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실력, 장자 - 내면의 두께를 갖춘 자유로운 생산자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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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삶의 실력, 장자 (최진석, 위즈덤하우스, 2025, 초판 1)

 

오래전 건명원에서 최진석 교수의 강의를 방송으로 본 적이 있었다. ‘. 이 사람의 강의는 참 매력적이다.’ 생각했었다. 이분의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그때 내가 느꼈던 그 매력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그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이분의 강의를 왜 좋아했는지,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의 내용은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의 해석이다. 나는 이런 총체적 해석을 매우 좋아한다. (1장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아주 극소수의 기록만 남아 있는 상황. 저자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 삶을 살았는지 생생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그 설명이 지금 우리네 삶과 매우 닮아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사례를 들어가면서 인과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은 매우 탁월하다. 그래서 이 책은 장자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 삶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이 지점이 바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치다. 우리가 과거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서 학생들이 역사를 생생하게 배우길 희망한다. 하지만 나는 저자만큼의 내공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안다. 잘못 따라 했다가는 약장수나 사기꾼이 될 수준에 불과하다.

 

 

-도가, 자기 함량, 두께를 키우는 공부-

 

저자는 철학자이면서 과학적 사유를 먼저 공부할 것을 권한다. 그것은 우리가 도가 사상에 대해 오해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위자연처럼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도가 최고의 가르침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자연 그대로 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결국 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자연 그대로를 보는 결과적인 모습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이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황가람, 나는 반딧불)

 

우리는 정답을 배우면서 살아간다. 나보다 먼저 살아본 사람들, , 선생(先生)과 선배(先輩)의 길을 뒤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고, ‘질문할 수 없게 되면서, ‘반성, 성찰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저 정답에만 매몰되어 살면서 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 위 노랫말처럼 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장자는 말한다.

 

장자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생각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것 모두가 편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철저한 공부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자기 함량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 보통 일들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빛낼 수 있다고 한다.

 

-작은 삶의 지침, ‘어른이 되는 법’-

 

사실 장자의 사상은 무엇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저자는 장자의 사상이 매우 높은 수준이고, 그 수준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야기 형식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가 오히려 구체성, 명확성을 드러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자도 그런 비판을 책의 끝에서 하고 있다.

 

“(장자가 명확히 하지 해명하거나 정의하지 않은 것)이렇게 되면 일상적인 생각과 철학적인 사유가 분명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 이런 태도 때문에 과학적 사유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그러다가 기술적 문명에서 과학적 문명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뒤처져, 결국 아편 전쟁으로 상징되는 치욕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었습니다.”(340, 13, 미끄러지는 빛으로 나아가며)

 

솔직히 나와 같은 수준에서는 장자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뭔가 깨달음은 있지만, 그 깨달음을 설명하기 어려워 입안에서 무언가 맴도는 느낌만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여러 해설이 마음에 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른이 되는 법이 최고였다.

 

장자는 어른이 어른으로 대접받으려면 젊은 사람들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젊은 사람들보다 공공질서를 더 잘 지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보다 독서를 더 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보다 더 신용을 지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보다 더 예의를 지키는 것이지요. 행동거지에서 젊은 사람들보다 더 나아야 합니다. 더 단정하고 더 의연해야 합니다. 왜냐면 더 많이 반성하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살았으니까요.”(111, 5, 관념에 갇히지 않은 사고)

 

나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공공질서를 잘 지키는지, 책을 더 읽는지, 예의를 지키는지 항상 스스로 반성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 행세를 하는 사람은 앞에선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뒤에선 뒷담화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앞에서도, 뒤에서도 어른으로 대접을 받고 싶다. 아니 스스로 어른이고 싶다. 장자가 말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런 작은 목표들이 제시되어 있기에 이 책은 많은 사람에게 유용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사람,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부모 등 우리 사회 많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지침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과 궁극적 질문-

 

질문하는 사람이 대답하는 사람보다 함량(자기 그릇, 도량, )이 크죠.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논쟁하는 사람보다 함량이 큽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시를 읊을 수 있는 사람이 함량이 더 큽니다. 시를 읊는 사람보다 소리를 다루는 사람이 함량이 더 큽니다. 소리를 다루는 사람보다 몸을 다루어서 춤을 추는 사람이 더 함량이 큽니다.”(123~4, 6, 우물 안 개구리임을 깨닫는 함량)

 

질문하는 사람이 정답을 찾는 사람보다 더 높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약간 놀라웠다. 이야기, , 소리(노래), 춤으로 점차 더 함량이 높아진다는 설명은 약간 의외였다. 사실 나는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높은 수준의 덕이 있다고 느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설명을 보면서 얼마 전 다시 보았던 영화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2009)’이 떠올랐다. 오의 주유와 제갈량이 금(악기)을 켜면서 음색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서로 연주만 하고 헤어졌을 뿐인데, 그 뒤 제갈량은 주유의 심중을 이해했고, 주유의 아내도 그것을 알아챘다. 사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중국식 허풍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이것이 가능할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도 저자는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을 언급한 것이 아닐까.

 

 

내가 나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의 삶을 사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사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209, 8, 근원을 살피고 다음으로 건너가는 주체)

 

나는 위와 같은 질문을 깊이 생각해본 경험이 없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저 주변 환경에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연습하느라 시간을 모두 보냈던 것 같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 질문에 답해보려고 애쓰지 않았고, 그래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었는가 보다.

근원을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모래 위에 큰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볼 시간도 없이 살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남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일명 명문대, 좋은 직장, 많은 돈, 집 구매와 같은 것들이다. 남이 원하는 것을 내 삶의 목표로 삼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이 없는 사람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모두가 나 자신이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서 을 언급했는지 모른다. 장자의 사상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최고 덕을 갖춘 경지에 도달하는 것보다도, 지금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힘을 기르는 것. 나는 그것이 장자가 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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