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 국방의 의무뿐 - P312

학교 안에 국민교육헌장이 있었다면 학교 밖에는 새마을운동 - P313

새마을운동중앙회 - P314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며 주관적이다. - P316

3S정책 - P317

주민등록증 - P318

주민등록번호 덕분에 국가는 편리하게 국민을 관리할 수 있다. - P319

디지털 부작용 - P320

판매금지도서목록 - P321

유신시대에는 중앙정보부의 지휘 아래 법무부, 문교부, 문화공보부, 국방부, 내무부 등 유관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금서목록을 정했다. - P322

정부는 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 전반을 검열하고 통제했다. - P324

방송금지곡 - P325

시국상황 - P326

방송 사전심의제도 - P328

나라의 품격은 국민의 교양수준이 좌우한다. - P329

고전독서운동은 암기능력을 테스트하는 경연대회로 - P330

전태일, 문송면, 반올림 - P331

권력자는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한다. - P332

1970년 11월 18일 아들 전태일의 영정을 들고 비통해하는 고 이소선 여사 - P333

‘영원한 청년 노동자‘
‘노동열사‘ 전태일 - P334

근로기준법 - P335

타인의 생명과 건강과 복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행위다. - P336

수은 중독 진단 - P337

원진레이온 직업병 - P338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 P339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 P340

안보국가에서 복지국가로 - P341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 P342

국민연금 - P343

노인장기요양보험 - P344

국민건강보험 - P345

산업재해보상보험 - P346

고용보험법 - P347

5대 사회보험 - P348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 P349

우리는 단군 이래 한 번도 없었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 P350

제6장 남북관계 70년
거짓 혁명과 거짓 공포의 적대적 공존 - P353

레드 콤플렉스 - P355

국민보도연맹사건 - P357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는 단순한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려는 삶의 방편이다. - P359

장성택과 이석기 - P360

조봉암
조용수
이수근 - P361

이석기 의원이 NL 노선을 내면화한 ‘운동권 사업가‘라고 생각 - P362

반공백일장 - P363

억울한 죽음 - P364

조갑제 기자 - P366

이념의 통일성 - P367

간첩, made in Korea - P368

북한의 적대적 군사행동 - P370

합리적 의문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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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대회‘ - P255

1987년 6월 9일 경찰이 쏜 총류탄에 맞아 쓰러지는 이한열 - P256

1987년 6월 10일 혼돈 - P257

6ㆍ29선언 - P258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P260

6월 민주항쟁도 4.19혁명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권력주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 P261

우리 헌법은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했다. - P262

야당이 분열되었고 재야가 분열되었으며 국민도 결국 분열되었다. - P263

결국12.12 군사반란과 광주학살, 제5공화국 강권통치와 권력형 부정부패의 제2인자를 대통령으로 - P264

1988년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 - P265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P266

재야 인사와 학생운동 출신 신인을 영입 - P267

세 번째 갈래는 시민운동 - P268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 - P269

1990년 1월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전격적인 3당 합당 - P270

민주화운동 - P271

노동법 날치기 - P272

1997년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 P279

2003년 부안사태 - P274

2004년 봄의 탄핵규탄 촛불집회 - P275

2013년 다시 촛불 - P276

제5장 사회문화의 급진적 변화
단색의 병영에서 다양성의 광장으로 - P277

늙어가는 대한민국 - P279

자유주의적 각성 - P280

저출산 고령화 - P281

출산율과 사망률 - P282

국민의 출생시 기대여명life expectancy - P283

대한민국은 지구촌 모든 나라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 P286

저출산 현상 - P287

인구감소 - P288

가족계획과 기생충 박멸 - P289

가정의례준칙 - P291

‘빈곤의 악순환‘vicious circle of poverty 이론 - P292

가난한 나라는 사람만 많고 자본이 없다. - P293

대한가족계획협회 - P294

국민건강보험 - P296

기생충박멸협회 - P297

채버ㆍ봉투 - P298

우리나라의 기생충 박멸사업은 세계보건기구가 인정한 모범사례 - P299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 P300

일제강점기 수탈과 해방 전후의 혼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해졌다. - P301

숲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 - P302

1970년대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에 따라 연료림 식재 작업에 동원된 마을 주민들. - P303

국민식수운동 - P304

영일지구 사방사업 - P305

그린벨트 규제 - P306

시민의 재산권 행사 - P307

개발제한구역법을 제정 - P309

금서, 금지곡, 국민교육헌장 - P310

국기에 대한 맹세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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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 P204

정치 지도자 김대중 - P205

1970년대 초 민주화운동의 ‘톱스타‘는 단연 김지하 시인이었다. - P206

「7·4 남북공동성명」 - P207

10월 17일 밤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특별선언을 발표 - P208

10월 유신은 현직 대통령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 P209

10월 유신에서 10·26까지 - P210

군사훈련 - P211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 - P212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 P213

1974년 5월 27일 비상군법회의 - P214

민주화운동을 대중화하는 기폭제 - P215

긴급조치 9호 - P216

영원한 광복군 장준하 - P217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 - P218

YH무역 노동조합 - P219

부동연 사건 - P220

부마항쟁 - P221

10·26에서 6월 민주항쟁까지 - P222

신군부가 반란을 - P223

무장한 군인들 - P224

나는 어떻게 되든 이 싸움이 패배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 P225

1980년 5월 15일 전국에서 10만여 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서울역 광장 집회. - P226

심상정 - P227

고려대 신계륜 총학생회장 - P228

서울의 봄 - P229

정부는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소집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던 최규하 국무총리를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 P230

유신체제라는 겨울공화국 - P231

광주민중항쟁 - P232

계엄군이 발포 - P233

신군부는 모든 화력을 광주에 집중했다. - P234

상무충정작전 - P235

전두환 신군부는 유신쿠데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저질렀던 독재를 능가하는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 P236

전두환은 곧바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소집해 100퍼센트 찬성으로 제11대 대통령이 되었다. - P237

국가보위입법회의 - P238

민주정의당(민정당)
민주한국당(민한당 유치송)
한국국민당(국민당 김종철) - P238

전두환 정권은 광주민중항쟁의 전국적 확산을 두려워했다. - P239

학림사건 - P240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 P241

민족주의를 낡은 부르주아 사상으로, 북한을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로 간주했다. - P242

이념적 열병 - P243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김근태) - P244

돌아온 사형수 이철 - P246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김민석) - P247

〈남영동 1985〉 - P248

강철이라는 필명을 널리 떨쳤던 김영환은 반제청년동맹이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어 활동했다. - P249

5ㆍ3인천사태 - P250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 P251

4ㆍ13호헌선언 - P253

고문경찰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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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기체결함은 ‘죽기에는 너무 큰‘ too big to die 재벌이국민경제의 중심이라는 것 - P157

외환위기, 원인과 결과 - P151

‘단군 이래 최대 호황‘ - P152

소규모 개방경제 - P153

외환위기의 원인은 기체결함과 조종미숙 둘 다였다. - P154

박정희 정부 이래 남아 있던 중앙통제식 계획경제 요소를 완전히 없애고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이식하는 한편 IMF의 구제금융 자금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의 금융기관이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에 제공한 대출금과 이자를 완벽하게 회수하는 것이 - P155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5대 재벌은 정부와 구조조정 협약을 맺었다. - P156

한국 경제의 기체결함은 ‘죽기에는 너무 큰‘ too big to die 재벌이국민경제의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 P157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IMF의 표준 처방전 - P158

대한민국은 최대한 신속하게 IMF 경제신탁통치를 벗어났다. - P159

사회경제적 양극화 - P160

양극화의 시대 - P161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각각 5년간 평균 4퍼센트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 P162

소득분배 통계 - P163

진보정권의 복지지출 확대 - P165

시장소득 분배 - P166

진보정권 10년 동안 연평균 4퍼센트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는데도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중하위 소득계층의 경제생활이 어려워진 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더욱 심화된 경제력 집중, 정리해고제 도입, 비정규직 확대, 낙수효과의 약화 등 여러 원인이 있다. - P167

낙수효과 약화 - P168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부자감세, 부동산 거래 규제완화로 단기적 경기부양 - P169

제4장 한국형 민주화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한 민주주의 정치혁명 - P171

민주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 P173

선순환 관계 - P175

‘민주화‘는 전제정치 또는 독재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는 것 - P176

다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으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 P177

칼 포퍼 - P178

전제정치를 타도하는 민주주의 정치혁명의 유일한 방법은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 P179

민주화운동가들이나 1980년대의 사회주의운동가들이 테러를 투쟁방법으로 쓰지 않은 이유 - P180

1986년 5월 6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고故 김세진 군의 장례식. - P181

‘연속적·동시다발적 · 전국적 도시봉기‘로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한 최초의 사례는 3·1운동이다. - P182

『한국민주화운동사』 - P183

야당과 재야, 학생들 - P184

6월 항쟁 당시 명동 일대로 뛰쳐나온 학생과 직장인들, 1987년 6월 10일. - P185

계엄령ㅇㄹ 선포해 군 병력을 투입 - P186

‘연속적·동시다발적 · 전국적 도시봉기‘ - P187

민주주의 맹아기 - P188

성장기 - P188

성숙기 - P188

모든 권력은 집중과 확대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 P189

5·16에서 10월 유신까지 - P190

박정희 후보는 강력한 반공주의와 더불어 경제적 자주와 자립을 강조하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내걸었다. - P192

박정희의 참모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다니다 육사로 진학해 군인이 된 후 준장으로 예편한 김종필 - P194

한일국교 정상화 - P195

1964년 3월 1일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시위를 벌이는 경기고 학생들. - P196

반정부투쟁이라기보다는 당당한 대일외교를 요구하는 집단적 의사표현이었다. - P197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 P198

한일기본조약 - P198

6.3투쟁은 4.19혁명의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P200

리턴매치 - P201

부정선거 무효화 - P202

베트남전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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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
절대빈곤, 고도성장, 양극화 - P101

한강의 기적 - P103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 P104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함께 추진해볼 기회를 자기 손으로 봉쇄했다. - P105

‘하꼬방‘ 동네 - P106

마이카 시대 - P107

국내 최초의 TV, 금성 VD-191. - P108

데모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동숭동에 있던 캠퍼스를 관악산 아래 골프장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P109

이륙에서 대중소비사회로 - P110

한국 경제의 비행궤적일 뿐 - P112

경제성장만큼 - P113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이자 뛰어난 통계분석 전문가였던 로스토WaltWhitman Rostow(1916~2003) 박사는 산업혁명 전후 영국의 경제통계를 분석해 특정한 경제성장의 패턴을 찾아냈다. - P114

인간의 보편적 욕망 - P115

그는 로스토의 문하생이었지만 맹목적인 추종자는 아니었다. - P116

중앙통제식 계획경제 - P117

민족중흥이나 국론통일 - P118

경제개발 5개년계획 - P119

한국재건단 - P120

첫째는 봉건적 특권을 자본화하는 것이었다. - P121

둘째는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수탈이었다. - P122

‘자본의 원시적 축적‘ 또는 ‘이륙을 위한 선행조건 충족‘을 위한 것 - P123

박정희 시대의 고위 경제관료들 - P124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했다. - P125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에 한국 경제는 이륙을 위한 선행 조건을 충족했다. - P126

제4차 5개년계획(1977~1981) 한복판에 10·26사건이 터졌다. - P127

산업화 이후 첫 번째로 맞은 심각한 경제위기였다. - P127

한국형 경제성장의 비결 - P128

국민총생산을 늘리는 방법 - P129

첫째는 더 많은 노동력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다.
둘째는 더 많은 자본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다.
셋째는 생산기술의 수준 향상이다.
네 번째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다. - P129

공적개발원조ODA - P130

외화벌이 - P131

화폐개혁 - P132

"현대 국가는 부르주아지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한 마르크스의 견해가 최소한 진실의 일면을 포착한 것임을 증명해 보였다. - P133

물가인상률보다 훨씬 낮은 이자를 내는 정책자금을 받았다. - P134

조국근대화사업 - P133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 P136

‘한계생산력 체감의 법칙‘ - P137

청년 노동자 전태일 - P138

자본의 원시적 축적과 생산능력의 확대에 관한 이야기 - P139

산업보국 수출입국 - P140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애국지사였던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1789~1846) - P141

요소 투입량 증가 - P142

주력산업 교체 - P143

법률적으로 재벌은 ‘동일인이 사실상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대규모 집단‘이다. - P144

제당과 모직 등 수입대체 소비재산업에서 출발한 삼성그룹은 전자·석유화학·조선·기계 등 중화학공업, 정밀기계를 축으로 한 방위산업, 반도체·컴퓨터 · 산업용 전자기기 · 유전자공학 등 최첨단 수출산업 분야로 주력업종을 빠르게 교체했다. - P145

재벌의 사업 다각화‘는 ‘문어발 경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 P146

산업화의 성공은 정부와 재벌의 관계를 바꾸어놓았다. - P147

1970년 4월 8일 와우시민아파트 - P148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호텔 - P148

재벌은 애증의 대상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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