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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형사 부스지마 ㅣ 스토리콜렉터 6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8년 6월
평점 :
내가 느끼는 현대사회의 특징은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쓰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 '자칭 전문가'의 시대라는 것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터넷, 소규모 인쇄기술 발달 등을 발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재능있는 소수의 전유물에서 표현 욕구가 있는 다수에게 기회가 확대되고 담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책을 읽는 입장에서 양서를 분별하는 데 더 신중해야 할 필요는 생겼다.
또한 다양한 SNS, 인터넷 카페를 통해 독자들이 무척 적극적으로 서평을 게재하고 있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운영해 온 블로그를 발판으로 작가 데뷔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기껏해야 팬 사인회 정도였던 예전과 달리, 문화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동네 서점을 중심으로 북토크, 낭독회 등을 통해 저자도 독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회 모순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고 잘 갈아진 양날의 칼로 폐부를 후벼파는 듯한 독설을 서슴지 않는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님이 문단의 문제를 들고 왔다.
부스지마는 경찰 재직 중 작가로 데뷔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이다. 퇴임 후에도 경찰지도원이라는 이름 하에 사건 해결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얼핏 보면 온화하고 무해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입을 열면 독화살 같은 독설이 튀어나와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문단을 둘러싼 다섯 가지 사건에 경찰측은 부스지마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선배들이 모두 부스지마와 엮이기를 꺼려 억지로 콤비가 된 여형사 아스카는 부스지마를 따라 다니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
♧ 문예잡지 신인상 1차 심사위원이었던 한 작가의 죽음과 용의선상에 오른 자의식 과잉의 작가 지망생 세 명.
♧ 다른 작가의 아이디어 도용을 일삼으며 유능한 편집자 소리를 들었던 한 남자의 죽음과 죄의식도 없이 남의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작품을 써놓고 창작자 행세를 하는 세 명의 용의자.
♧ 신인상으로 데뷔한 신참 작가들에게 신랄한 비평을 했던 원로 작가의 죽음과 데뷔한 지 2, 3년이 지나도록 그럴 듯한 후속작 하나 못 내고 있는 세 명의 용의자.
♧ 작가와의 만남 이후 살해당한 한 작가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악의적인 서평은소 자기과시 욕구를 채우는 여자, 영혼의 파트너라고 빠져 있는 유사 스토커 여자, 작품세계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작가 지망생 여자, 이렇게 세 명의 용의자.
♧ 소설 원작을 드라마, 영화, 게임 등으로 영상화하며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전혀 다른 천박한 작품으로 둔갑시킨 한 프로듀서의 죽음. 그 소설 원작이 부스지마이기에 급기야 경찰에 조력 중인 부스지마도 용의선 상에 오른다.
작중에서 메이저 문학상을 비롯, 군소 문학상까지 수많은 문학상이 신인들의 등용문이 되고 있다. 실제로도 일본에는 정말 다양한 문학상이 존재하고 수상작들이 독자의 관심을 끌고 구매로 이끌어 출판계의 활력소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만 해도 나오키 상, 서점대상, 미스테리 대상 후보들은 최소 서너 권 맘에 끌리는 책은 읽고 수상작을 점쳐 보는 편이다.
출판사와 작가 지망생들의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게 작가 지망생들은 꿈에 그리던 데뷔의 기회를 손에 넣고 출판사는 신인 발굴과 동시에 문학상 수상이라는 광고문구로 일정부수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다. 독자도 어느 정도 검증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손해볼 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창작자'라는 미명 하에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현실감각을 상실해버린 작가 지망생과 작가들, 팔리기만 하면 아이디어 도둑질이든 협박이든 뭐든 하든 일부 편집자들,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작가들, 시청률과 아이돌의 기용을 위해 원작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각색해 버리는 자본주의 본위의 방송 비즈니스 등, 출판업계 관계자들의 작태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작가와의 신의를 깨부수면서도 손댄 작품이 대박을 터뜨리면 무조건 유능한 편집자로 칭찬받는 업계. 모방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세계. 그리고 창작자와 작가들이 특권계급이라고 큰소리치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95-96쪽)"
"달리 말하면 이상은 장래성, 현실은 수익성인 셈이야. 이 두 가지가 병존하지 않는 업계는 결국 쇠락하게 돼 있어 출판사에 적용시켜보자면 문화 사업이라는 성격이 이상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기업이 성립되지 않으니 현실적인 영리도 추구해야 해. (102쪽)"
출판은 예술과 상업, 이상과 현실, 문화 창출과 이윤 창출이라는 양쪽 측면을 가지고 있어 무엇보다 균형감각이 필요한 업계 같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깊은 공감이 됐다. 책 한 권이 나오기 위해 편집자, 작가, 번역가, 교정교열자, 인쇄업자, 마케터, 서점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데 사실 안 팔리면 그만인 것이다.
부스지마가 주제파악 못하고 자기애에 빠져 불세출의 예술가 행세를 하고 있는 하룻강아지 작가들을 데리고 책의 일대기(?) 투어를 하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안 팔려서 출판사로 반품되는 책들은 출판사의 자산으로 잡혀 세금을 내야 하므로 문서 파쇄기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촌철살인 독설과 통쾌한 사건 해결, 유쾌한 캐릭터 모두 역시 이름값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깊이 새겨주었다. 개인적으로 장편을 선호하긴 하지만 잘 짜여진 단편도 썩 괜찮다. 작가의 미번역본 중 전직 판사 시즈 할머니가 거실 의자에 앉아 사건을 듣기만 하고 사건을 해결해버리는 《시즈 할머니에게 맡겨 (미번역본)》도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이 책도 연작 단편집인데 정말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