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을 뭐라 해야 할까. 다 마신 찻잔에 남은 찌꺼기 같기도 하고, 함부로 지울 수 없는 물때 같은 것이기도 해. 영영 사라지지 않는 실연의 상처나 계속 실패한 데서 오는 앙심이라고도 하지. 갑자기 살던 집에서 쫓겨나거나 나도 모르는새 폭삭 늙어버렸을 때도 한이 쌓이지. 하지만 거울을 깰 때 그는 아주 후련해 보였잖아. 지금쯤 한이 씻겼을 거야.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외국인들은 한동안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 P38
나는 숲과 땀의 냄새에 안긴 채,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서로 아주 다른 세상에서 온 이들, 전연 다른 규칙속에서 자라온 이들이 마당 곳곳에 앉아 있었다. 지난 세기의 붉은 벽돌로 지은 주택 앞에서. 마주하는 눈동자들은 모두 다른 색이었다. 그들은 나를 친밀하게 여기고 또 필요로 했다. 간혹 애정조차 내주었다. 그런데도 역시 익숙해지기 어려울 만큼 낯선 유전자로 만들어진 얼굴들. 그들과 마주하는 사이 나는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나에게도 서울의 친수 혹은 가족은 이들밖에 없다는 사실을.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산에서 내려오니 너무 많은 게 변해 있었다. 그는 늙었고 산 아래 사람들은 미숙해졌다. 뒷덜미가 다시금 서늘해졌다. - P39
국내 추리소설 그리고 현대추리소설은 더더욱 읽은 기억이 드물어서 시도한 책. 서점 MD 남자와 형사 여자재밌게 읽은 ‘비블리아고서당 사건수첩‘의 한국판이 되길 기대하면서 읽었다. 읽어보니 다른 결이었지만.형사가 자기 관할 사건만으로도 몸이 부족할텐데 타 부서 건까지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 답답했지만 소설인 점을 감안하고 다소 판타지스러운 남자주인공 역시 소설인 점을 감안해서 읽자. 읽는 건 쉽게 읽히는데, 추리물의 느낌은 덜하고 그저 가벼운 웹소설 읽는 느낌... 유동인에 관한 떡밥(?)으로 읽은 부분이 있는데, 떡밥이 맞나?코로나19의 상황이 작품에 스며들어있고, 계절 별로 한 사건씩 전개하면서 등장인물의 감정을 같이 따라가는 점이 매력적. 다만 수사물 측면에선 가볍기만 함. 사건트릭이나 추리물의 긴장감, 매력은 덜함. 연애전선이 60% 이상. 개인적별점(23.7.7) ★★★☆
건축물은 그 시대의 지혜와 집단의 의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정체로, 그 시대와 그 사회룰를 대변한다. - P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