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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아마도 언젠가 당신은 이 날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의 날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걸요.” (『디어 라이프』중「아문센」p.85)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디어 라이프』를 만난 순간을 이렇게 표현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리라. 이 책을 읽어보고 나서 드는 첫 번째 느낌이 아마도 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에, 소박하고도 단순한 사건들이 여운을 남기는 정도라고 여겨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이 노벨상 수상작가의 주요 작품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평가를 미리 내리기 전에 노벨상이라는 일종의 ‘구속’을 벗어나 다시 곰곰이 생각하고 이 소설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14편 각각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아 책을 읽는 이의 재미를 반감시키기는 것을 지양하고, 되도록 전체적인 조망을 하면서 책을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디어 라이프』 : 역사와 일상
『디어 라이프』에 실린 단편은 모두 14편으로, 이중 10편은 소설이고, 마지막 4편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p.331)는 자전적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 14편의 모든 작품들이 대부분 비슷한 캐나다의 시골이나 중소 도시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고,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며, 대부분 인간관계의 미시적이며 섬세한 감정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단편이기 때문에 역사적 흐름을 관통하는 대서사시 같은 장대하고 웅장한 작품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 중에 누구든 우여곡절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고, 누구의 삶이든 나름대로 사연이 없는 삶이 없을 것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격동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거나 서사시적으로 표현되어야만 진실이 드러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대부분 그동안 거시적으로 포착되었던 역사상의 대사건들과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역사상 유명한 인물도 아닐 것이다. 사실, 역사상의 대사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하는 것도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웅과 지배자로 가득 찬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니었나? 민중과 일상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동등한 발언권이 있는 것이다. 현대의 아날학파가 제기한 역사학상의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일상과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훌륭한 예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예술 내지 좁게는 소설에서 그리는 진실은 어느 우리와 동떨어진 역사의 진실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가장 내밀한 인간의 진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진실’이라는 점에 집중한다는 것에서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가장 인간적인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그녀의 소설이 소소한 것에 매달려서 어떤 ‘위대한’ 성취를 보이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 될 것이다.
『디어 라이프』 : 거대담론과 소박한 일상
앨리스 먼로가 어떤 형이상학적인 고민이나 이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독자는 그녀의 작품을 그저 소박하기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디어 라이프』가 그저 소박하기만 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소박한 것이 중요하지 않아야만 하는 이유도 찾기 어렵다.
이 소설집은 어떤 철학적인 문제를 제시하거나 해결하려는 의도로 창작된 것은 분명 아니다. 이를테면 사르트르나 카뮈의 작품들과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의도적으로 거대담론을 무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거대 담론의 지배에 대해 대항하는 의식을 가지고 쓰여진 것도 아니다.
즉,『디어 라이프』는 전체로서의 작품이 거대 담론에 종속되지도 않았지만, 이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들의 초점은 전체적으로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이 소설이 내면적인 감수성에만 호소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역사적 상황이나 사회에서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 그리는 삶의 모습도 사회의 사정과 역사적 사건들, 시대적 경험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일본에 가 닿기를」에서 피터의 어머니는 소비에트 연방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서유럽으로 탈출하며, 「자존심」에서 그려진 2차 대전 당시의 사회상이나 「기차」의 퇴역군인 잭슨의 모습과 종전 후의 사회에서 전쟁의 경험을 엿볼 수 있다. 즉, 일상은 개인의 다양성을 반영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시대의 모습과 결합되어 있다.
앨리스 먼로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의 인간간의 관계와 삶의 모습들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의식적으로 형이상학적 이념을 적극 주장하거나 애써 무시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섬세하게 포착했을 때 드러나는 또다른 인간의 진실인 것이었다. 그녀는 인간이 가지는 여러 가지 성찰과 그로 인하여 드러나는 문제들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다음에 다가올 일을 기다렸다.’(「일본에 가 닿기를」p.41)
소박함?
앨리스 먼로는 실험적이거나 특별한 소설적 기법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의 모습―인간의 외적 경험과 내면의 사유에서 찾을 수 있는 본질을 그리는 데 열중한다. 이것을 기법상의 소박함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기보다 개인적으로 먼로의 문체는 매우 정제되어 있으며, 절제된 기법을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평가일 것이라 생각한다.
소재와 배경들, 계속 등장하는 비슷한 느낌의 시골마을과 토론토, 밴쿠버 같은 일부 대도시들은 이 작품집 『디어 라이프』가 무언가 제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이런 점을 또다른 소박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작품을 내적으로,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소녀나 여성의 관점에서 주위를 바라보는 작품이 대부분이라고 해서 이것이 특별히 작품에 제약이 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화자 자체에 의해 본질적인 내용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어 라이프』의 1인칭 시점이나 3인칭 시점의 작품 모두에서 우리는 이 작품들이 인간의 보편성에 접근하고 있음을 본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할만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곧 우리가 이 작품에 더욱 공감할 수 있고, 보편적인 인간의 진실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잃는 것과 얻는 것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앨리스 먼로의 작품인『디어 라이프』를 관통하는 한가지 키워드를 포착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의 말들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잃음’과 ‘얻음’내지는 ‘상실’과 ‘획득’이라는 어구를 들고 싶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얻는 것도 있다. 그것은『디어 라이프』의 인물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기차」에서 퇴역군인인 잭슨은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무언가를 취소하는’(p.232)데, 이것은 벨과의 삶으로 이어지며, 벨이 사망하자(상실) 모종의 해방(획득)을 얻는다. 「호수가 보이는 풍경」에서 낸시는 꿈에서 깨어나지만(상실), 현실을―그녀에게 ‘쌩쌩하다’고(p.301) 말하는 현실로 되돌아간다.(획득)
이 『디어 라이프』에 수록된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인물이 잃는 것과 얻는 것은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이 작품집을 잃는 것과 얻는 것의 연속으로 짜여진 우리의 삶 이야기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요소는 앨리스 먼로가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기보다 그녀의 작품에서 삶의 진실이 자연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메이벌리를 떠나며」에 나오는 다음의 부분은 앨리스 먼로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상실 전문가. 그녀를 그렇게 불러도 좋으리라.(p.118)
이러한 ‘잃음’과 ‘얻음’의 과정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지루하거나 의미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여운이 가득한 감동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무의미하고 권태로운 것만이 아니라, 각기 독특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과정은 아이러니하다. 먼로가 그리고 있는 『디어 라이프』의 인물들과 같은 일상의 모습들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는 일상을 벗어난 그 무엇에 도달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시작하되 일상에 머물지 않는 것. 이것이 『디어 라이프』의 세계가 단순히 소박하고 소소한 것에 머물기만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말해주는 가장 큰 증거이다.
우리는 소설이 끝나고 책을 덮는 순간 새로운 일상을 얻으며, 그 새로움은 동시에 훌륭한 소설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책을 덮고 느끼는 그 깊은 여운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이라는 붓으로 또다른 소설이 시작되리란 것을 믿는다. 그것이 바로 인생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 바로 그것을 바라보며 각자가 또 하나의 언로가 되어 일상이라는 언어로 소설을 써보는 거다. 마치 처음 말을 건낼 때처럼 두려움을 가지고. 그것 중의 하나는 아마도 이렇게 인생에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친애하는 인생이여. (Dear Life)
(*‘디어 라이프’는 리뷰의 대상이 된 도서의 역자 말에 따르면 ‘for dear life'라는 형태로 글 속에 단 한번 등장하는데 이것은 ’죽기 살기로‘의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dear 라는 말을 편지 등을 보낼 때 수신인에게 쓰는 관용적 문구로 바꾸어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