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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유혜영 지음 / 홍익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외국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실제로 원하는 곳에 가서 살아보기도 하는 나인데, 묘하게 유럽 국가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사실 거리로 따지자면 북미가 더 먼데도말이다. 유럽 한 번 갈 돈으로 일본에 호사스럽게 세 번 다녀오겠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스페인의 바닷마을에 사는 화가이자 작가인 저자의 담백한 글과 한눈에 봐도 맘을 환하게 밝혀주는 일러스트를 보며 스페인의 시골 바닷마을을 꿈꾸게 됐다.
작은 마당에는 식재료로 쓸 수 있는 허브를 키우고, 지천에 널린 열매를 따먹고, 꽃가지를 꺾어다 식탁을 장식하고 또 묘목과 씨앗을 양지바른 곳에 뿌려준다.
길고양이에게는 먹이를 나눠주고 요리를 해서 이웃들과 나눠먹고 이웃들과 함께 달리기를 한다. 김밥 팬이 된 이들에게 줄 김밥을 한가득 싼다.
아들 마르셀과 함께 뭘 하고 놀까 고민한다. 같은 동네로 시집 온 친언니의 집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다.
나쁜 엄마가 되길 결심하고 자기 일을 위해 육아가 서툰 남편에게 두 살 아들을 맡기고 수트케이스 들고 출장 간다.
정말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삶에서 그대로 구현해내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 삶. 내 작은 삶도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남의 삶이 부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스페인의 바닷마을, 납작 복숭아와 무화과가 익어가는 곳, 숲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른 그곳에서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
내 몸 속에는 아이 한 명이 숨어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선물을 받으면 내 몸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이가 꿈틀꿈틀 깨어나 행동을 개시한다. 기분이 좋아 물개 박수를 치고 선물 꾸러미를 헤치며 좋아라 한다. (60쪽)
아주 가끔 자다 깨 보면 마르셀도 내게 기대어 잠들어 있을 때가 있다. 그 순간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보는 듯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색색거리는 사랑스러운 숨소리처럼 평화롭고 고요한 지금 이 순간이 끝나지 않고 영원하길 바란다. 그럴 때마다 살포시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한다. (65쪽)
나뭇가지, 꽃가지 꺾는 것을 불법처럼 교육받고 자란 내가 시골 살면서 이곳 현지인에게 제일 먼저 배우는 일들은, 들에 나는 먹거리를 채취하고 전에 돈 주고 사야 한다고 생각했던 꽃들을 들꽃으로 대체해 즐기는 일이다. 이게 바로 시골 사는 맛이다. 늘 꺾고 따먹기만 하지는 않는다. 제자리가 아닌 땅에 씨가 떨어져 나는 무화과 묘목을 너른 땅으로 옮겨 주기도 하고, 작은 산불이 난 땅에 이웃들과 함께 소나무를 심었으며, 비가 내린 후에는 허브에 난 씨를 걷어 집 근처 들판에 뿌려주기도 한다. (111쪽)
나이 들수록 명확해지는 생각 하나. 매일 사용하는 물건일수록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을 가까이 두고 쓰고 싶다는 것이다. (182쪽)
스페인에서는 운전할 맛이 난다. 길에 사고만 없다면 고속도로는 막힘없이 120킬로 속도로 시원하게 달릴 수 있고 지방마다 풍광도 다채로워 운전하면서 지루하지도 않고 피곤함도 덜 느낀다. (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