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틈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지넷 윈터슨 지음, 허진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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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빛은 1초에 지구를 세 바퀴 돌아. 나도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우리를 데려가 줘.[1]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은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현대 소설로 각색한 것이다. 원작의 줄거리가 프롤로그처럼 삽입되어 있지만, 이 리뷰에서는 『시간의 틈』에 등장하는 리오와 지노, 미미의 삶을 중심으로 읽을 것이다.

 

바로 지난주에 같은 게시판에 리뷰가 업로드된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무츠키와 곤, 쇼코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고 설명하면 얼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학교 도서실에서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이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고 상냥한, 따뜻한, 불가능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면, 리오와 지노, 미미의 이야기는 그보다 신랄하다. 또는 모질다. 아주 끝에 가서는 그래도 용서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어째서 이렇게 어긋나 버린 걸까. 인생에서 단서 또는 계기가 되는 순간들은 영화에서처럼 클로즈업되어서 눈에 잘 띄는 형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단순히 싫다, 좋다, 끔찍하다, 같이 분명한 방향성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폭탄처럼 터진 후에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시간의 틈』에서 그렇듯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리오이다. 그 잘못을 저지른 시점을 현재라 한다면 과거1, 과거2, 현재, 미래로 작품의 시간은 나뉜다.

 

과거1) 리오와 지노는 열세 살에 기숙학교에서 만났다. 둘은 한때 섹스하는 친구 사이였다. 지노가 ‘너, 나랑 할 때 여자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 리오가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더라도, 지노는 자기가 게이일까 봐 걱정을 했더라도, 둘은 친구 사이였다. 어느 날 둘은 자전거를 타고 누가 절벽 가장자리 제일 가까이로 제일 빨리 갈 수 있는지 내기했다. 지노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리오는 꼬드겼기에 경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노가 떨어졌다. 지노는 절벽을 구르고 또 굴렀다. 지노는 남은 학기 내내 병원에서 지냈고, 리오는 제일 친한 친구를 죽일 뻔했다는 사실에 비현실적으로 울었다. 마치 영화에서 그러듯이.

 

과거2) 그 후로도 둘은 계속해서 친구였다. 스물다섯의 리오는 사업차 파리에 갔다가 미미라는 매혹적인 여자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리오는 지노를 떠올린다.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떠올린다. 죽더라도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리오는 지노와 자신 사이에 15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음을 느낀다. 지노는 결코 리오를 탓하지 않았지만, 리오가 먼저 거리를 두었다. 아니, 리오는 거리가 거기에 있었고, 틈을 좁히는 방법을 몰라서 더 넓혔다고 변명한다.

 

“저 사람은 떨어지고 있나요? 아니면 사랑에 빠지고 있나요?”[2]

 

리오는 미미에게 청혼한다. 리오의 신랑 들러리는 지노이다. 리오는 지노가 ‘자신을 미미에게 넘겨주는 사람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 밤, 지노가 리오에게 한 키스는 너무 재빨랐기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같았다.

 

사실 미미는 리오의 청혼을 한 번 거절했다. 그래서 리오는 떠났고, 둘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 즈음, 리오는 친구인 지노에게 미미를 찾아보라고, 자신이 쓴 쪽지를 들려 보낸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지노는 미미와 자신이 그 주말에 사랑에 빠졌었다고, 잃어버렸던 아이들에게 고백한다.

 

현재) 리오와 미미에게는 아들 마일로가 있고, 미미는 둘째 딸 퍼디타를 임신한 때다. 이때, 리오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는 미미와 자신의 친구 지노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한다. 미미가 임신한 아이는 지노의 아이라고.

 

리오는 그래서 자신의 집에 웹캠을 설치하고,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지노와 리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고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러 번 반문하면서, 둘의 불륜을 확신한다. 그래서 지노의 차를 부수고, 미미를 폭행하고, 아이를 납치해 어떻게든 지노에게로 떠나 보낼 계획을 세운다. 리오의 동업자인 폴린은 묻는다. “지노한테 질투하는 거야, 미미한테 질투하는 거야?”[3]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미미와 리오의 아들 마일로는 죽고, 아이를 맡아 지노가 있는 뉴보헤미아로 데려온 리오의 정원사 토니는 부재중인 지노를 만나지 못하고 불량배들에게 살해당한다. 토니가 베이비박스에 미리 놓아둔 아이, 리오와 지노와 미미의 잃어버린 아이 퍼디타는 토니의 죽음을 목격한 솁과 그 아들 클로에게 발견된다. 병상에 누워 있던 자신의 아내를 제 손으로 죽이고 우울에 시달리던 솁은 자신이 빼앗은 아내의 생명 대신 새 생명이 온 것 같다고 느낀다. 이것이 그에게는 용서처럼 느껴진다.

 

미래) 어여쁜 소녀 퍼디타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남자 젤과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런데 솁의 생일 파티에 젤이 초대된 날, 젤의 아버지가 나타나 솁의 비밀을 밝힌다. 젤은 지노의 아들이다. 미래 시점에 지노는, 리오는, 미미는, 그들이 아이를 잃어버린 시점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세 사람은 뿔뿔이 흩어져 만나지 않고, 다만 지노가 만든 게임 <시간의 틈>을 지노와 리오는 계속해서 플레이하고 있다. 지노는 토니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날 사실 집에 있었다고 한다.

 

게임 <시간의 틈>은 미미의 노래 Dark Angel의 영감이 되기도 한 프랑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이 꾸었다는, 하늘에서 천사가 추락하여 좁은 뜰에 갇히는 꿈을 모티프로 한다. 이 천사는 어둠의 천사이고, 가장 중요한 게 없어진 세상에서 저항군인 인간들은 가장 중요한 것,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야만 한다. 공교롭게도 리오는 이 게임에서 어둠의 대천사를 플레이한다. 이 게임을 개발 중이던 현재에 지노는 천사가 뱀파이어처럼,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미미와 지노는 각자 두문불출하고, 리오는 회사 경영에만 정신을 쏟는 나날이 계속되지만, 마침내 지노에게 사정을 전해 들은 리오의 딸 퍼디타가 지노의 아들 젤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리오가 운영하는 회사 <시칠리아>를 방문하고, 솁과 클로는 여전히 실의에 빠져 집 안에 갇힌 지노를 데리고 또 같은 곳을 향한다. 퍼디타와 젤, 두 아이를 중심으로 미래의 시간은 돌아가고, 지노와 리오, 미미 세 사람도 드디어 재회한다.

 

 

3.

 

“잃어버린 모든 것은 되찾을 수 있어요.”[4]

 

복선처럼, 퍼디타를 잃어버리기 전 갓 태어난 퍼디타와 함께 입원중인 미미는 병원 간호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지넷 윈터슨은 소설 말미에서 ‘하나의 이야기에 가능한 결말은 세 가지밖에 없다.’고 썼다. 복수. 비극. 용서. 리오가 용서받는 까닭은 그가 16년간 자신을 미워하며 진정하게 회개했기 때문이다. 즉, 시간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인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잘못을 곱씹으며 이미 지나간 현재, 과거가 되었어야 하는 현재에 붙들려 있던 세 사람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음으로써 지금 있어야 하는 시간으로 돌아온다.

 

정말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모든 잘못이, 용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리오에게는 운이 좋게도, 퍼디타가 돌아온다. 리오는 용서받는다. 애초에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그러지 않아도 리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잘못을 곱씹으며 살고 있는 지노가 꼭 같은 말을 한다.

 

“내가 그 일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러고 보면 내가 한 선택들은, 다른 선택을 할 내가 없었기 때문에 했던 선택이었다는 기억이 나. 우리를 가두는 순간의 힘보다 우리가 더 강해져야만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거야.”[5]

 

리오가 용서받는 까닭은 정말은 시간의 힘보다 더 강한 퍼디타와 젤, 미미가 용서를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리오가 원하는 용서를 내릴 이들이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질 단 한 번의 기회를 붙잡은 때문일 것이다.

 

 

4.

 

앞서 리오와 지노, 미미의 이야기와 무츠키와 곤, 쇼코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했던 것은 아주 대략적으로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리오는 무츠키가 아니고, 지노에게도 미미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겁쟁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삼각형을 그릴 수 있었던 시점에서, 리오는 겁에 질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다. 상실이 두려운 사람의 선택 아닌 선택이다. 그 후에 그의 삶은 무기징역과 같다.

 

문학이 된 이야기는 모두 그렇지만, 이것은 꼭 리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 자유의지로 선택다운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때는 단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라고 쓰면서 기한을 영영 유예하는 것은 여전히 너무 겁이 나기 때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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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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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달 리뷰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을 썼다.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지 않은 상태로 본 책이었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전작이라는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었다. 제목이 익숙한 것으로 보아 서점에서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도, 유명한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다.


쇼코와 무츠키와 곤, 이 세 사람은 이상한 관계로 엮여있다. 쇼코와 무츠키는 부부지만 사실 이들은 위장 결혼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알코올 중독인 쇼코, 동성애자인 무츠키, 그리고 무츠키의 애인인 곤. 일반적으로는 내 남편이 동성애자이고 남자인 애인이 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쇼코와 무츠키는 서로의 약점을 감싸안으며 부부가 되었다.


책을 읽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작가는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였다. 동성애자인 남편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다. 소설의 후반부에 나오는 부모님과의 갈등, 이도 깔끔하게 해소되지는 않는다. 무츠키를 사랑하는 쇼코와 곤 사이에는 재미없을 정도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들은 친하다면 굉장히 친한 사이이다.


우리는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남녀 간의 사랑을 떠올린다. 더 나아가면 부모 자식이나 친구 간의 사랑 정도. 소설 안에서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쇼코가 무츠키한테 가진 감정은 분명 사랑이다. 진부하게는 힘들 때 생각나고 기대고 싶은 사람. 하지만 쇼코는 곤에게 질투를 느끼지는 않는다. 쇼코는 무츠키와 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둘의 사이를 응원한다. 심지어 둘의 아이를 낳으려고까지 한다. 무츠키도 분명 쇼코를 사랑한다. 곤과 쇼코를 동시에 사랑한다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야기하자면, 사랑을 해 봤어야 알지. 지금의 나로서는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이고 저건 어떤 사랑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소설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감정은 사랑이다.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을 다시 읽었다. 전과 다르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 것처럼 하더니. 하지만 여전히 쇼코는 무츠키와 곤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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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사계절 1318 문고 1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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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의 주인공 '할링카'는 친모에게 학대를 받은 뒤, 보육원에 들어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일견 '할링카'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톺아보면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퀴어로서 사랑에 빠져드는 그녀가 '할링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퀴어라는 자각은 없지만 말이다. 이 작품이 1995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할링카'는 잠이 들기 전,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보육원 생활을 곱씹으면서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한 명씩 한 명씩 평한다. '로우 이모'가 예전에 꺼냈던 친구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 중에서 '할링카'의 관심을 끄는 아이는 '레나테'와 '로즈마리'다. 먼저 '로즈마리'에 대해서 '할링카'는 이렇게 '내가 보기에는 그 애가 우리 기숙사에서 제일 예쁘(p.45)'며, '예쁘기 때문에 가끔은 그 애가 몹시 좋을 때도 있(p.47)'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즈마리'와 '할링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범상치 않은(?) 행동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가끔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내 침대 옆에 불쑥 나타나 서 있곤 했다. 눈으로 보기 전에 느낌이 먼저 온다.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내 침대에 앉아, 이불을 옆으로 밀치고 내 옆에 눕는다. (…) 그 애가 배를 깔고 누운 다음 잠옷을 목까지 끌어올리면, 나는 그 애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손바닥 전체로 하는 것이 아닝라 손가락 끝으로만 한다. 아주 부드럽고 약하게. 그렇게 해야 그 애가 좋아한다.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가락 밑에서 그 애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내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애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그 애의 살결은 부드럽고 따스하고 감촉이 좋다.(…)

 

 하지만 '로즈마리'는 이 일 외에는 '할링카'를 특별하게 대하는 것 같지 않다. '로즈마리'는 '할링카'를 '끌어안을 때도 있(p.46)'지만 '다음 날 아침에 그 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p.47)'하며, 또 '엘리자벳이 집시를 놀리는 농담을 할 때에도 그 애는 아이들과 함께 웃(p.47)'곤 한다. 또 '할링카'는 '로즈마리'가 '등을 쓸어 주는 일도 결코 없다(p.47)'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링카'는 '로즈마리'의 목소리가 들리면 반나절 동안이나 몸을 떤다. 그녀가 낮 동안에는 '할링카'가 투명 인간인 마냥 쳐다보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할링카'는 이런 '로즈마리'에 대해서 장장 3페이지를 할애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로즈마리'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그녀가 자기 대신 마치 '뚱뚱한 암소 같은(p.48)' '듀로'라는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두고 '하지만 상관 없는 일(p.48)'이라고 말한다. 로즈마리를 향해 있던 양가적인 애정이, 이미 다른 아이에게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바로 '레나테'다. 보육원에서 가장 어리고 잠들기 전마다 우는 아이지만 '할링카'는 '레나테'를 볼 때마다 오르키드 난초를 생각한다. 오르키드 난초는 '할링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절정체다. '책에서만 읽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p.34)'르는 꽃이지만, '이름이 예쁘니 아주 아름다운 꽃일 것 같다(p.34)'고 '할링카'는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그 오르키드 난초가, '레나테'와 연관되어 떠오르는 것이다.

 

레나테하고는 "지금 몇 시야?"라고 묻던가, "오늘 점심에 뭐 나왔어?"라든가, "세탁실에 전구가 하나 나갔어."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말만 하지만, 왠지 친밀감이 드는 아이다. 레나테가 이 곳에 들어온 이후부터 나는 오르키드 생각을 더 자주 한다. 아마도 그 애의 모든 것이 갈색이고, 연약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애는 머리카락이 연한 갈색이고, 눈도 연한 갈색이며, 피부도 연한 갈색이다. 오르키드는 보라색, 양홍색, 진홍색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 생각이 자주 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사실 '할링카'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할링카'는 '레나테'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며 '로즈마리' 이야기를 하고 '레나테가 내 친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p.43)'라고 말하지만, 이후 '물론 그 애를 내 동생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p.44)'는 말을 꺼낸다.  이 문장은 사실 '할링카'가 어떤 아이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문장이다. 이후 '할링카'의 회상에서 잠깐 등장하는 '삐삐'란 아이에 대해서도 '할링카'는 이렇게 설명하는데, 그 부분을 보면 '삐삐' 역시 '할링카'와 어느 정도 애착을 형성시킨 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할링카'는 '레나테'와 가까워진다. '할링카'는 '어머니 쉼터'를 조성하기 위한 기금을 모금하면서 얻어온 초콜릿을, 자신의 모금함에서 몰래 돈을 빼낸 뒤 '레나테'에게 줄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귀여운 변명(?)을 덧붙인다. '나에 대한 처벌로써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도록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하고 싶었다(p.88)'고. '할링카'는 '레나테'에게 초콜릿을 줄 생각을 하니 '아주 괜찮은 결론 같아서 갑자기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p.88)'고 말한다. 이후 '할링카'는 다소 우악스럽게 잠을 자고 있던 '레나테'의 입으로 초콜릿을 밀어 넣고, 이에 놀란 '레나테'는 일어나서 '할링카'를 바라본다. 이때 '할링카'는 분명하게 말한다.

 

레나테가 내 동생이었다면, 그 애를 정말 귀여워했을 것 같다.

 

 그리고 '할링카'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 장소를 '레나테'에게 공개한다. 그곳에서 둘은 서로에게 초콜릿을 먹여준다. 촛불이 일렁거려 서로의 얼굴이 계속 변하는 바로 그곳에서, '할링카'와 '레나테'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전에 내가 있었던 보육원에 어린애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말을 이었다.

"그 애도 너와 똑같이 잤어. 이불 귀퉁이를 얼굴에 대고 잤지. 이름이 삐삐야. 난 그 애가 내 동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었어."

"이상하다. 난 내게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언니가 있었으면 하고 늘 생각했었지. 모든 것을 도와 주고, 잘 아는 큰언니 같은 사람 말이야."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리 사이에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았다. 촛불이 흔들렸고, 밖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난 집에 친구가 한 명 있어."

레나테가 천천히 입을 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우정을 증명하기 위해 최근에 겪었던 일 가운데 가장 안 좋았던 일을 서로에게 말해 주었지. 스스로 창피해하는 그런 일 말이야."

나는 그 애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안 좋은 일을 말한 적이 없었다. 로우 이모에게조차. 이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모에게는 더욱 더 말할 수 없었다.

"그게 진심이니?"

내가 물었다.

()

"친구에게 부끄러운 것을 말하고 나면, 그 친구에게 못되게 굴거나 친구를 배신할 수 없게 돼. 만약 그런 짓을 하면 상대방도 배신할 수 있을 테니까."

 

 서로의 비밀을 번갈아 공유하는 이 의식을 통해 '할링카'와 '레나테'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날 밤 '레나테'는 '할링카'의 침대가에 불쑥 나타나 그녀에게 키스하며 "잘 자"라는 말을 남긴다. 이 일 때문에 다음날 둘은 서로 어색하게 마주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엘리자벳'이 '레나테'의 어머니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들먹이자 '할링카'는 '레나테'를 위해 난생 처음으로 주먹을 휘둘러 '엘리자벳'과 맞서 싸운다. 그리고 '레나테'는 싸움의 원인을 묻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용감하게 밝힌다. 사랑이 이 둘을 성장시킨 것이다. '할링카'는 이 사건 이후로 '레나테'를 '레나'로 부르게 되는데, '레나'는 '레나테'의 어머니가 부르는 애칭이다. 그리고 둘은 손도 잡고 키스도 한다. '레나테'의 키스에 대해 '할링카'는 '뽀뽀를 하고 싶으면 아무 때나 하는 아주 이상한 아이(p.153)'라고 하지만,  '이제는 나도 그런 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p.153)'고 넘긴다.

 

 '할링카'에게 있어 '레나테', 아니 '레나'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 된다. '할링카'는 기금 모금 활동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모금하여 상을 받게 되나, 그 상이 낯선 사람과의 소풍이라는 걸 알고 나서 매우 실망한다. 그러나 '레나'의 설득과  '따지고 보면 나에게만 상관 있는 단 하나의 내 진짜 상품은 이미 갖고 있는 셈(p.165)'이라는 생각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후반부에는 '로즈마리'에 대해 갖고 있던 감정이 '레나'로 옮겨간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로즈마리는 칼라에 수가 놓여진 예쁜 파란색 옷과 치마를 가지런히 접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 애가 할 일이 제일 많았다. 그 애의 옷장 안은 언제나 토끼들이 휘젓고 다닌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엘리자벳과 옷장을 같이 썼지만, 도리스가 집으로 가는 바람에 옷장이 하나 비게 되자, 엘리자벳이 로즈마리에게 혼자 쓰라고 했다. 엘리자벳은 그 애가 절대로 다른 사람과 옷장을 나누어 쓸 수 없는 아이라고 말했고,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로즈마리는 꽤 지저분한 아이다.

레나는 안 그렇다. 그 애의 옷들은 옷장 속에 언제나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

 

 이제 '레나'는 더 이상 잠들기 전에 울지 않는다. 또한 '레나'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할링카'는 자신이 '방금 전에 행복한테 의자를 내주었던 것 같다(p.210)'고 말한다. 사랑을 통해 소녀들은 성장하고, 행복해졌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여담이지만 언젠가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에 대해서 오프라인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 책이 퀴어문학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토록 명명백백한데 왜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나왔는지 내가 더 어리둥절해졌다. 어쩌면 '퀴어의 존재 지우기'로 생겨난 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리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동성 간에 오가는 감정은 절대 애정이 아닐 거라는 편견 혹은 그들의 애정은 뭔가 다를 거라는 편견이 많은 퀴어문학의 존재를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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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소녀를 사랑하다 올 에이지 클래식
낸시 가든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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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발견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샛노란 표지에 제목도 너무 분명해서 내가 남자라면 이 책을 읽어도 의심받을 일이 없을 텐데 마침 여고생이어서 동성애자로 오해받으면 어쩌지? 라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걱정을 하면서 남들 공부하는 야자 시간에 정독실에서 몰래 읽었다. 그때는 결국 읽다 말았는데, 지금 끝까지 읽어보니 담담한 목소리의 퀴어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퀴어 문학이 새삼스럽게 소중하다.

 

이 소설은 1982년에 발표되었지만, 한국에서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퀴어에게도 유효했다. 첫사랑에 빠진 여자애가 남의 집에서 처음으로 섹스하려다 들켜서 학교 이사회 회의에 소집되고, 그 집의 주인인 레즈비언 커플 선생님은 퇴직을 당하고 주인공 남매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지만, 그래도 리자와 애니의 연애는 계속되는 이야기.

 

내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은 2009년이었고,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키스하다가 불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학이었어도 남녀분반이었는데, 부반장과 반장은 썸을 타고 있었고, 나는 우정과 사랑의 차이를 성욕의 유무에서 찾으며 단짝에게 엄청난 집착을 하면서도 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던 중이었다.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서, 다니는 학교에서 학생회장을 맡은 리자는 친한 친구 샐리가 학교에서 귀 뚫기 시술을 하다가 사고를 내기 전 보고를 하지 않은 벌로 1주일간 정학을 당한다. 이후에 있을 사건의 복선처럼 "괜찮다, 리자.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하지. 이번엔 그저 조금 큰 실수를 했을 뿐이야. 그게 다야. 네가 다시는 그런 실수를 안 할 거라 믿는다."(92)라는 훈계를 듣는데, 이는 실수 혹은 잘못으로 여겨지는 청소년기의 퀴어성 발현에 대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소설은 청소년인 리자의 첫사랑 외에도 스티븐슨 선생님과 위드머 선생님의 오래된 연인 관계가 제시함으로써 이른바 ‘청소년기의 동성애적 성향’으로 불리는 것이 그 시기의 특성이 아니라 개인의 자기인식과 정체화임을 분명히 한다.

 

낸시 가든은 애니와 리자라는 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끌림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애착 관계를 맺는 퀴어들이 경험하는 클로짓 상태[1], 탈반[2], 아웃팅[3], 신의 이름을 내세운 혐오[4], 방관하는 혐오[5], 전환치료 강요[6]까지 서사에 고스란히 담았다. 다소 교과서적으로도 느껴지는 이런 서사가 가능한 것은 이 연애를 낭만적으로 대상화하는 대신 보통의 연애로 그려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하고 도둑질하듯 섹스를 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들이 들이닥쳤을 때 어린 연인이 느끼는 당혹감은 레즈비언뿐 아니라 헤테로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특히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소설에서 순결은 지켜야 할 것으로, 지키지 못한 경우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비난받기도 한다.[7]

 

『소녀, 소녀를 사랑하다』에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등장하고, 애니와 리자의 고충에는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리하여 애니와 리자는 이유 모를 병으로 앓지 않고 죽지 않고 헤어지지도 않고 계속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내가 나인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내가 나인 것을 선택이라고 하든 병이라고 하든, 나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이들[8]이 나를 처벌하려고 하든 치료하려고 하든,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나는 나여야 하고 내가 아닌 채로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너는 네가 아니라고 '위로'받았고 '안심'할 수도 있다(252). 내가 아닌 외부의 어떤 것에 영향받은 결과라고 오해받거나 변명(286)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 위로와 가짜 안심으로 나를 언제까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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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10
재닛 윈터슨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기독교와 동성애를 다루면서도 이분법적 반대항으로 결론짓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 레즈비언 문학 중 필독서로 꼽히고는 한다'는 무지개책갈피의 소개글을 보고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를 집어들었다. 주인공 지넷은 광신도 어머니 아래(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등장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종교적 공동체 안에서 자랐다. 이 공동체는 귀가 안 들리는 지넷을 '성령이 임했다'며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와 단절된 상태다. 착실하게 종교적으로 살던 지넷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지넷은 멜라니라는 여자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관계를 맺는데, 교회는 이들을 '교정'하려고 한다. 지넷은 물과 음식 없이 감금당하고 기도당하고, 멜라니는 (아마 비슷한 과정을 겪고) '회개'한다. 지넷은 순응과 저항의 반복 끝에 교회를 거부하고 그 공동체에서 나온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성당 나가기를 그만두고 미션스쿨에 치를 떨었던 사람으로서, 과연 어떤 식으로 기독교와 동성애를 반대항으로 놓지 않았다는 걸까, 라는 호기심을 가졌으나 새로운 방식은 아니었다. 지넷은 종교 공동체를 나오지만 신은 여전히 믿고 있다. 그리고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 어머니는 "결국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지."라며 자신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즉 지넷의 성적 지향을 존중한다는 뉘앙스를 흘린다. 이는 책 초반, 지넷의 어머니가 '부정한 것'인 새우를 먹으려고 목사와 상담을 거쳐 그것을 정당화한 시점부터 예견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의 시점에서 성경을 전적으로 글자 그대로 따르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이 새우를 먹는 일이든, 동성애이든. 따라서 이 책에서 기독교와 동성애를 반대항으로 놓지 않는다는 말은, 풀어 말하면 이렇게 된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불가능이 새우를 먹는 문제, 합성섬유를 입는 문제와 동성애 금기에 대해 다르게 적용될 이유는 없다. 따라서 기독교 공동체는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자를 탄압할 수 없다. 개인은 기독교 공동체나 성경에 얽매이기보다 스스로 신을 찾고 만남으로써 그의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간단하게 줄여 말하자면, '사람이 문제다.'
 
 지넷은 신앙심 깊은 신도로서 설교를 맡는 등 공동체 안에서 일종의 성공을 이루어내는데, 바로 이 사실이 그녀의 성적 지향을 공격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즉 리더는 언제나 남자이고 또 남자여야 하므로, 여성인 지넷의 설교대 위에서의 성공은 타락의 증거로 여겨지는 것이다. 지넷은 여자로서 '남자의 일'을 했으므로, 남성성을 모방한 것으로 여겨지고, 이는 동성애에 대한 구시대적 편견과 연결된다. 실제로 기독교의 남성중심적 제도는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특히 가톨릭(천주교)에서는 여성 성직자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성직자의 수가 부족하면, 기혼 남성 성직자를 고려하지 여성 성직자를 고려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를 끄는 점은, 지넷이 '동성애가 코뿔소보다도 여자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여자들'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남자들과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인가? 성경을 고려하면 지넷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성경에서 문제시하고 있는 '동성애'는 사실상 '남성 간 성관계'가 대부분이다. 남성만이 성적으로 주체적이라는 여성혐오적 편견 때문이다. (그리고 행위자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육체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그 편견 때문에, 남성(혹은 정자)이 생명의 씨앗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된다. 따라서 남성 간 성관계, 남성의 자위, 피임은 생명의 씨앗을 낭비하는 행위로 여겨지고, 금기시된다. 반대로 여성은 그런 의미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여성 동성애 관계나 여성의 자위는 아예 관심 밖, 기록 밖이었다.
 
 나는 기독교와 성소수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서 이미 동성 간 성관계를 죄악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기독교인 호모포비아들에게 언제까지나 근거로 이용될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성경 구절을 취사선택할 자유를 열어준다면, 교리 해석 싸움으로 분열되기 쉬우므로, 기독교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몇몇 교회에서 희망을 본다. 정체화는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종교는 인간에게 안정을 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오늘도 그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종교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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