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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 개정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페루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실제 삶이 녹아들어 있는 반자전적 소설. 자전적이라고는 해도 한없이 진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슬랩스틱 코미디 풍에 더 가깝다. 좌충우돌하는 청춘시절을 요상하고도 재미있게 써내려간다. 읽다보면, 과거를 회상하면서 잔뜩 미소를 머금은 채 연신 타자기를 두드려대고 있는 저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일락말락 한다.
"마리오"는 산마르코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18살의 학생. 친척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일가의 별과 같은 존재이지만, 본인의 꿈은 그저 소설가가 되는 것. "라디오 판 아메리카나" 방송국에서 박봉으로 뉴스 연출자(기껏해야 원고 수정등을 할 뿐이지만) 일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구상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얼마전 이혼한 친척 아주머니(삼촌의 처제) "훌리아"가 볼리비아에서 돌아온다. 표면상으로는 이혼의 상처를 잊기 위해 멀리있는 언니에게 놀러온 것이지만, 분명 새로운 상대를 찾으러 왔을 것이라고 친척들은 소근댄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마리오와 훌리아는 의외로 말이 통하는 부분도 있어서 종종 영화관에 같이 가게 된다. 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불만이던 마리오는 댄스파티에서 기습키스를 감행. 이후로 둘의 사이는 아줌마에서 그냥 훌리아가 된다. 그 두둥실 떠오르는 감정의 변화가 가벼운 터치로 그려져 있어서 왠지 즐겁다.
사랑에 빠진 18살의 마리오와 32살의 훌리아. 친척들이나 미국에 사는 마리오의 부모에게 들키지 않게 전전긍긍하는 동안, 게임처럼 시작된 둘의 교제는 점점 진지해진다. 엄격한 아버지를 필두로 여러 장해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가운데, 결혼을 목표로 고군분투하던 마리오는 마침내 친구나 사촌여동생까지 끌어들여 사랑의 도피 소동을 벌인다.
한편, 볼리비아로부터 날아온 것은 훌리아 뿐만이 아니었다. 또 한명의 인물은 "페드로 카마초"라는 괴짜 라디오 극작가. 볼리비아에서 폭풍과 같은 인기을 구가하고 있던 그는 판 아메리카나 방송국의 간판 프로그램인 라디오 드라마의 제작국으로 스카웃 되어 페루에 온다. 카마초는 삶의 모든 것을 극본 집필에 바쳐, 스스로 성우로서 출연할 뿐만 아니라 제작에까지 관여하고, 자신이 쓰는 극본이 일말의 오차도 없이 재현 되도록 하는 철저한 완벽 주의자였다. 그의 손이 닿는 라디오 드라마는 순식간에 인기프로그램이 되고, 매력 넘치는 시나리오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페드로에게서 이상적인 작가상을 발견한 마리오는 점차 그에게 끌려 간다.
마리오가 일하고 있는 방송국을 중심으로, 유쾌한 등장 인물들이 우왕좌왕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일관적으로 진행되지만, 사이사이에 페드로가 쓴 라디오 드라마의 스토리가 삽입된다. 모두 하나의 독립적인 스토리로 읽을 수 있는 여러가지 서스펜스, 통속소설들. 삽입이라고는 해도 마리오의 메인스토리와 거의 동등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전체에 걸쳐 "이야기"와 "이야기 속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이 라디오 드라마들의 줄거리가 또 굉장히 흥미롭다. 내용은 대체로, 평온하게 지내던 등장 인물이 어느날 일상이 붕괴되어 버릴 정도의 희비극적인 사건에 휩쓸리게 된다는 식인데, 쉬지도 않고 방대한 양의 드라마를 병행해서 집필하는 동안, 급기야는 자신이 창조한 등장 인물과 스토리가 혼동되기 시작한다. 서서히 각각의 드라마간에 스토리가 복잡하게 뒤얽혀, 한쪽의 등장 인물이 느닷없이 다른 드라마에 나오거나, 이름이나 설정이 뒤바뀌거나 한다. 과연 비장한 결말을 맞게 될 것인지 아니면 기적적으로 참극을 회피하게 될런지, 마치 실제로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있는 것처럼 매회 결말을 다음회로 미루면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리오의 사랑의 행방과 함께 과연 드라마는 어디로 튈 것인지? 궁금하면 어서 책장을 넘겨보라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청춘 소설과 라디오 극장이라는 2개의 다른 세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샌드위치같은 독특한 구성과 포복절도의 이야기, 18살이라는 나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꿈, 희망등이 솔직하게 표현되고 있는 청춘 소설과 같은 부분이 뒤섞여 절묘한 맛을 낸다. 진지하게 일과 사랑 모두에서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는 청년 마리오의 모습에서는 청춘의 달콤한 맛이 난다. 친척 아주머니와의 사랑이라는 어쩌면 금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혹은 관능적이 될 수도 있는 소재를, 이러한 청춘의 아릿한 추억과 오락적인 요소 가득한 재미있는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낸 저자에게는 무릎을 꿇고 만다. 페루에는 가본 적도 없고, 또 이 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지만 위화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 못했다. 특별한 것을 인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는 솜씨는 아마도 대가들의 공통점인 듯 하다. 남미문학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조차도 읽고나면 행복한 기분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릴 것 같은 그러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