을 보고 놀랐다. 최첨단 계산 도구가 인간을 계산에서 벗어나게 할 때마다 엄청난 도약이 있었다는 표현은 더욱 놀라웠다. 나는 계산이 수학 전부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나는 수학에 대한 오랜 트라우마를 벗어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수학의 매력-

 

나는 오랜 시간 수학이 내 삶과 동떨어진 외계 언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도 잘 나와 있지만, 수학자들이 단순한 수식으로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나와 같은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기호의 장벽(125)’이 세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간단한 수식으로 아이디어를 변환하고 증명하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사례들이 이 책에는 많이 소개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수학이 우리 일상에 매우 밀접하고, 수식이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되는 과정이 마치 역사에서 각종 율령과 통치 제도로 정비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이 선택된 이유는 우리의 해부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의 손가락 10개는 모든 계수기 중에서 휴대성이 가장 좋으므로 10은 군의 크기로서 가장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선택이다.”(109, 표상)

 

동아시아사를 가르칠 때, 칭기즈 칸이 10진법을 채택한 것이 매우 큰 혁신이라고 설명한다. 부족 단위로 흩어져 살아가던 유목민을 10진법으로 편제하게 되는 천호백호제의 등장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10진법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바로 그 애매했던 지점을 이 책은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세상이 어떤 수학적 아이디어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다. 아마도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일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방금 마신 음료수 병의 크라운 캡에서도 말이다.

 

증명은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스릴러 소설처럼, 탐정이 능란하게 단서를 조합하여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만큼이나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176, 추론)

 

내가 역사책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조각조각 흩어진 과거 사실들을 끌어모아 그것을 가장 개연성 있게 연결하여 당대 모습을 밝혀내는 것. 나는 설득력이 있는 그 과정을 매우 사랑한다. 그런데 그것이 추리소설의 쾌감이나 수학의 증명과도 같은 과정일 것이라곤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내게 수많은 놀라움을 선사한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한 덩어리로 훅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비록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적 개념들이 마구 튀어나오지만,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수학과 학교 교육-

 

저자에 따르면 7가지 수학 지능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그 선천적 능력을 우리 학교 교육이 박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정답만을 강요하는 폐쇄적인 교육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괴롭혀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정규교육을 받으며 수학에 두려움을 가졌던 것처럼, 나도 우리 학생들에게 역사라는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졌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희(놀이)로서의 교육과 문제 제기(질문)로서의 교육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은 일단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교육은 의심과 질문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답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그 시험 제도와 서열화부터 정리되어야 한다. 정답은 학생이 스스로 찾아나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교육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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