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뜻밖의 생물학 - 생명과학의 최전선에서 풀어가는 삶과 죽음의 비밀 서가명강 시리즈 35
이준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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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진화, 유전, 노화, 죽음.

예전에 히트한 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문학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한 마디로 로맨스 드라마를 위해 지어낸 제목이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정말 인간은 별에서 온 생명체였다.

지구별에 정착한 모든 인간은 어김없이 수정란 하나에서 탄생하고 노화를 겪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생명 현상의 법칙에 따라 하나의 생을 산다.

인생의 궤적 안에는 우주만큼 신비한 생명현상의 법칙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 광대한 궁금증은 짧은 시간에 개인이 풀어낼 수는 없는, 집단지성의 영역이겠지만

아이디어와 추측이 사실로 드러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과학자만이 누릴 수 있는 희열이며

그래서 과학자로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저자의 진심에

<매우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뜻밖의 생물학>에 더욱더 몰입하며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2019년에 인류에게 닥친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게 한 mRNA 백신 개발도

생명과학의 연구 덕분이었음을 짚으면서

생명의 다양성을 보존해왔기 때문에 그나마 지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역설한다.

지구별 생명체는 물론 나름대로의 다양성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동일한 유전정보를 갖고 다양한 기관을 만들어가는 신비한 법칙들이 있다.

반면에 그 중에서도 불완전한 돌연변이 개체 하나가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핵심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생물학은 생명체의 기능, 구조, 발생, 발전, 유전 등을 연구함으로써

생명체의 생존과 진화, 환경과의 상호작용, 유전적 다양성, 세포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모든 동물은 수정란 하나에서 출발하지만 어떤 수정란은 닭이 되고 어떤 수정란은 인간이 된다.

이러한 생명현상은 수정란이라는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다양한 세포를 가진 복잡한 개체로 만들어지는지 그 발생과 진화의 과정을 추적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일이다.

이 뜻깊은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시작은 매력적인 모델 생물을 발굴하는 것이다.

작은 동물이더라도 생명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네 가지 염기 순열의 순서가 굉장히 비슷하고

그 다음으로 생쥐도 상당히 비슷하다.

그리고 절반 정도의 유전자가 인간과 비슷한 곤충이 하나 있는데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가 발견한 뜻밖의 생명체가 바로 예쁜꼬마선충이다.

2021년 1월에 이미 JTBC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을 통해 화제가 되었던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는

이미 이 방송에서도 예쁜꼬마선충을 소개한 바 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모델생물을 연구한다는 것까지는 알겠고

그렇다면 모델 생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어떤 걸까.

인간에게 있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침팬지나 생쥐보다 이준호 교수가 예쁜꼬마선충에 주목한 이유는

생명의 보편성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 있어서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빠르게 세대를 이어 번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번식하는 일이 쉽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야 한다.

셋째, 인간과 유전정보가 충분히 유사해야 한다.

결국 모델 생물은 빠르고, 값싸고, 정확해야 한다.

물론 예쁜꼬마선충 외에도 초파리, 제브라피시, 생쥐도 알려져 있지만

이준호 교수는 예쁜꼬마선충에 유독 더 마음이 갔나보다.^^

근데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생명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보면 볼수록 왠지 정이 가고 자꾸 보고 싶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실험 대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과학자들이 갖게 되는 애정이 이런 것일까 싶기도 하다.

초파리나 제브라피시를 대상으로 한 연구나

바다 가시고기와 민물 가시고기의 생활 환경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예로 들어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는 진화론적인 관점들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이준호 교수가 주목하는 예쁜꼬마선충을 중심으로

세포의 분화과정을 밝히며 생명현상의 법칙들을 하나 둘 풀어간다.


 

성충이 되어도 약 1mm에 불과한 투명한 다세포생물인 예쁜꼬마선충은

대부분 암수 한몸인 자웅동체이고 드물게 수컷 예쁜꼬마선충도 있다.

예쁜꼬마선충의 생애주기는 탈피를 네 번 하고 성충이 되기까지 3일 정도 소요되며

2주 살면서 자손을 300마리 가량 출산한다.

생애주기도 짧고 번식력도 좋고 비용도 적게 드니 이만한 모델 생물도 없다.

흙 속에서 박테리아를 잡아먹지만 썩은 사과에 있는 대장균들을 특히 더 좋아한다.

그래서 이준호 교수팀 박사과정 학생들이 예쁜꼬마선충을 채집할 때는

과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를 찾아 썩은 과일 주변을 탐색하며

썩은 과일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곤충까지 같이 채집해 온다.

이유는 예쁜꼬마선충의 독특한 행동양식이 곤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걸 이해하려면

예쁜꼬마선충의 다우어(휴면 유충) 단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알에서 유충 단계로 넘어가자마자 예쁜꼬마선충은 생애 첫 중대한 선택을 한다.

자신이 살아갈 환경이 좋지 않음을 인지할 때, 이를테면 고온이거나 개체 밀도가 높은 경우

먹이 부족과 같이 환경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체적인 발생단계로 넘어가려고 하는 습성이다.

다우어가 되면 먹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상태로 6개월까지 견딜 수 있으며

예쁜꼬마선충의 독특한 행동양식인 닉테이션 행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단계이기도 하다.

곤충을 같이 채집하는 이유는 바로 예쁜꼬마선충의 닉테이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예쁜꼬마선충, 특히 다우어 유충의 닉테이션에 대해서

이준호 교수팀은 두 가지 질문을 설정하고 답을 찾기위한 실험에 돌입했다.

다우어 유충은 닉테이션을 어떻게 하는가.

다우어 유충은 닉테이션을 하는가.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외부 자극을 받은 특별한 신경세포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함으로써

근육이 수축 또는 이완되며 닉테이션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떻게'에 관한 답은 확인을 했고 그 다음은 '왜'에 대한 답을 찾는 실험이 이어졌다.

과학 실험은 언제나 가설을 먼저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다우어 유충의 닉테이션은 히치하이킹이다."

대조군 플레이트에는 얌전히 누워 있는 예쁜꼬마선충을 두고,

실험군 플레이트에는 몸을 세워 흔들고 있는 다우어 유충을 두었다.

그리고 각각의 플레이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대장균이 노랗게 깔린 플레이트를 두었다.

예쁜꼬마선충은 냄새로 먹이를 탐지한다.

당연히 대장균이 있는 플레이트로 촉이 향하겠지만 이동 가능한 조건을 추가해야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예쁜꼬마선충이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도록 똑같이 초파리를 넣어두었고

약 여섯 시간이 흐른 후 확인한 결과 놀랍게도 몸을 세워 흔들고 있던 다우어 유충 일부가

대장균이 있는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반면에 닉테이션을 할 수 없는 예쁜꼬마선충은 대장균이 있는 플레이트로 옮겨가지 않았다.

이 실험을 통해 예쁜꼬마선충이 왜 닉테이션을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냈다.

닉테이션은 바로 먹이가 없을 때 새로운 서식지로 옮겨가기 위한 생존본능이며

나아가 종의 확산을 위함이었다.

 

 

실험 과정을 책으로도 봤지만 알수록 흥미로워서 자발적으로 관련 동영상도 찾아봤다.

과학자들이 느끼는 희열과 재미가 이런건가 싶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팩트임을 증명해낼 수 있는 순간이 주는 희열.

관찰 생물학에서 실험 생물학으로 바뀌는 시기에 모델 생물로서

1900년대에 초파리가 생물학계에 나타났고 예쁜꼬마선충은 196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렇듯 인류는 작은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통해

돌연변이를 찾고 이를 연구해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 지구별 생명의 신비를 파헤쳐가고 있다.

그 소명에 생물학이 끈기를 갖고 과학적 발전에 기여하며

후대에 지속가능하게 연결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과학자들의 존재가 달리 보였다.

예쁜꼬마선충의 삶의 방식은 인류의 삶과 죽음의 신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원동력(모티브)이 되었다.

신경세포 번호나 DNA 이중나선 구조 이런 건 사실 봐도 모르겠지만 (ㅋㅋ)

얕았던 생물학 지식에 또 한 번의 이정표를 만들어준

<매주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뜻밖의 생물학>과의 만남이 감사했다.

생명현상의 비밀을 푸는 생명과학의 이로움을 비로소 발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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