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와 함께 보시는 것을 추천. 원어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공개 되어 있습니다. IA번역기와 함께 을유, 세창 함께 보면 더욱 독해하기 좋습니다... 근대 누가 이렇게 보겠... 물론 쇼펜하우어도 서론에 이 책을 읽기 전에 필요한 조건을 너무 많이 달았... 그 필요조건은 입문서로 때우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입문서도 국내에서 워낙 시점이 제각각-.-;; 결론 읽기 어려운 책입니다.
앞서 말한 것에 기초하면 이제 결정적인 구분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것은 혐오 현상에 내재된 거부지향의 종류와 관련이 있다. 사실 혐오의억제는 두 가지 의미에서 주체에게 요구되거나 최소한 제안될 수 있다. 험오의 느낌이 관련 대상을 단순히 소멸시키는 지향을 정당화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혐오는 ‘이 대상은 소멸되어야 한다‘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혐오만으로는 한 대상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결정할 수없으며, 명백히 혐오스럽지만 자연의 불가피성(노폐물)인 대상의 경우와 반대로 혐오가 분개의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특별히 혐오스러운 인간‘의 경우에 특히 더 그렇지 않다. 혐오가 한 사람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지워버리도록 또는 더 일반적으로 문화를 재현하는 것들을 향한우리의 사랑을 지워버리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 P128
매우 많은 경우에 혐오와 경멸은 단일한 도덕적 불승인의 감정으로 결합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벌레처럼‘ 경멸할 수도 있다. 윤리적 비난과 맞닥뜨리는 모든 것이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윤리적영역 밖의 가치의 경험에도 마땅히 경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경멸은 단순히 부정적 가치를 띠는 것을 향해 지향되는 것이 아니라, 비열한 것,정제되지 않은 것, 부적절한 것, 신뢰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 대상이가치를 가장하고 주체에게 알랑거리도록 힘으로 요구하는 모든 곳을 향해 훨씬더 지향된다. 여기서도 마치 경멸의 감정 속에 형식화되고, 진정되고, 규제된 혐오의 순간이 이식되어 있는 것처럼, 혐오와의 유사점이 드러난다. 따라서 경멸과 혐오는 모든 면에서는 아니지만 특정한 본질적 관점에서 볼 때둘 다 가치에 반하는 동시에 비참한 몰락 상태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경멸은 부적절성의 요소, 시험을 견딜 윤리적이고의지적인 무능력의 요소, 열등하고 비참하고 동물적인 삶의 이해의 요소와더 관련이 있다. 반면에 혐오는 실질적인 부패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정한기질의 요소와 더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하찮음은 비록 경멸적일지라도 결코 혐오스럽지 않다. - 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