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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1
모리 에토 지음, 오유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다이브
모리에토 지음
내가 다이빙에 대해 무었을 알겠는가?
다이빙은 커녕 수영에 대해서도 잘 못하고, 잘 모르는데...
1) 플랫폼 부문
전반4회 제한 선택
후반6회 자유 선택
제1군 '앞으로 뛰기(forward)' 파이크, 턱, 비틀기
제2군 '뒤로 뛰기(backward)'
제3군 '풀을 향해 뒤로 뛰기(reverse)'
제4군 '풀을 등지고 앞으로 뛰기(inward)'
제5군 '비틀어 뛰기(twist)'
제6군 '물구나무서서 뛰기(handstand)'
2) 스프링보드 부문
대충 정리해 보았다...
그래도 감은 잘 안오지만, 물속으로 뛰어드는 동작의 기술과 미를 겨루는 수상 스포츠 란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동작의 기술과 미를 겨루는 수상경기로, 하이다이빙과 스프링보드다이빙으로 나뉜다. 다이빙은 수영을 하기 위해 물가에서 물로 뛰어들면서 시작되었다. 한편 다이빙은 근대 유럽에서 주로 독일과 스웨덴의 체조 경기자들에 의해 널리 보급되고 완성되었다. 즉 체조 경기자들은 여름이면 해변가로 전지훈련을 떠나 연습에 임하였는데, 이때 그들은 물 위에 높은 그네나 탑 또는 스프링보드를 설치해 놓고 안전하게 공중묘기를 연습하였다.
이렇게 뛰어들기와 체조 경기자의 공중묘기로부터 발전되어온 다이빙은 1886년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가 독일에서 개최되면서 경기화되었다. 그뒤 스웨덴으로 전해져 하이다이빙이 발달하였고, 미국·영국 등에 보급되어 성황을 이루었으며,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08년 제4회 런던(London) 올림픽경기대회부터는 하이다이빙과 스프링보드다이빙의 두 종목이 채택되었다. 한국의 다이빙 역사는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 다이빙대가 설치된 1934년 7월 1일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이 종목으로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한 것은 1960년 제17회 로마(Rome) 대회 때 이필중이 처음이다.
국제대회에서의 첫 입상은 1962년 제4회 자카르타(Jakarta) 아시아경기대회에서였는데, 조창제가 남자 다이빙 자유종목에서 3위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1966년 제5회 방콕(Bangkok)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송재웅이 남자 하이다이빙에서, 김영채가 여자 하이다이빙에서 각각 3위에 입상하였고, 1970년 제6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송재웅이 남자 하이다이빙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김영채는 여자 하이다이빙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1974년 제7회 테헤란(Teheran)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고호석이 스프링보드다이빙에서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기인구가 매우 적고 연중 연습할 수 있는 시설도 부족한 형편이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체격에 구애받지 않고 동양인으로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유망종목이라는 점으로 볼 때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할 종목이다.
처음부터, 도모키가 주인공인 줄은 알았고, 결국 도모키가 대표선수로 선발될 것을 짐작했는데..문제는 요이치와 시부키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의문스러웠다.. 마지막 Ending은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