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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지방색이 강한 일본 오사카. 도쿄가 서울이라면 오카사는 부산 같은 도시라고 했다. 전쟁의 폐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시기. 집안은 가난했다. 그 때는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다. 오사카는 야쿠자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야쿠자의 본당 같은 곳이다. 형이 야쿠자였다. 그는 복싱을 했고 프로복서로 뛰었다. 형을 따라 야쿠자를 했어야 마땅한(?) 젊은이는 헌책방에서 건축집 한 권을 보고 전율을 느낀다. 당장 그 책 살 돈이 없었고 누가 먼저 사 갈까봐 맨 아래에 숨겨 놓는다. 돈을 모아 그 건축집 한 권을 손에 쥐었다. 읽고 또 읽고. 현대 건축의 거장 르꼬르뷔지에의 건축집이었다. <건축을 향하여>. 청년의 마음은 이미 거장의 건축물 앞에 가 있었다. 당장 돈도 없었지만 돈이 있다고 프랑스로 갈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일본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자마자 청년은 훗카이도를 건너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몸을 싣는다. 1965년 4월에 출발해서 9월에 파리에 도착했다. 긴 여행이 육신을 지치게 한 것이 아니라 독서와 사색의 시간을 주었다. 도착한 곳은 현대 건축의 성지라 불리는 [롱샹 성당]. 르 꼬르뷔지에의 말년의 대표작이다. 기뻐 어쩔 줄 몰라 들어선 건물에서 청년은 한 시간도 머무르지 못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들어오는 빛은 난폭할만큼 폭력적인 에너지를 뿜었다. 때론 빛이 부드럽기까지 했다. 건축가가 만든 공간과 건물에 압도되었다. 수십년 동안 여러회 찾아도 강렬한 인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했다. 그가 처음 롱샹 성당을 찾은 그 해에 르꼬르뷔지에는 세상을 떠났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관련 책은 처음이 아니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도 읽었고, <르꼬르뷔지에 VS 안도 타다오>, 그리고 크기로 다른 책들을 압도하는 건축 사진집도 여러 권 봤다. 이전과 달리 안도 다다오를 보는 여유가 조금 생겼다. 직접 쓴 책이라 그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제목에 언급한 '도시 방황'도 될 수 있지만 조금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기행'이다. 도시 방황 후 만나는 인물과 작품들이지만 그가 여행하는(또는 방황하는) 도시보다 그가 만나고 접했던 인물과 작품들에 관심이 갔다. 현대 예술의 거장이 다 등장하는 느낌이다. 그는 오랜 방황 속에서 또 다른 거장을 만나고, 작품을 만나면서 건축을 고민했다.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그의 걸작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을 넘어서는 슈퍼 스타다. 모두가 서양 중심을 논할 때 일본의 목조 건축풍을 그의 건축에 녹였고 자연을 부르고 대지를 끌어 들였다. 파괴는 건축의 한계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안도는 자연을 넘어서지 않고 자연의 품에 안겼다. 그가 건축을 넘어선 이 시대의 교양이 되는 근본이 거기에 있다. p38. 그리고 거기에는 건축주인 구엘이라는 인물의 강렬한 에고이즘이 있었다. 구엘은 가우디의 후원자다. 건축은 건축가만의 것이 아니다. 건축가의 이성과 창조력, 건설자의 기술과 열정, 거기에 건축주의 경제력과 의지가 존재해야 비로소 건축은 성립된다. 구엘에게는 지고의 꿈이 있었다. 카탈루냐의 풍토를 가우디라는 재능을 통해 남기겠다는, 광기라 해도 좋을 꿈. p49. 적어도 내 몸무게는 열여덟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 복싱을 할 무렵에는 시합 때문에 한 달만에 6킬로그램 가량 감량한 적도 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63킬로그램이다. 불안과 긴장 속에서 창조성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절의 육체와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서도 나는 이 63킬로그램이라는 체중을 죽을 때까지 유지할 작정이다. 그게 불가능해졌을 때 나는 단연코 내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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