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뜻밖의 생물학 - 생명과학의 최전선에서 풀어가는 삶과 죽음의 비밀 서가명강 시리즈 35
이준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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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진화, 유전, 노화, 죽음.

예전에 히트한 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문학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한 마디로 로맨스 드라마를 위해 지어낸 제목이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정말 인간은 별에서 온 생명체였다.

지구별에 정착한 모든 인간은 어김없이 수정란 하나에서 탄생하고 노화를 겪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생명 현상의 법칙에 따라 하나의 생을 산다.

인생의 궤적 안에는 우주만큼 신비한 생명현상의 법칙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 광대한 궁금증은 짧은 시간에 개인이 풀어낼 수는 없는, 집단지성의 영역이겠지만

아이디어와 추측이 사실로 드러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과학자만이 누릴 수 있는 희열이며

그래서 과학자로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저자의 진심에

<매우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뜻밖의 생물학>에 더욱더 몰입하며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2019년에 인류에게 닥친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게 한 mRNA 백신 개발도

생명과학의 연구 덕분이었음을 짚으면서

생명의 다양성을 보존해왔기 때문에 그나마 지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역설한다.

지구별 생명체는 물론 나름대로의 다양성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동일한 유전정보를 갖고 다양한 기관을 만들어가는 신비한 법칙들이 있다.

반면에 그 중에서도 불완전한 돌연변이 개체 하나가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핵심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생물학은 생명체의 기능, 구조, 발생, 발전, 유전 등을 연구함으로써

생명체의 생존과 진화, 환경과의 상호작용, 유전적 다양성, 세포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모든 동물은 수정란 하나에서 출발하지만 어떤 수정란은 닭이 되고 어떤 수정란은 인간이 된다.

이러한 생명현상은 수정란이라는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다양한 세포를 가진 복잡한 개체로 만들어지는지 그 발생과 진화의 과정을 추적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일이다.

이 뜻깊은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시작은 매력적인 모델 생물을 발굴하는 것이다.

작은 동물이더라도 생명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네 가지 염기 순열의 순서가 굉장히 비슷하고

그 다음으로 생쥐도 상당히 비슷하다.

그리고 절반 정도의 유전자가 인간과 비슷한 곤충이 하나 있는데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가 발견한 뜻밖의 생명체가 바로 예쁜꼬마선충이다.

2021년 1월에 이미 JTBC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을 통해 화제가 되었던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는

이미 이 방송에서도 예쁜꼬마선충을 소개한 바 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모델생물을 연구한다는 것까지는 알겠고

그렇다면 모델 생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어떤 걸까.

인간에게 있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침팬지나 생쥐보다 이준호 교수가 예쁜꼬마선충에 주목한 이유는

생명의 보편성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 있어서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빠르게 세대를 이어 번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번식하는 일이 쉽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야 한다.

셋째, 인간과 유전정보가 충분히 유사해야 한다.

결국 모델 생물은 빠르고, 값싸고, 정확해야 한다.

물론 예쁜꼬마선충 외에도 초파리, 제브라피시, 생쥐도 알려져 있지만

이준호 교수는 예쁜꼬마선충에 유독 더 마음이 갔나보다.^^

근데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생명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보면 볼수록 왠지 정이 가고 자꾸 보고 싶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실험 대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과학자들이 갖게 되는 애정이 이런 것일까 싶기도 하다.

초파리나 제브라피시를 대상으로 한 연구나

바다 가시고기와 민물 가시고기의 생활 환경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예로 들어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는 진화론적인 관점들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이준호 교수가 주목하는 예쁜꼬마선충을 중심으로

세포의 분화과정을 밝히며 생명현상의 법칙들을 하나 둘 풀어간다.


 

성충이 되어도 약 1mm에 불과한 투명한 다세포생물인 예쁜꼬마선충은

대부분 암수 한몸인 자웅동체이고 드물게 수컷 예쁜꼬마선충도 있다.

예쁜꼬마선충의 생애주기는 탈피를 네 번 하고 성충이 되기까지 3일 정도 소요되며

2주 살면서 자손을 300마리 가량 출산한다.

생애주기도 짧고 번식력도 좋고 비용도 적게 드니 이만한 모델 생물도 없다.

흙 속에서 박테리아를 잡아먹지만 썩은 사과에 있는 대장균들을 특히 더 좋아한다.

그래서 이준호 교수팀 박사과정 학생들이 예쁜꼬마선충을 채집할 때는

과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를 찾아 썩은 과일 주변을 탐색하며

썩은 과일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곤충까지 같이 채집해 온다.

이유는 예쁜꼬마선충의 독특한 행동양식이 곤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걸 이해하려면

예쁜꼬마선충의 다우어(휴면 유충) 단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알에서 유충 단계로 넘어가자마자 예쁜꼬마선충은 생애 첫 중대한 선택을 한다.

자신이 살아갈 환경이 좋지 않음을 인지할 때, 이를테면 고온이거나 개체 밀도가 높은 경우

먹이 부족과 같이 환경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체적인 발생단계로 넘어가려고 하는 습성이다.

다우어가 되면 먹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상태로 6개월까지 견딜 수 있으며

예쁜꼬마선충의 독특한 행동양식인 닉테이션 행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단계이기도 하다.

곤충을 같이 채집하는 이유는 바로 예쁜꼬마선충의 닉테이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예쁜꼬마선충, 특히 다우어 유충의 닉테이션에 대해서

이준호 교수팀은 두 가지 질문을 설정하고 답을 찾기위한 실험에 돌입했다.

다우어 유충은 닉테이션을 어떻게 하는가.

다우어 유충은 닉테이션을 하는가.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외부 자극을 받은 특별한 신경세포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함으로써

근육이 수축 또는 이완되며 닉테이션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떻게'에 관한 답은 확인을 했고 그 다음은 '왜'에 대한 답을 찾는 실험이 이어졌다.

과학 실험은 언제나 가설을 먼저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다우어 유충의 닉테이션은 히치하이킹이다."

대조군 플레이트에는 얌전히 누워 있는 예쁜꼬마선충을 두고,

실험군 플레이트에는 몸을 세워 흔들고 있는 다우어 유충을 두었다.

그리고 각각의 플레이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대장균이 노랗게 깔린 플레이트를 두었다.

예쁜꼬마선충은 냄새로 먹이를 탐지한다.

당연히 대장균이 있는 플레이트로 촉이 향하겠지만 이동 가능한 조건을 추가해야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예쁜꼬마선충이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도록 똑같이 초파리를 넣어두었고

약 여섯 시간이 흐른 후 확인한 결과 놀랍게도 몸을 세워 흔들고 있던 다우어 유충 일부가

대장균이 있는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반면에 닉테이션을 할 수 없는 예쁜꼬마선충은 대장균이 있는 플레이트로 옮겨가지 않았다.

이 실험을 통해 예쁜꼬마선충이 왜 닉테이션을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냈다.

닉테이션은 바로 먹이가 없을 때 새로운 서식지로 옮겨가기 위한 생존본능이며

나아가 종의 확산을 위함이었다.

 

 

실험 과정을 책으로도 봤지만 알수록 흥미로워서 자발적으로 관련 동영상도 찾아봤다.

과학자들이 느끼는 희열과 재미가 이런건가 싶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팩트임을 증명해낼 수 있는 순간이 주는 희열.

관찰 생물학에서 실험 생물학으로 바뀌는 시기에 모델 생물로서

1900년대에 초파리가 생물학계에 나타났고 예쁜꼬마선충은 196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렇듯 인류는 작은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통해

돌연변이를 찾고 이를 연구해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 지구별 생명의 신비를 파헤쳐가고 있다.

그 소명에 생물학이 끈기를 갖고 과학적 발전에 기여하며

후대에 지속가능하게 연결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과학자들의 존재가 달리 보였다.

예쁜꼬마선충의 삶의 방식은 인류의 삶과 죽음의 신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원동력(모티브)이 되었다.

신경세포 번호나 DNA 이중나선 구조 이런 건 사실 봐도 모르겠지만 (ㅋㅋ)

얕았던 생물학 지식에 또 한 번의 이정표를 만들어준

<매주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뜻밖의 생물학>과의 만남이 감사했다.

생명현상의 비밀을 푸는 생명과학의 이로움을 비로소 발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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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 -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3가지 기준
김기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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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을 말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기준이 있을 것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려 할 때 인간다움이란 어떤 품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인간이 동물 계열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는데는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다른 동물에 비해 지능과 협업능력이 탁월하다 보니

동시에 연속 선상에 있지 않은 특별한 종이라는 착각도 일으키곤 한다.

인간이 별종이라는 그 착각이 결국 지구 안에서 인간중심적인 사상을 부추기게 되었고

나아가 환경을 훼손하는 결과까지 초래한 지금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삶은 날로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관계로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이렇게 가다간 결국 영혼을 상실해가는 생명체로만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다움'을 큰 덕목으로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을 마주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한편으로는 인간도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인간다움에 대한 냉소적 태도만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과 인간다움에 대한 반발이 공존하며 대립하는 이 상황이

바로 인간다움에 대한 '인지부조화' 상태인 것이다.

현대인은 바로 이러한 인지부조화 상태에 놓여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서울대 철학과 김기현 교수가 <인간다움>에서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훈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우리의 열망을 담고 있는 '인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 생각은 어떤 변화의 압력을 받아왔는지 시대순으로 조근조근 강연하듯 풀어놓았다.

인간다움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분석해 보고

세상의 변화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 겸손하게 의견을 제시한다.

인지부조화를 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남겨진 바로 그 '인간다움'보다 좋은 척도는 없다는 것이다.


 

짐승과 구분되는 인간의 어떤 품성을 '인간답다'고 말할 때

그 인간다움이라는 성품을 구성하는 3가지 재료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문명이 시작되기 전, 아주 오랜 과거에 형성된 공감​,

기원전 7-8세기 경 세상의 이치를 스스로 파악하는 능력이자

이유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정당하다고 검증된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하는 이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다움의 가장 어린 자산으로 14세기 무렵에 형성되었고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능력인 자유(자율)를 들 수 있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재료를 가리켜 인간다움 삶을 지탱하는 3가지 기준이라고 말한다.

공감과 이성, 그리고 자율성이 바탕을 이룬 인류의 자산이 있었기에

현재까지 인간다움, 즉 인간의 도리를 수호해왔다.

현재 그 인간다움에 대한 도전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바로 인간다움에 대한 애착을 끌어올리기에 적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본질적이고도 핵심적인 내용들을 입문에서 다룬 이 책은 그래서 버릴 문장이 없다.

그렇기에 필사하며 느리게 읽는 독자로서 완독하기까지 참 오래 걸린 책이기도 하다.

필사한 페이지가 지금까지 거의 넘버원 수준...^^;

반지성주의가 판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이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독자들에게 좋은 각성제가 되어줄 것이라고 감히 추천해본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입문에서 이미 다 풀어놓았다고도 보는데

가장 유의미하게 읽을 대목은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이나 인간다움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었다.

타인의 즐거움과 고통에 공감하기.

타인의 삶 존중하기.

나의 만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지 않기.

이런 최소한의 도덕성만 갖춰도 인간다울 수 있다는 것.

다른 동물에게서 찾을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와 같은 '인간다운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이어서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인간다움의 세 가지 재료들이 겪었던 나름의 고난과 역경,

그 변천사를 만나볼 수 있는 지점들이 흥미로웠다.

나아가 미래 인간다움까지 조망해본 전체 흐름을 간략히 짚어보려고 한다.

이 과정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부족한 나의 글을 보는 이들에게

유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지만 시작해보려 한다.

 

 


 

모든 피조물의 주인 노릇을 하며 다스리는 최고의 지위를 지닌 존재를 우리는 '영장'이라고 일컫는다.

원시부터 중세 사이에 이미 인간은 스스로를 지배자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불과 도구, 언어를 사용했으며 높은 지능과 손가락의 형태, 그리고 직립보행 방식이

인간이 지배자가 되는데 기여한 능력들로 나열한 지점이 놀라웠다.

채집생활을 하는 인간은 사실 물리적으로 야생동물들보다 힘이 약했음에도

선조들의 협동능력으로 생존경쟁에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아 자연계의 영장이 되었다.

인류는 군집생활에 의해 가족 중심의 유대관계가 형성되었고

고대 도시국가 형태로 역사가 발전하게 된다.

이 역사적 발전은 조상에 대한 믿음이 신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종교적 의식을 치르며 신화가 형성되다가 신 중심 세상에서 인간을 주인공으로 끌어올려준 이성이 출현한다.

신의 명령에 따라 수동적이고 운명론적이었던 태도에서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원리를 파악하려는 방향으로 인간의 노력이 이어진다.

인간이 이성을 발휘하면 인간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확장되고 강화되어 간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들은

그래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성찰을 강조한 소크라테스의 유지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삶은 성찰을 통해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이 문장은 <인간다움>에 대한 나의 책리뷰의 결말과도 일맥상통하다는 지점이 개인적으로도 소름!

고대 그리스 철학은 본능적 욕망과 이성을 선악으로 구분하며 이성 중심주의를 취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기체론적 세계관이 관념의 또 다른 축을 이루며

개인의 사적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채로 중세로 넘어간다.

현대까지도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인간의 삶을 본질적으로 바라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되어주긴 하지만

자율과 자유를 갖는 개인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 점을 감안하고 볼 때 중세시대에 '개인'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기에는 여전히 요원한 일일 것이다.

'개인'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 공동체의 조화와 안정에 기여해야 하는 수단에 불과했고

그저 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했다.

그러하니 당연히 개인적 욕망과 쾌락같은 사적인 것은 사회 평화와 안정에 장애요소가 될 뿐이고

인간다움으로 가는 길에 사적 영역은 불온한 것으로 비춰지게 된다.

중세 시대에 인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그래서

유기체론적, 나아가 전체주의적 세계관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개인'이 형성되어야 인간다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적인 배경을 안고 당시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30년 동안 치른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그리스는 지역의 주도권을 상실하며 결국 패하게 된다.

그 즈음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마케도니아의 국력이 커지면서 알렉산더에 의해 제국이 건설되고

이어 그리스와 아시아 문화가 결합된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마케도니아가 쇠락할 무렵에는 로마 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세력을 키우게 되고

두 제국간 전쟁으로 혼란의 시대가 지속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다 보면 인간은 종교를 통해 심신이 편안한 세계를 동경하게 되고

반작용으로 이성의 역할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이 때 배타적인 민족 종교였던 유대교가 예수의 출현으로

율법보다 복음이 구원에 이르는 핵심이 되면서

모든 인간을 위한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보편 종교로 전환,

유대교도 기독교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 의해 313년 밀라노 칙령이 공포되었고

기독교와 그리스도가 유럽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후 1000년에 걸쳐서 평등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근대의 존엄한 개인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성은 사실 고대에 잉태되었지만 중세의 유기체론적 세계관에 막혀

개인의 평등한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었다.

중세에 묻혀 있던 평등 의식과 개인의 내면 세계는 근대에 들어오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색, 휴머니즘, 인본주의 운동이

인간다움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문학과 예술을 향유하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해준 르네상스,

기존의 가톨릭에 대한 도전과 인간의 저항을 보여준 종교개혁,

14세기 왕권에 밀린 교황청이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져

70년간 유폐된 사건 아비뇽 유수는 모두

교회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가는 결정적인 역사적 고리를 이룬다.

부패하고 비도덕적인 사제들이 개인을 구원해준다는 믿음에서 불신으로 바뀌었고

전통과 계급주의적 권위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던 고정관념으로부터

세계에 대한 지식을 해방시킴으로써

개인의 판단력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이 커져간다.

이러한 근대에 등장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론과 르네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방법의 차이일 뿐 권위주의를 배격한 개인주의 선언이었다.

나아가 개인주의에서 출발해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존 로크의 사상이 출현하기도 하였다.

16-18세기에 걸쳐 평등하고 자유로운 계몽 시대 속에서 이성에 대한 반발로

쾌락과 욕망을 아우르는 정념이 이성보다 더 우월하다고 강조하는 데이비드 흄

더 나아가 욕망의 영역이 도덕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까지

공감에 주목한 철학자들의 주장이 등장하면서

이성과 신앙에 의해 통제되었던 당시로서는 '악의 축' 같았던 욕망의 영역이

근대에 들어와 죄의식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줌으로써

이성과의 위상에 도전장을 던졌던 근대를 지나간다.

근대에 들어와 개인이 탄생하면서 공감, 이성, 자율이 어우러져 주목을 받게 된다.

인간다움의 개념이 모습을 갖추어가게 되었지만

18세기 후반 다시 이성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과학적으로 발전하면서 산업사회를 이루었지만

일부의 개인은 가난해져서 그 이전시대보다 더 살기 어려운

인간성 상실의 시대, 인간의 존엄성 붕괴의 시대를 살아야했다.

과학 발전으로 모두가 행복할 거라는 계몽 시대의 꿈은 빛이 바래지고

이성이 가져다준 과학과 산업에 대한 회의감만 깊어진다.

이쯤에서 인간은 특별할 것이 없으며 이성에 대한 의심을 강화시켜준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고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니체는 이성을 부정적으로 것으로 묘사하기에 이른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도 늘 관심이 많지만 여기서는 언급만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다만, 현대에 와서 새로운 사상적 패러다임을 만든 이론으로

다윈의 진화론과 니체의 사상, 프로이트,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짚고 간다.

니체는 일반적 원리나 보편성이라는 틀에 인간의 고유함을 묶어두는 것에 반대하며

이성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고통을 존재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니체의 사상에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동의했던 바이기도 하다.

고통과 갈등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괴로워한다.

절대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모두 고통을 느끼지만

니체는 이러한 고통이 때로는 인간을 성장시키고 개인을 탁월하게 인도하는

긍정의 디오니소스적 입장이라라는 점에 개인적으로 한번 더 주목하게 된다.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러한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사랑하라고까지 했었다.

Amor Fati!

(나의 신용카드에 새겨진 문구이기도.)

고통에 굴하지 않고 도리어 힘을 키워나간다?

평범한 인간으로선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도덕과 계율을 넘어서면

위버멘쉬, 초인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하였다.

문득 이러한 궁극의 인간, 탁월한 인간을 내 주변에서 과연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니체는 기존의 고정관념과 도덕 체계에 그야말로 망치를 든 철학자가 아닐 수 없다.

이성에 대한 반발로 프로이트 또한 인간 행위와 삶을 지배하는 동력으로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과 성적 본능에서 찾았고

마르크스는 도덕과 이념의 근원을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경제적 구조에서 찾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유가 모든 개인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아 자유롭다고 환상을 가질 뿐이라고 말한 지점에서

그의 통찰력이 이 정도였구나 사실 개인적으로 감탄하면서 읽었다.

실제로는 부정의한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노동자)은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했다고 보았다.

간섭이 없는 소극적 자유만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은 자본을 가진 유산계급만 시장을 독점하게 될 것이고

노동자 대중은 그저 부르주아 생산자들에 의해 노예화되어

급기야는 삶이 비참해질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너무 정확한 거 아닌가...ㅠㅠ)

<자본론>을 편집했던 엥겔스 역시 개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소극적 자유를 강조하다 보면 자본주의만 강화시키게 되고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고도 했었다.

현재를 살면서 주변을 둘러 보니 이들의 예언에 부동의할 수 있는 '용자(용기있는 자)'가 있을까 싶다.

부르주아는 이기적인 계산만 할 뿐이고 인간과 노동의 가치는

인격적인 것에서 멀어지며 교환의 가치로 전락되었음을 목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주장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적 통제권, 즉 적극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사회주의를 주장했지만

안타깝게도 자유주의,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말았다.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도 나의 영원한 관심사였는데

김기현 교수의 <인간다움>이 불을 지폈다...!

이 책 끝내고 나서 조만간 내 책장에 있는 마르크스 관련 책들을 모조리 소환해야겠다.

이성, 공감, 자유가 이렇게 현대에 와서 다윈,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통해

다방면에서 공격을 받게 되었고 현재는 인간다움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우리 모두가 인지부조화 상황으로 몰려 있는 상태인 것이다.

무한 경쟁, 탐욕주의, 물질의 노예, 인간성 상실, 지배에 종속된 인간...!

모두 자본주의의 폐해로 언급되는 키워드들이다.

지금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모습들이어서 여전히 마르크스의 비판이 울림을 주나보다.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사회구조의 부조리는 여전하고

실체는 점점 교묘하게 뒤에 숨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까?

개개인에게 주어진 소명을 이야기하면서 이 책은 끝난다.

인간다움을 보존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How.

타인도 나만큼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연대하는 가치를 인식하고 강화하는 것.

그래서 <인간다움>에 대한 논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인지부조화를 넘어서는 방법은 존중의 태도, 역지사지의 태도로 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질문에 대한 답은 책 속에 있는 이 두 문장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 스스로가 자율적 성찰을 통해 이성을 발현함으로써 공존의 윤리에 도달해야 한다.

인간다움은 그럴 때만 이루어진다.

누가 시켜서 하는 성찰이 아니라 '자율적'이어야 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내면과 주변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인간다움의 세 가지 재료는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발휘될 수 있게 깨우느냐, 잠들게 내버려두느냐의 차이이지 않을까.

2024년 연초부터 올해 최고의 책이 될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서가명강 서포터즈가 되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었다.

앞으로 김기현 교수의 신간도 주목할 것이고

지인들에게 선물하기에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단연코 나는 <인간다움>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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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오버 - 국가, 기업에 이어 AI는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가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조용빈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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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이미 인간의 삶에 스며들어

우리의 일상에 크고 작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를테면, 문자와 긴 글을 읽어내기 위해 필요한 인간의 능력을 활용하고 발휘하기 보다는

언젠가부터 시각적 콘텐츠들에 물들어서 편의와 강한 자극에만 반응한다.

전보다 더 오래 살고, 더 부유해지고, 더 좋은 교육을 받는 등

인간의 삶이 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하지만

그와 관련한 발명들이 꼭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해줬다고 말하기에는 논란의 여지도 있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행동을 미세하게 변화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무서운 것은 그 영향력이 매우 '비강압적'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이며 자기 생각이라고 느끼게 한다는 데에 있다.

자율적인 자연질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시스템을 갖춘

지금을 우리는 '인류세'라고 칭하곤 한다.

그 인류세의 두드러진 특징이 '의식없음 mindlessness' 이라고 볼 때

실로 지금 이 시대는 스스로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이자 저자인 데이비드 런시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인류세가 아니라 사실은 '기계세'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기계세'라는 어휘를 접했을 때의 그 낯섦에 선뜻 개념이 잡히지 않았는데

읽어가면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이미 우리가 기계세에 살고 있다며

근거로 제시한 내용들에 설득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AI가 인간 세상에 침투하여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다움 상실을 우려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위기의식이야

이미 공공연하게 퍼져 있던 사실이지만

국가나 기업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식은 사실 너무 가까이에서

혜택이라고 믿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니체가 살았던 시대의 동시대인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현재 인간다움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공지능이 으뜸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핸드오버>의 저자는 이 책의 주제로 인공지능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

책 제목이 "핸드오버(Hand Over)"인 것을 대략 미루어 짐작해 보면

여기서 저기로 옮겨갔다는 것인데

읽다 보면 인간을 통제하는 그 중심축이 이동했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인공지능으로 이동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과연 무엇에서 이동했다는 것인지, 그리고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그 중심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목차를 보면 '국가'가 눈에 들어온다.

3장 제목 '인간보다 오래 사는 대리인들'은 바로 국가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며

책 전반에 걸쳐서 국가의 기능과 정체를 다각도로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주 섬뜩함을 느끼곤 한다.

현대의 국가와 기업이 복제 가능하다니!


 

기계세와 국가&기업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는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1651)>에서 언급했던

'자동기계' 즉 국가를 지칭하는 말에서부터 풀어가야할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저자가 힘주어 쓰는 부분이 어디인지 이제는 대략 보인다.

우선 목차를 훑어보고 서문과 첫 장, 그리고 나가는 글을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 첫 장에서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 정의했던 국가와

현대의 국가 개념을 절묘하게 엮어서 풀어가고 있다.

인간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더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국가들을 만들었고 물론 성공도 했다.

그러나 이 기계들이 이제는 너무 강력해져서 확실하게 인간의 통제 아래에

둘 수 있다고 보장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할 것 같은데

되려 인간의 삶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개개인의 집단정신이 모여 집단체가 되었고 집단적 힘은 지녔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인간보다 국가에 더 큰 의사결정권이 쥐어져 있다면

국가가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을 제한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인간을 파괴할 능력도 가지고 있는 국가는

과연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단순히 실행만 하는 기계일까?

이런 모든 가능성들을 끌어올린 저자는 그래서 국가와 기업을 괴물이라고 표현했고

바로 그 괴물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강대국들과 글로벌 기업들이라고 분명하게 지목하고 있다.

영국, 미국, 인도, 중국,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 인도의 다국적 기업 타타,

바이두, 아마존, 테슬라, 스페이스엑스 등등.

AI로 대표되는 생각하는 기계와 국가&기업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서

과거를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부터 멜서스의 덫을 거쳐

현대사회의 중요한 길목마다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변화를 주도했던

주요 국가와 기업들의 역사를 짚어나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탐구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책이 바로 <핸드오버>이다.

"국가, 기업, 로봇" 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중심으로 이 책을 펴낸 데이비드 런시먼은

국가를 '인공 인격'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일을 더 오래, 더 조직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할 목적으로

설립된 것으로 보았으며 국가와 기업은 스스로 생각할 순 없지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오래 기능할 수 있는 인공 대리인으로서

앞으로도 권력, 지속성, 복제가능성이 두드러질 것이라고도 전망하고 있다.

설상가상 국가와 기업같은 인공 인격을 인간화하는 과정도 진행중인데

이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국가나 기업을 비롯해서 우리의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온갖 비인격적인 시스템에 속하는

관료제, 시장, 자본주의, 가부장제들을 가리켜 인간이 만든 사회적 기계들이라 칭한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중 일부를 구성하고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쩌면 이런 인위적인 메커니즘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 상태라고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진지하고 통렬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통제의 중심이 인간 주도의 의사결정 시대가 아니라

현대의 괴물과 기계가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고

나아가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현재에 익숙해져 있어서 우리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분명 이전과 비교할 때 거대한 인공 생명체(국가와 기업, 그리고 AI까지)가

우리를 압도하는 지금 이 세상은 충분히 이상하다.

이런 문제점을 감지하고 스스로 식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핸드오버>가 각성시켜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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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카페 멋집 - 머물고 싶은 공간 훔치고 싶은 디테일
공상찻집 도라노코쿠 지음, 김슬기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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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이 주는 편안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편안함만을 추구하던가!

나만의 특별한 공간을 탐색하고 반복적으로 나의 흔적을 남기면서

점점 나의 공간으로 점유해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본능, 내지는 욕망의 다른 이름일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뿐, 고요히 잠들어 있는 그러한 욕망을

간질간질하게 자극시켜 주는, 머물고 싶은 공간이 책 한 권 안에

다 담겨 있다면 이거 펼쳐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내의 인생 카페도 물론 많이 있겠지만 요즘 일본여행이 완전 트렌드가 되어버린 때에

도쿄에 있는 빈티지 카페만 돌아다니는 컨셉으로 한다면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

특히 카페 덕후에게는 이만한 일본여행 필독서도 없다!

맛, 멋, 감성을 모두 사로잡은 도쿄의 빈티지 카페 75곳을 소개해주는 <도쿄 카페 멋집>​.

일본의 카페 전문 인플루언서가 펴낸 북폴리오의 신간이다.

 

@toranocoku 계정으로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자신이 보고 상상해온 꿈의 음식과 디저트들을 가상의 카페에 담아낸다.

공상찻집 도라노코쿠는 개성이 돋보이는 카페를 소개하거나

커피와 음료, 디저트 등 카페 메뉴 레시피를 공유하며

현재 약 19만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카페를 찾는 이들의 다양한 취향들을 빈티지 카페 75곳에서 왠만하면

만날 수 있게끔 도쿄에 있는 특별한 카페들을 엄선,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2023년 4월 기준 정보이니 우리가 제주도여행 하듯,

실제로 방문할 예정이라면 꼭 SNS나 직접 유선상 문의를 해 보기를 권한다.

카페 정보마다 주소, 전화번호, 영업 시간, 휴무일, 홈페이지나 SNS,

예약 가능 여부와 찾아가는 법이 기록되어 있으니!

도쿄 현지 로컬이 인정하고 자기들만 알고 싶은 빈티지 카페 75곳은

아기자기한 동화, 앤티크, 아지트, 찻집, 클래식, 레트로 라는 6가지 컨셉으로

다양하게 취향에 따라 카페놀이하는 재미도 있다.

그 중에서 나의 취향을 자극하는 도쿄 카페 멋집들을 컨셉별로 하나씩 골라 보았다.

당신의 카페 취향은 어떠한가?^^

 

 

<책을 벗삼아 지혜롭게>라는 블로그 제목과 별명처럼 책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못지 않게 좋아지는 것이 또한 내게는 자연이다.

넘기다가 여기서 곧바로 멈춰버렸다.

'큰 나무' 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레 그랑 자르부르.... 트리 하우스로 꾸며진 보타니컬 카페이다.

카페마다 각각의 맛, 멋, 감성이 살아있는 도쿄 카페 멋집들 중에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던 동화 속 카페 컨셉을 지닌 빈티지 카페였다.

나의 진짜 트리 하우스를 만들 수 없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에 내 흔적을 남겨두는 것도 충분히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빈티지 카페에 등수를 매기는 건 의미없다.

기준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니까.

푸르디 푸른 식물들이 감싸고 있는 이 공간이 그래서 내게는 1등이다.

자연처럼 왠지 고요할 것 같고, 그래서 기분좋은 적적함을 만끽하며

책 한 권 감성돋게 읽고 오기 좋을 것만 같은 도쿄 카페 멋집.

물론 현실은 또 직접 가봐야 알겠지만

상상 속에서 다녀오는 게 돈이 든다거나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까

상상은 자유.^^

 

1960년대에 만들어진 활판 인쇄 작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고

활판 인쇄를 다루는 워크숍도 열리는 레터프레스 레터스에서는

레트로한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이야말로 공간을 소비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한쪽 벽면 전체를 활판 인쇄 도구들로 채우고 있고

목제 알파벳 활자들까지 견학할 수 있다는 것이 이곳만의 유니크함이 아닐 수 없다.

스튜디오 견학은 예약 필수!

 

 

카페 덕후들이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를 새삼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카페보다는 사실 자그마한 동네 책방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카페에서 책방과 크게 다르지 않는 공통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문을 열면 펼쳐지는 특별하고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라는 것!

집과는 또 다른 편안함과 거기에 설레임까지 안겨주는 빈티지 카페에서

디저트를 즐기며 공간을 소비하는 멋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도.

거기에 가는 곳마다 훔치고 싶은 디테일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카페놀이...^^

세상 아름다운 물건들은 다 모여 있을 도쿄 카페 멋집 투어.

이 책만 정복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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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지금의 안부 - 당신의 한 주를 보듬는 친필 시화 달력
나태주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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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보다는 다음 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즌이 되고 보니

연말선물 추천글들을 눈여겨 보게 된다.

먹을 것도 좋고 겨울을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마음과 정서를 보듬어 주는 이런 시화 달력은 더 좋지~~~!

 

발표하는 책마다 포근하고도 편안한 시 선물을 전했던 나태주 시인이

이번에는 책이 아니라 달력을 선물한다.

북폴리오의 신간으로 나온 <나태주, 지금의 안부>는 언제나 쓸 수 있는 만년 주간달력으로

매주 하나의 시를 나태주 시인의 친필 시화로 만날 수 있다.

52주간 일주일에 한 편씩 나태주 시인의 손 글씨로

아름다운 시를 접할 수 있으니 친근감은 두 배!!!

거기에 선명한 색채까지 더해진 그림과 필명까지 더해져서

하나의 회화 작품을 만나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책상달력 하나로 인테리어 효과까지 거둘 수 있을 듯~^^



윗 상자를 열면 2024년 열 두달이 다 적혀 있는 달력 포스터가 보이고

그 아래에 풍성한 구성품들이 한 보따리다.

"당신의 모든 날에 안부를 전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친필 시화를 모티브로 7장의 엽서에 그래픽 시화도 담았다.

지인들에게 한 장씩 연말 안부인사를 전하면서 선물로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꿀팁인데 ...

하얀 벽면 한 켠에 엽서들을 자신만의 구성으로 붙여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롯이 나만의 갤러리가 된다.

우표 모양 안에 시인의 그림과 엄선한 문구들이 담겨있는 스티커

함께 들어 있는 나의 안부노트를 멋지게 꾸미는 것으로 활용해도 좋다.

나의 안부노트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필사해도 좋고 주간일기를 남겨도 좋다.

벌써 77주째 블로그에 주간일기를 기록하는 나처럼.

52주로 구성된 만년 주간달력 속 나태주 시인의 손글씨와 그림이 너무 정겹다.

이미 발표된 시로만 구성한 것이 아니라 미공개 신작 시가 14편 수록되어 있어서

나태주 시인의 best poem 모음집이라도 해도 좋겠다.

두꺼운 종이로 되어 있어서 오래 소장하기에도 좋은 탁상 시화집이다.

해가 거듭되더라도 집안 어디든 늘 옆에 두고 볼 수 있어서 만족도가 더하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두고 두고 곁에서 볼 수 있는 나태주 시인의 만년달력,

<나태주, 지금의 안부>.

내게 선물해도 좋고, 연말선물로도 강추!

시를 즐기는 팁 하나 투척한다면...

아끼는 노트에 좋아하는 시 한 편 골라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필사를 해보는 것이다.

시에 집중하는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내 마음에 머물 수 있고

그 곳은 평온함만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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