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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학계에 있는 학자나 교수들이 철학이론을 제시하려고 이러한 기회를 기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전면적인 위기에 봉착한 사람들이 철학자들을 대화 상대자로 찾고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기존의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았던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문제를 ‘진단과 처방이 아닌 또 다른 대안적틀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며, 딱히 심리상담이나심리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삶의 전면적인 위기나 삶의 전환기에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실존적 위기에 처했을 때, 일반인이 철학적 대화를 원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서구나 북미에서 철학상담은 기존의 심리상담이나 심리치료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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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영혼, 민감하게 느끼는 이성

깨어있고 열린 문제의식, 모순이나 갈등을질적으로 그것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즉 다른 말로 하면, 생기있고, 구체적인 사고"(Achenbach, 2010, p. 156)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또다른 한편에서 철학상담에서의 대화는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서의 이성은 방법론에 종속되는 기술적,도구적 이성이 아니라 단순한 감각만으로는 도달될 수 없는 예리함을 갖춘 이성이면서도, 헤겔이 말한 "생각하는 가슴을 가진 이성적임" (die Verntinftigkeit des denkenden Herzens)이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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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미술치료 - 캔버스 거울
Bruce L. Moon 지음, 원희랑 옮김 / 학지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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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림 과외를 받는 수강생은 평소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그림으로 풀었다. 그 수강생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면서, 수강생이 그리고 싶어 하는 그림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 그림의 주제가 ‘불안을 느끼는 자신의 공포’였다. 학문적으로 ‘불안’과 ‘공포’는 나눠봐야 하지만, 이 둘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철학이 있다. 바로 ‘실존주의’이다. 실존주의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다소 어렵지만, 사람의 근원적인 불안을 깊이 마주하게 해주는 철학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마침 ‘실존주의 미술치료’라는 책이 내 눈에 보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실존주의 미술치료’의 저자 ‘브루스 문’은 마운트 메리 대학의 미술치료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이며, 실존주의 미술치료의 많은 힘을 쓰고 있는 임상미술치료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치료’를 ‘실존주의’라는 철학을 적용한 임상사례를 중심으로 다룬다.

‘실존주의 미술치료’는 미술치료를 공부하는 사람뿐 아니라 미술전공자, 일반 대중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있다. 실존주의의 핵심인 자유, 죽음, 소외, 무의미, 은유, 의식, 여정 등을 간단하게 정의하여, 슬프고 감동적인 임상사례들을 통해 서사적인 재미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의 실존주의 미술치료의 신조 ‘함께하기’, ‘개방하기’, ‘고통을 존중하기’와 ‘이미지 죽이기’, ‘이미지 듣기’를 통한 미술작품 이해하기는 앞으로 내 수업에 큰 영향을 줄 예정이다.

나는 수강생이 그림을 그린 후, 항상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연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강생은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 과정을 실존주의 미술치료 신조를 통해 더 깊이 이어갈 것이다. 그림은 단순히 표면만 담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자신의 내면을 담는다. 그 내면을 담는 작업을 나는 그동안 선생이라는 지휘로 멀리서 보았지만, 이제 함께 그림을 그리며 나의 내면을 개방할 것이다. 그 개방을 토대로 그림에 내면을 담는 여정의 장을 수강생과 형성하게 되고, 서로 내면에 감춰둔 고통이 드러난다. 이때 나 자신이 먼저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수강생도 함께 그 고통을 배제하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다. 이 과정은 모든 예술 작업에서 적용되고, 책에서도 예술 작업 자체가 실존주의라고 주장한다.

나는 수강생의 그림을 항상 철학적으로 깊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러나 실존주의 미술치료는 오히려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이 ‘그림을 죽이는 것(이미지 죽이기)’이라 말한다. 그림을 함부로 내 주관으로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수강생의 이야기를 경청(이미지 듣기)하며, 그 경청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거나, 개방적으로 반응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강생은 그림뿐만 아니라 내면의 밀도도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한계는 고전이라는 것에 있다. 동성애, 트랜스 젠더, 보편 가족의 개념 해체 등의 현대 다양성 시대에 대한 실존적인 반영이 없다. 물론 저자는 기존 과학주의 심리학을 조심스럽게 비판하기에, 다양성 시대에 관한 생각도 조심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실존주의는 이런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추고 있기에, 이런 현대 다양성에 대한 부제가 아쉬울 따름이다.

미술치료를 이 책으로 처음 접한 나는 행운이었다. 아니 오히려 빨리 접했다면, 나 자신을 더 깊이 성찰할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싫었다.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며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 시간, 돈, 경험 등. 전부 그림에만 몰두했고, 그 때문에 오히려 내면의 성장이 정체되어 고립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림을 놓고 세상으로 신생아처럼 세상에 나와 방황하게 해주면서 길을 제시해 준 스승 ‘치치’. 하지만 치치는 저 멀리 여행을 떠났다. 이 책을 같이 읽고 싶었고, 분명 치치라면 같이 울어주고 웃어줄 건데. 이제 없다. 치치의 부제를 다시 상기하고, 이 책의 나 자신을 투영하며 읽었다. 읽는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울고 울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제 괜찮을 줄 알았더니. 아직 치치의 부제가 덜 풀렸나 보다. 물론 아직 풀어야 할 나의 심연이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모순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싫어하는 나와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나의 근본 불안. 그 심연을 그림 그리기를 통해 다시 접근할 것이다. 치치의 부제를 넘어 홀로서기의 한 걸음. 다시 그림을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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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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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장 아메리’는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유대인이며, 치열하게 나치와 싸우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고문도 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글을 쓰며 살다가, 그동안의 잔혹한 경험을 성찰해서 저서들을 냈고, 그 저서들은 지성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중 ‘자유죽음’은 큰 논쟁이 되었고, 이 책을 출간하고 2년 뒤에 한 호텔 방에서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유죽음’은 사회나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일방적인 용어로 ‘자살’이다. 저자는 자살자의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부분을 비판하며, 자살을 ‘자유죽음’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위해 자살자의 내면을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먼저 사회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살’은 ‘자살자’ 또는 ‘자살을 기도하는 자’가 기준이 아니다. 현생에 살고자하는 사람들이 기준이다. 그 기준에 의해 자살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자살자의 입장은 어떠한가. 그들은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편견이 폭력적인 억압으로 느끼며, 그것에 억지로 맞추려다보니 끊임없이 고통을 겪는다. 즉 살고자 하는 사람의 사회에 의해, 죽고자 하는 사람은 억압받는다. 그런 의미로 그들이 선택한 자살은 자유를 위한 선택이다. 그것이 자유죽음이다.

그러나 그 자유죽음에도 모순이 있다. 이를 위해 자유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자유는 자신의 억압된 무언가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해방도 잠시뿐이고, 다시 자유를 위해 억압에서 해방작업을 시작한다. 이런 끊임없는 반복의 굴레를 죽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죽음 또한 잠시의 해방일 뿐이며 오히려 더 큰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자유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살고자 하는 사람의 자유 굴레에 고통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즉 그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며, 자유죽음이 더 큰 고통이더라도, 자유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옳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유죽음을 단지 피안이자 회피라고 보면 안 된다고 말한다.

나는 현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 속한 인간이다. 그래서 자살을 안타까워한다. 그렇지만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의외로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죽음의 선택이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들의 제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도 어느 순간 자유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때가 분명 올 것이기 때문이다. 단, ‘장 아메리’정도로 자유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끊임없이 고민한 다음에 선택했냐가 중요하다. 아무나 쉽게 자유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반대한다. 물론 그 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저자의 ‘자유죽음을 인간의 특권’이라는 말에 나는 반대한다. 이건 과학에서 증명되고 있듯, 모든 생명(동식물)이 자유죽음을 하는 모습과 흔적이 보인다. 그러니 자유죽음은 인간의 특권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죽음은 생명의 특권’이다. 모든 생명이 삶은 선택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삶의 자유도 한정된 해방이다. 동식물은 죽음이라도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인간도 그렇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사회는 자유죽음에 대한 토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그렇다면 그 그림자를 함께 안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장 아메리도 사회적인 생존법칙을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이다. 그러니 반대로 현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자유죽음의 자연법칙과 권리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 오가는 것이 건강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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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이고 여럿인 세계에 관하여 몸문화연구소 번역총서 4
샹탈 자케 지음, 정지은.김종갑 옮김 / 그린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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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친 듯이 운동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운동하며 몸에 대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몸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을 경험했다. 명상, 춤, 동서양 우주론 등. 비록 운동에 대한 열정이 식었어도, 주변에 몸과 철학을 엮은 지인들 덕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몸의 철학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을 알게 되고, 그 책이 ‘샹탈 자케’의 ‘몸’이다.

‘몸’의 저자 ‘샹탈 자케’는 파리1대학 교수이며, 스피노자 및 몸 철학 전문가이다. 이 책은 끊임없이 몸에 대한 질문을 하며 철학적으로 성찰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철학자가 정의한 몸을 역사적으로 탐색한다.

1~3장은 1부로 한 묶음이다. 1부는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철학자들의 몸에 대한 탐색을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4원소와 몸과 영혼, 정신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가 오간다. 그 과정은 철학자들의 놀라운 통찰을 정리한 후, 그 통찰을 비판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한 경우 1부가 가장 어려울 것이며, 난해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진 자료도 없고, 생소한 철학 언어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1부와 2부는 서로 연결점이 적고, 현대의 몸 철학을 더 중심으로 보고 싶으면 2부만 읽어도 된다. 하지만 1부의 내용은 현대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철학에서는 과학주의에 따라 수치화된 인간에서 다시 철학 하는 고유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의 철학을 다시 불러들이고, 예술가들은 그들의 철학을 토대로 새로운 표현을 재생산한다. 즉 그들의 철학이 비판받더라도, 그들이 통찰한 철학적 성찰은 지금도 통한다. 여유가 된다고 하면 1부는 차근차근 사유하며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4~5장은 2부로 묶으며, 주로 현대에 근접한 노동, 예술, 윤리, 성차에 대해 다룬다. 그래서 1부에 비해 읽기 쉬우며, 따로 2부만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큰 지장이 없다. 무엇보다 억압의 해방을 몸의 해방으로 주로 해석하며, 그 해방된 몸은 예술로 표현하게 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스탕달, 오를랑 등 다양한 퍼포먼스 예술가들 소개하고, 건축과 무용으로도 몸을 철학적으로 해석한다. 윤리적 몸은 남에 의해 윤리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 원초적 본능을 통해 윤리적 몸을 만들어진다고 해명한다. 스스로 만든 윤리적 몸과 타인의 윤리적 몸이 서로 겹치는 것을 보편화하는 것이 진정한 윤리학이다. 성차의 몸은 먼저 육체적 쾌락 에로스를 먼저 풀어간다. 그 이유는 에로스 자체에는 성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성차별은 정신 역사의 문제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남녀의 몸은 다르지만, 그것에 특정 상징을 부여해 비교 판단하는 것이 문제이다. 저자는 프로이트를 비판하며, 남성주의적 관념을 해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여성이 신체적 특수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몸은 해방되었지만, 그 어느 것도 몸을 전부 해명하고 정의할 수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동양철학의 부제’가 아쉽다. 동양 철학자는 서양 철학자의 모순과 달리 실천을 중요시하고 보여주었다. 공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철학을 실천했고, 장자는 스스로 자유를 찾기 위해 철학을 했다. 불가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루는 철학이다. 무엇보다 동양의 역학, 우주론도 몸을 철학의 중심으로 다루었다. 무엇보다 서양 퍼포먼스 예술 플락서스(Fluxus)와 현대무용, 소마틱스 등은 동양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동양철학의 몸을 함께 넣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책은 몸의 해명이 지속해서 실패하는 것을 보여주며, 몸 자체를 현존하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주고 있다. 몸을 알아야 하지만, 몸은 그 앎 너머의 신비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즉 몸은 항상 양가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 죽음에서 삶, 삶에서 죽음, 기쁨에서 슬픔, 슬픔에서 기쁨, 선에서 악, 악에서 선 등. 서로 교차하면서도 고유하지만, 그 고유함을 일부 공유할 수 있는 몸. 몸은 진리이자 ‘도(道)’이며 ‘에테르(aether)’, 우주의 근원이다. 즉 내 몸을 잘 알고 다루며, 다른 몸과 함께 공존하는 삶이 몸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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