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유혜영 지음 / 홍익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외국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실제로 원하는 곳에 가서 살아보기도 하는 나인데, 묘하게 유럽 국가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사실 거리로 따지자면 북미가 더 먼데도말이다. 유럽 한 번 갈 돈으로 일본에 호사스럽게 세 번 다녀오겠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스페인의 바닷마을에 사는 화가이자 작가인 저자의 담백한 글과 한눈에 봐도 맘을 환하게 밝혀주는 일러스트를 보며 스페인의 시골 바닷마을을 꿈꾸게 됐다.

작은 마당에는 식재료로 쓸 수 있는 허브를 키우고, 지천에 널린 열매를 따먹고, 꽃가지를 꺾어다 식탁을 장식하고 또 묘목과 씨앗을 양지바른 곳에 뿌려준다.

길고양이에게는 먹이를 나눠주고 요리를 해서 이웃들과 나눠먹고 이웃들과 함께 달리기를 한다. 김밥 팬이 된 이들에게 줄 김밥을 한가득 싼다.

아들 마르셀과 함께 뭘 하고 놀까 고민한다. 같은 동네로 시집 온 친언니의 집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다.

나쁜 엄마가 되길 결심하고 자기 일을 위해 육아가 서툰 남편에게 두 살 아들을 맡기고 수트케이스 들고 출장 간다.

정말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삶에서 그대로 구현해내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 삶. 내 작은 삶도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남의 삶이 부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스페인의 바닷마을, 납작 복숭아와 무화과가 익어가는 곳, 숲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른 그곳에서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

내 몸 속에는 아이 한 명이 숨어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선물을 받으면 내 몸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이가 꿈틀꿈틀 깨어나 행동을 개시한다. 기분이 좋아 물개 박수를 치고 선물 꾸러미를 헤치며 좋아라 한다. (60쪽)

아주 가끔 자다 깨 보면 마르셀도 내게 기대어 잠들어 있을 때가 있다. 그 순간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보는 듯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색색거리는 사랑스러운 숨소리처럼 평화롭고 고요한 지금 이 순간이 끝나지 않고 영원하길 바란다. 그럴 때마다 살포시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한다. (65쪽)

나뭇가지, 꽃가지 꺾는 것을 불법처럼 교육받고 자란 내가 시골 살면서 이곳 현지인에게 제일 먼저 배우는 일들은, 들에 나는 먹거리를 채취하고 전에 돈 주고 사야 한다고 생각했던 꽃들을 들꽃으로 대체해 즐기는 일이다. 이게 바로 시골 사는 맛이다. 늘 꺾고 따먹기만 하지는 않는다. 제자리가 아닌 땅에 씨가 떨어져 나는 무화과 묘목을 너른 땅으로 옮겨 주기도 하고, 작은 산불이 난 땅에 이웃들과 함께 소나무를 심었으며, 비가 내린 후에는 허브에 난 씨를 걷어 집 근처 들판에 뿌려주기도 한다. (111쪽)

나이 들수록 명확해지는 생각 하나. 매일 사용하는 물건일수록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을 가까이 두고 쓰고 싶다는 것이다. (182쪽)

스페인에서는 운전할 맛이 난다. 길에 사고만 없다면 고속도로는 막힘없이 120킬로 속도로 시원하게 달릴 수 있고 지방마다 풍광도 다채로워 운전하면서 지루하지도 않고 피곤함도 덜 느낀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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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유혜영 지음 / 홍익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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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실제로 원하는 곳에 가서 살아보기도 하는 나인데, 묘하게 유럽 국가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사실 거리로 따지자면 북미가 더 먼데도말이다. 유럽 한 번 갈 돈으로 일본에 호사스럽게 세 번 다녀오겠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스페인의 바닷마을에 사는 화가이자 작가인 저자의 담백한 글과 한눈에 봐도 맘을 환하게 밝혀주는 일러스트를 보며 스페인의 시골 바닷마을을 꿈꾸게 됐다.

작은 마당에는 식재료로 쓸 수 있는 허브를 키우고, 지천에 널린 열매를 따먹고, 꽃가지를 꺾어다 식탁을 장식하고 또 묘목과 씨앗을 양지바른 곳에 뿌려준다.

길고양이에게는 먹이를 나눠주고 요리를 해서 이웃들과 나눠먹고 이웃들과 함께 달리기를 한다. 김밥 팬이 된 이들에게 줄 김밥을 한가득 싼다.

아들 마르셀과 함께 뭘 하고 놀까 고민한다. 같은 동네로 시집 온 친언니의 집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다.

나쁜 엄마가 되길 결심하고 자기 일을 위해 육아가 서툰 남편에게 두 살 아들을 맡기고 수트케이스 들고 출장 간다.

정말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삶에서 그대로 구현해내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 삶. 내 작은 삶도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남의 삶이 부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스페인의 바닷마을, 납작 복숭아와 무화과가 익어가는 곳, 숲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른 그곳에서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

내 몸 속에는 아이 한 명이 숨어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선물을 받으면 내 몸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이가 꿈틀꿈틀 깨어나 행동을 개시한다. 기분이 좋아 물개 박수를 치고 선물 꾸러미를 헤치며 좋아라 한다. (60쪽)

아주 가끔 자다 깨 보면 마르셀도 내게 기대어 잠들어 있을 때가 있다. 그 순간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보는 듯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색색거리는 사랑스러운 숨소리처럼 평화롭고 고요한 지금 이 순간이 끝나지 않고 영원하길 바란다. 그럴 때마다 살포시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한다. (65쪽)

나뭇가지, 꽃가지 꺾는 것을 불법처럼 교육받고 자란 내가 시골 살면서 이곳 현지인에게 제일 먼저 배우는 일들은, 들에 나는 먹거리를 채취하고 전에 돈 주고 사야 한다고 생각했던 꽃들을 들꽃으로 대체해 즐기는 일이다. 이게 바로 시골 사는 맛이다. 늘 꺾고 따먹기만 하지는 않는다. 제자리가 아닌 땅에 씨가 떨어져 나는 무화과 묘목을 너른 땅으로 옮겨 주기도 하고, 작은 산불이 난 땅에 이웃들과 함께 소나무를 심었으며, 비가 내린 후에는 허브에 난 씨를 걷어 집 근처 들판에 뿌려주기도 한다. (111쪽)

나이 들수록 명확해지는 생각 하나. 매일 사용하는 물건일수록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을 가까이 두고 쓰고 싶다는 것이다. (182쪽)

스페인에서는 운전할 맛이 난다. 길에 사고만 없다면 고속도로는 막힘없이 120킬로 속도로 시원하게 달릴 수 있고 지방마다 풍광도 다채로워 운전하면서 지루하지도 않고 피곤함도 덜 느낀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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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 출간 30주년 기념판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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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하면 이 작은 나라에서 100만 부씩 팔리던 내가 어렸을 때 많이 들어보던 책 제목이었다. 이 책을 읽을 만큼 크진 않았던 때여서 읽어보진 않았는데 30주년 기념판으로 나온 책을 읽게 됐다.

빨래를 하는 이유는 정원의 풀을 뽑고 부엌의 서랍을 정리하는 이유와 똑같다. 정직하고, 시작과 끝이 똑 떨어지는 일을 함으로써 끝없이 복잡한 내 삶의 나머지 부분과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단순함이라고나 할까. (49-50쪽)

중3 때 담임선생님이 화가 나면 칼로 연필을 깎으신다고 했다. 단순한 그 작업을 반복하며 마음을 정리하셨던 것 같다. 나도 식구 모두 회사와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싹 바닥 한번 밀고 나면 기분이 새로워진다. 정리는 참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나는 끈적거리는 어떤 상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원래는 구두상자였는데 큰아이가 예쁘게 꾸며서 선물로 주었다. 그 뒤 상자는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준 선물을 담아두는 저장고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보물 상자가 되었다. ... 이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힘든 일도 견뎌낼 가치가 있게 한다. (148-149쪽)

엄마로서 산 지 이제 만 7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어쩌다가 한번씩 감동 주는 아이들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는 나를 구원해주고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을 준다. 고맙다, 아이들아. 부족함뿐인 나를 엄마로 받아줘서... 인사라도 하고 싶다.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서로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모퉁이 식품점의 남자, 자동차 정비소의 수리공, 주치의, 선생님, 이웃, 동료들이 그렇다. 항상 '거기에' 있는 좋은 사람들, 작은 일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매일 우리를 가르쳐주고 축복해주고 용기 내게 해주고 지지해주며,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지는 않는다.(188쪽)

우리가 알고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모르고 하는 행위도 선한 것이길 바라본다. 경계심 많고 엄청 몸 사리고 사는 나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선한 삶을 살 수 있길...

내게 위안을 주는 것은 종교도, 요가도, 술도, 깊은 잠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다. 그가 내 비장의 무기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틀어놓고 이어폰을 귀에 바짝 끼고서 바닥에 눕는다. 음악이 천지를 창조한 첫날처럼 들려온다. (240쪽)

1000프로 공감이다. 음악이 주는 위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내 경우엔 일본 싱어송라이터 마키하라 노리유키이다. 무한반복 재생이다. 유튜브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마키하라 노리유키 노래 없는 삶은 15년 전부터 상상할 수 없다.

인성교육이 더욱이 중요한 요즘, 일상 속에서 삶의 진리를 찾고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것만이 내 자녀들에게 위대한 정신의 유산이 대물림되는 유일한 길인 것같다.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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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형사 부스지마 스토리콜렉터 6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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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현대사회의 특징은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쓰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 '자칭 전문가'의 시대라는 것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터넷, 소규모 인쇄기술 발달 등을 발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재능있는 소수의 전유물에서 표현 욕구가 있는 다수에게 기회가 확대되고 담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책을 읽는 입장에서 양서를 분별하는 데 더 신중해야 할 필요는 생겼다.

또한 다양한 SNS, 인터넷 카페를 통해 독자들이 무척 적극적으로 서평을 게재하고 있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운영해 온 블로그를 발판으로 작가 데뷔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기껏해야 팬 사인회 정도였던 예전과 달리, 문화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동네 서점을 중심으로 북토크, 낭독회 등을 통해 저자도 독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회 모순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고 잘 갈아진 양날의 칼로 폐부를 후벼파는 듯한 독설을 서슴지 않는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님이 문단의 문제를 들고 왔다.

부스지마는 경찰 재직 중 작가로 데뷔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이다. 퇴임 후에도 경찰지도원이라는 이름 하에 사건 해결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얼핏 보면 온화하고 무해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입을 열면 독화살 같은 독설이 튀어나와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문단을 둘러싼 다섯 가지 사건에 경찰측은 부스지마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선배들이 모두 부스지마와 엮이기를 꺼려 억지로 콤비가 된 여형사 아스카는 부스지마를 따라 다니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

♧ 문예잡지 신인상 1차 심사위원이었던 한 작가의 죽음과 용의선상에 오른 자의식 과잉의 작가 지망생 세 명.

♧ 다른 작가의 아이디어 도용을 일삼으며 유능한 편집자 소리를 들었던 한 남자의 죽음과 죄의식도 없이 남의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작품을 써놓고 창작자 행세를 하는 세 명의 용의자.

♧ 신인상으로 데뷔한 신참 작가들에게 신랄한 비평을 했던 원로 작가의 죽음과 데뷔한 지 2, 3년이 지나도록 그럴 듯한 후속작 하나 못 내고 있는 세 명의 용의자.

♧ 작가와의 만남 이후 살해당한 한 작가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악의적인 서평은소 자기과시 욕구를 채우는 여자, 영혼의 파트너라고 빠져 있는 유사 스토커 여자, 작품세계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작가 지망생 여자, 이렇게 세 명의 용의자.

♧ 소설 원작을 드라마, 영화, 게임 등으로 영상화하며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전혀 다른 천박한 작품으로 둔갑시킨 한 프로듀서의 죽음. 그 소설 원작이 부스지마이기에 급기야 경찰에 조력 중인 부스지마도 용의선 상에 오른다.

작중에서 메이저 문학상을 비롯, 군소 문학상까지 수많은 문학상이 신인들의 등용문이 되고 있다. 실제로도 일본에는 정말 다양한 문학상이 존재하고 수상작들이 독자의 관심을 끌고 구매로 이끌어 출판계의 활력소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만 해도 나오키 상, 서점대상, 미스테리 대상 후보들은 최소 서너 권 맘에 끌리는 책은 읽고 수상작을 점쳐 보는 편이다.

출판사와 작가 지망생들의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게 작가 지망생들은 꿈에 그리던 데뷔의 기회를 손에 넣고 출판사는 신인 발굴과 동시에 문학상 수상이라는 광고문구로 일정부수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다. 독자도 어느 정도 검증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손해볼 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창작자'라는 미명 하에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현실감각을 상실해버린 작가 지망생과 작가들, 팔리기만 하면 아이디어 도둑질이든 협박이든 뭐든 하든 일부 편집자들,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작가들, 시청률과 아이돌의 기용을 위해 원작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각색해 버리는 자본주의 본위의 방송 비즈니스 등, 출판업계 관계자들의 작태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작가와의 신의를 깨부수면서도 손댄 작품이 대박을 터뜨리면 무조건 유능한 편집자로 칭찬받는 업계. 모방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세계. 그리고 창작자와 작가들이 특권계급이라고 큰소리치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95-96쪽)"

"달리 말하면 이상은 장래성, 현실은 수익성인 셈이야. 이 두 가지가 병존하지 않는 업계는 결국 쇠락하게 돼 있어 출판사에 적용시켜보자면 문화 사업이라는 성격이 이상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기업이 성립되지 않으니 현실적인 영리도 추구해야 해. (102쪽)"

출판은 예술과 상업, 이상과 현실, 문화 창출과 이윤 창출이라는 양쪽 측면을 가지고 있어 무엇보다 균형감각이 필요한 업계 같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깊은 공감이 됐다. 책 한 권이 나오기 위해 편집자, 작가, 번역가, 교정교열자, 인쇄업자, 마케터, 서점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데 사실 안 팔리면 그만인 것이다.

부스지마가 주제파악 못하고 자기애에 빠져 불세출의 예술가 행세를 하고 있는 하룻강아지 작가들을 데리고 책의 일대기(?) 투어를 하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안 팔려서 출판사로 반품되는 책들은 출판사의 자산으로 잡혀 세금을 내야 하므로 문서 파쇄기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촌철살인 독설과 통쾌한 사건 해결, 유쾌한 캐릭터 모두 역시 이름값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깊이 새겨주었다. 개인적으로 장편을 선호하긴 하지만 잘 짜여진 단편도 썩 괜찮다. 작가의 미번역본 중 전직 판사 시즈 할머니가 거실 의자에 앉아 사건을 듣기만 하고 사건을 해결해버리는 《시즈 할머니에게 맡겨 (미번역본)》도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이 책도 연작 단편집인데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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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진도 좋고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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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은 내가 할 테니, ○○은 열심히 하기만 해."

고3 막바지 수능이 끝나고 1, 2, 3군 지망대학에 3번의 본고사가 남았을 때 단짝이었던 친구가 해주었던 말이다.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나의 고교시절을 돌이켜볼 때 늘 생각나는 그 친구는 말하자면 입시전략에 성공하진 못했다. 다른 친구들은 상향 지원하여 막판의 막판까지 추가합격 연락이 오는 상황에서 친구는 대번에 합격해 버린 것이다. 즉, 자기 성적보다 좀 낮은 학교였다. 나는 수능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논술과 본고사 성적이 좋았고 거기서 승부를 봐야 했다. 한겨울에 세 번의 무거운 시험을 앞둔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 스산한 마음이었던 내게 자신의 아쉬운 입시 결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응원해줬던 친구의 말은 구원이었고 내 평생을 따뜻하게 해주는 말이 되었다.

그렇다. 말은 양날의 칼이다. 외과의사 손의 칼처럼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고 범죄자 손의 칼처럼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스피치 라이터들의 열정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계를 보여준 《오늘은 일진도 좋고》에서는 다음처럼 '말'이라는 것에 대해 표현한다.

반짝반짝하는 마물. 신기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금세 수긍이 갔다. 언어란 마물이다.
사람을 상처 입히기도 하고, 격려해주기도 한다.
...
좋은 마물로 만드는 것도, 나쁜 마물로 만드는 것도 스피커에 달렸다. (125-126쪽)

이 책은 안일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던 20대 여성 고토하가 인생의 멘토를 만나고 스피치를 통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스피치 라이터로 성장해 가며 라이벌이었던 천재 스피치 라이터인 남성과 결혼하게 된다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고토하는 '언어의 잎'이라는 의미로 유명한 하이쿠 시인인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이름이 무색하게 고토하는 하이쿠를 짓는 것에 관심도 소질도 없다.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일 뿐, 성취하고픈 것도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이 5년이 흘렀다. 그러나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였던 아츠시의 결혼식에서 만난 묘령의 여성 스피치 라이터 쿠온 쿠미를 만나며 평온, 안일, 매너리즘 자체였던 고토하의 삶은 일생일대의 변화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간다.

'살아있는 스피치 라이터의 전설'로 불리는 쿠온 쿠미가 중학교 때 부모님은 여의고 망연자실해 있을 때, 아버지의 친구였던 이마가와 국회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해줌으로써 쿠온 쿠미의 인생의 등불이 되어 준다.

멈추지 않는 눈물은 없단다. 마르지 않는 눈물도 없단다. 얼굴은 아래만을 보고 있을 수도 없어. 걸어 나가기 위해 다리가 있는 거야.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네게 준 몸을 소중히 쓰렴. 그리고 마음은 너 자신이 길러나가는 거야. 넉넉하게, 따뜻하게, 정의감 넘치는 마음으로 길러나가렴. (318-319쪽)

진심이 담긴 한 마디 말의 위력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더욱 깊이 깨닫는다. 순간 입에서 나온 형태도 없는 말이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할퀴어 피가 줄줄 흐르게 하기도 하고, 절망의 밑바닥에 있던 사람을 빛으로 끌어오기도 한다.

별 이변이 없는 한, 내 인생에서 더 이상, 대중 앞에서 스피치할 일은 없겠지만 따뜻한 한 마디, 한 줄의 말을 건네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쿠온 쿠미 캐릭터 진짜 매력 넘친다. 반면, 성장담의 주인공은 엉뚱하고 어설프나 감춰진 원석같이 재능이 잠재되어 있다는 상투적인 인물상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책에서도 그 공식을 벗어나진 못하는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주인공 고토하에게 초점을 맞춰 어떻게 노력해서 어떻게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고토하는 작중에서 수십 번 '분해 하고' 수십 번 '울고' 수십 번 '감동하는' 지극히 상투적인 캐릭터였다. 일본에서 4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던데 정말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족인데 고토하 역을 맡은 히가 마나미는 너무 반듯하고 어른스럽고 조용해 보이는 타입이라 미스 캐스팅 같은데 이걸 확인하기 위해 드라마를 한번 봐야겠다.

그리고 정치를 선과 악의 대치 상태로 너무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있어서 우리나라 뿐아니라 세계 각국의 작금의 정치상황들을 보건대 현실감이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허구성을 바탕으로 하되 개연성이 있는 소설이기에 그릴 수 있는 좋은 정치, 좋은 정치가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고 실제로 이렇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가들의 모습을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다 좋은데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언행일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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