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아메리칸 코믹이 만났을 때

카인의 징표
브래드 멜처 지음, 박산호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9월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둬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구약 성서의 창세기편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카인과 아벨 형제 (아담과 이브의 아이들=최초의 인류)가 하나님에게 제물을 바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어째서인지 동생인 아벨의 제물만을 받아들이고, 이에 삐진 카인은 질투심에 동생 아벨을 죽여버린다. 즉, 인류 사상 최초의 살인이 되는 셈이다. 카인은 하나님에게 찍혀서 고난의 땅으로 추방된다.(대략 이와 같은 내용이라고 한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이 소설의 스토리는 크게 두개의 살인 사건을 축으로 돌아간다. 첫번째는 앞서 언급한, 구약성서 창세기 제 4장에 묘사되어 있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에 대한 수수께끼. 카인이 아벨을 살해할때 사용한 흉기는 무엇이었는가? 이것이 바로 구약성서 최대의 수수께끼이며, 그 수수께끼를 밝혀주는 "거짓의 서"가 현존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또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아메리칸 히어로 "수퍼맨"의 원작자인 제리 시걸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수수께끼. 언뜻 보기에는 전혀 관계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두개의 의문이 기묘하게 얽힌다. 아벨 살해의 수수께끼가 감추어진 수퍼맨의 원화를 둘러싸고 나치스, 비밀 교단, 수수께끼의 일족등 수상한 사람들이 암약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인디아나 존스와 다빈치 코드가 혼재된 듯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주인공 칼은, 전직 입국 세관 관리국(ICE)의 수사관. 어릴 적, 아버지가 사고로 어머니를 죽게한 현장을 목격한 이래로 줄곧 상처입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날 밤, 총상을 입은 모습으로 19년만에 아버지가 나타난다. 아버지의 현재 드러난 직업은 트레일러의 운전수. 범죄와 연관된 무언가를 옮기고 있는 것 같다. 칼은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려다 트레일러 안에서 수퍼맨의 낡은 초판본 코믹을 발견한다. 고작해야 만화책 한권, 이것이 과연 "거짓의 서"가 있는 곳을 알려줄 열쇠인가? "거짓의 서"를 찾기 위해서라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인물 엘리스의 함정에 빠져 칼은 살인누명을 뒤집어 쓴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ICE 수사관 나오미의 추궁을 받으면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칼은 "거짓의 서"의 수수께끼를 푸는 여행을 떠난다.

픽션이지만, 허구와 사실을 적당히 섞어서 골고루 잘 버무려 놓았다. 예를 들자면, 실제 구약 성서에는 아벨 살해의 흉기와 관련된 기록은 없지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칼 일행이 찾아가는 수퍼맨의 집은 클리블랜드에 실재한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거짓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팩션류 특유의 재미나, 성서와 아메리칸 코믹의 결합이라는 시도 자체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