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키에서 출판사 서평 이벤트에 참여해 좋은 책을 얻어(?) 읽은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한 권이라도 사서 보자 싶어서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부키 출간 목록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이 책 《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를 발견했다. 제법 수익성 있는(???) 경제경영서를 주력으로 출간하는 출판사에서 이런 책도 나온다니, 고유의 출판 철학을 가진 좋은 회사인 것 같다는 생각을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해보았다.

영국에서 잠시 체류할 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도시의 풍경이란 어딜 가든 휠체어나 유아차를 타고/끌고 가는 이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또, 지하철은 몰라도, 버스를 타기에는 한국보다 휠체어/유아차 이용자에게 한결 수월한 환경이다. 출입구에 계단이 없고 바닥이 낮은 버스를 우리는 '저상버스'라고 부르지만 거기서는 모든 버스가 그렇게 생겼다. 이런 환경이 특정 인물에게만 유용한 "배려" 혹은 "추가 비용"이라는 생각 자체를 탓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런 버스는 비단 이런 휠체어/유아차 이용자 외에도 무거운 캐리어를 든 여행자에게 유용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수월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그 상태가 일시적이든 만성적이든) 무척 유용하다. 시설을 이용하는 데 가장 불편함을 느낄 이들에 맞춰 설비와 관련 서비스를 설계하면 이는 보통 모든 이에게 유용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설을 "누가" 이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의 지점에서 우리는 사회 구성원을 보편적으로 정의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아마 우리나라 버스를 만들 때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이용자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에는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자가 잘 보이지 않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이들은 점점 더 "버스를 탈 만한 사람"의 범주에서 멀어져 다른 대안을 택해야 했을 것이다.

이왕 영국 추억팔이를 한 김에, 다른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한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생각보다 영자막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한국어자막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츠가 손에 꼽듯이. 운좋게 해나 개즈비의 〈더글라스〉 영국 투어 기간이 내 체류 기간과 겹쳐 공연장을 찾았을 때도 공연자의 말을 일부만 겨우 알아들어 불편함이 많았다. 아마 영자막 서비스가 있었다면 한결 나았을 거다. 이후에 추가로 프롬프터 자막을 제공하는 공연이 하루 더 편성된 걸 알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는데 그 '프롬프터'라는 게 예전 '가요톱텐' 시절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보던 조그마한 브라운관 화면처럼 작아서 앞자리 몇 줄에 앉은 사람들에게만 겨우 글씨가 읽히는 그런 프롬프터임을 알고 잔뜩 실망한 기억이 난다. 이후 이 공연은 넷플릭스에 올라온 버전을 보고야 맞추다 만 퍼즐 조각을 겨우 끼워 맞췄다. 그런데 만일 내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콘텐츠를 좋아하게 될수록 이를 소비하는 데 필요한 도구로서의 감각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물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무조건 꼭 같은 삶을 누려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장애라는 건 어떤 부문에서 신체/정신적 한계 혹은 보편적이지 않은 특이성을 지님을 의미하고, 인간이 가진 기술력으로 보완하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다만 장애인의 일상이 비장애인의 일상과 얼추 비슷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게 지구에 아직 존재한 적 없는 초월적 기술이 아니라, 약간의 추가 작업과 거기에 드는 시간, 비용 정도라면 이런 걸 "추가"의 범주로 여기는 대신 "보편"의 기준으로 삼으면 더 많은 사람의 삶이 한결 윤택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편"의 정의를 넓혀가는 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의 정의를 넓혀가는 일이자 인간 사회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에 '스페셜 올림픽'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출전하는 올림픽인데 유일하게 '올림픽'이란 명칭을 허가한 대회라고 한다. 일명 '디비저닝'이라는 과정으로 선수들을 분류하는데 이때 선수들의 기록보다는 수행능력을 우선순위 삼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대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승이나 메달 획득이 아니라 대회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라는 측면에서 어찌 보면 '스포츠 정신'이 가장 살아있는 대회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SBS 특별 캠페인 방송으로, 시청각 장애인들의 삶을 배운 것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보이지 않지만 들을 수는 있고, 들을 수는 없지만 볼 수는 있는 시각 또는 청각 장애인에 비해 시청각 장애인은 시각과 청각 모두를 감지하지 못한다. 캄캄한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감각의 입력이 시청각 이외의 것으로 편중되어 있는 삶을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겠다. 아직까지 거의 가시화가 되지 못한 장애라고 한다.

이 방송을 본 이후로 넷플릭스에서 이따금 음성 해설을 듣는 습관이 생겼다. 해설은 넷플릭스의 인트로, 두둥!하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N자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른 일을 하면서 〈킹덤〉을 틀어놓고 있을 때면 소리를 들으며 화면을 한번 상상해본다. 그러다 이따금 화면으로 내가 소리로 들은 내용이 화면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확인해보기도 한다.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에게는 시각이 청각을, 청각이 시각을, 상호 보완하지만 날 때부터 한쪽 감각이 아주 미약하거나 아예 차단되어 있는 채로 살았다면 내가 화면이나 소리를 엇비슷하게라도 상상할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다. 내가 지금 나름의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는 영상 번역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고 책도 전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를 읽고 이런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대단한 통찰이나 발견처럼 늘어놓는 건 전부 내가 보고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탓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선후천적으로 보거나 듣지 못하는, 혹은 보고 듣지 못하는 이들이 그저 나는 운이 나빴네 하고 넘기기에는 너무 큰 불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사회의 "보편"이 보고 들을 줄 아는 대상을 암묵적 전제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우연을 기반한 불균형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우연히 더 많이 누리게 된 쪽에서 기울어진 평형의 보완책을 마련할 궁리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이러한 평형을 위한 보완재를 만들려는 노력을 소개하는, '푸르메소셜팜'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사례집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인과 농업이라는 큰 주제를 엮어, 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보다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효율도 놓치지 않는 사업 모델을 마련하는 과정은 현 시점에서는 어떤 결과물의 집약이라기보다는 이제 막 '절대 반지'를 꿈꾸며 떠나는 원정(?)의 시작에 가깝다. 그리고 《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를 통해 이 이야기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진다면 이 모험 또한 훨씬 더 견딜 만하면서도 보람차고 풍성해질 것이다.

장애 청년이나 치매 노인 등 모든 농장 이용자가 농업의 치유 효과를 경험한다.

작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키우면서 자연스레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

무엇보다 작뮬을 키우는 과정에서 발달 장애인이 돌봄을 받는 객체에서 돌봄을 주는 주체로 거듭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프롤로그 중, 농장 경영주이자 네덜란드 사회적 농업의 귄위자 얀 하싱크 교수의 말


오랜 역사 속에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부모의 보호만이 전부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화한다.

더 선하고 중요한 가치를 개닫고 더 좋은 사회, 더 살 만한 나라를 만들면서 약자를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경쟁하면서도 배려를 배우고, 치열하게 살면서도 한순간 내게도 닥칠 수 있는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으로 풍요를 넘어 풍성한 삶을 만들어 왔다. 물질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귀한 가치다.

우영농원 이사 장춘순의 에필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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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번역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납품한 자막이 언제, 어디로 올라가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보통 운좋게 내가 납품한 자막이 어디에 올라가 있는지 알게 되면 해당 콘텐츠는 직접 사거나 플랫폼을 구독해야 최종 버전을 확인할 수 있다(사실 납품 이후에 굳이 내 자막의 행선지를 찾아다닐 이유도 딱히 없긴 하다). 이게 내 일일 때는 마냥 이상하다고만 느꼈는데, 막상 돌이켜보니 보통 내가 만든 건 남이 쓰게 되어 있다. 유통 구조라는 게 그렇다. 최고급 커피 열매를 수확 및 가공하는 노동자와 최고급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는 대체로 분리되어 있다. 아보카도를 수확하는 사람과 품질 좋은 아보카도를 식재료로 소비하는 사람도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뭣보다, 최고급 피아노를 만드는 노동자와 그 최고급 피아노를 연주하는 대가 사이의 거리를 따져보자면 한참이나 뚝 떨어져 있다. 둘은 어찌보자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 관계란 다분히 암묵적이다. 차라리 직접 납품한 자막을 찾아내기라도 할 수 있는 내 입장이 낫게 느껴질 지경이다.

우리 집에 피아노가 온 날은 어느 비오던 여름 날이었다. 당시에 나는 만원짜리 다마고치를 갖고 싶어 어른들을 졸라댔는데 심지어는 그즈음에 사기로 했던 피아노와 다마고치 중 택일을 하라던 극딜에도 망설임없이 다마고치를 택할 만큼 제법 질척거리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지금도 '다마고치'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뛴다). 그 결과 나는 다마고치와 피아노, 모두 갖게 됐는데 살면서 손에 꼽는 성공적인 거래였다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만큼 나는 피아노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우리 집은 초등학교 입학식날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는 가풍 아닌 가풍이 있었는데, 엄마를 졸라서 학원에 가긴 했지만 막상 나는 연주에 딱히 재능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원생 모두가 한 번쯤 나가던 피아노 콩쿨도 나는 전혀 경험이 없다. 그런데 왜 피아노와 만난 첫 날이 이렇게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지 나부터도 의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체르니 30을 간신히 떼고 피아노 학원을 그만 다니기로 정했다. 이후 중3 때였나 갑자기 '작곡'을 배우고 싶다고 동네 피아노 학원을 잠시 다닐 때도 피아노를 무진장 못쳤고, 성인이 된 후 첫 알바로 번 돈을 털어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을 때도, 그 학원 선생님이 소개해준 선생님에게 개인 레슨을 받을 때도, 또 나중에 회사 다니며 재즈아카데미에 등록해 레슨을 받을 때도, 죽 한결같이 피아노를 향한 정체 모를 동경과 울렁증은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와 슬픔이처럼 붙어다녔다. 그러는 동안 피아노 자체에 묘한 정을 붙이게 된 것이 그나마의 수확이다.

누가 내게 피아노에 관해 묻는다면, '수학'에 관해 물을 때와 마찬가지로, 잘치진 못하지만 좋아한다고 답할 것이며 내게 피아노는 무척 가깝고도 각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스타인웨이 만들기》를 읽으면서 좀 놀랐다. 나 역시 "일반인은 관심을 가지기 쉽지 않은"이란 수식(옮긴이의 말 내용 중)의 그 '일반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멋진 피아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우리 집에 있는 오래된 삼익 업라이트 피아노가 마음에 든다(이것도 사실 무지 비싸고 좋은 피아노다). 솔직히 좋은 연주자를 만나지 못한 이 피아노에 안쓰러움을 느낀 적이 더 많다. 레슨 선생님이 우리 집 피아노 소리가 좋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순전히 내가 별로 치지 않고 새 걸로 오래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러니 말하자면, 내가 고가의 스타인웨이를 소장할 가능성보다는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바닥부터 시작해 스타인웨이 제조 공장에 취직하는 게 스타인웨이와 가까워질 수 있는 좀 더 빠른 선택지일 확률이 더 높아보인다.

스타인웨이를 연주하는 이들 중에서도 일부만 관심을 가질 만한 스타인웨이의 제작 공정을 다룬 책을, 더군다나 스타인웨이에 관심도 없는 내가 읽고 있으려니 흥미가 훌쩍 떨어졌다. 이 책은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만든 것을 내가 쓰지 않는' 이 세계의 생산/유통 구조를 고민하는 이들이 더 궁금해할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에 피아노 연습을 다시 시작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10년 전 레슨 선생님이 가르쳐준 귀중한 지식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피아노를 치고 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다니는 교회에서 레슨을 받았고(집에는 비밀로 했다) 이후 집에서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된 첫 날, 우리 집 피아노 뚜껑(해머와 현이 자리한 쪽)을 열어본 게 아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 선생님이 소개해준 아주 멋있는 조율사분이 1시간 넘게 우리 집 피아노를 조율하던 기억도. 피아노를 만드는 사람도, 피아노 음을 조율하는 사람도, 피아노 연주를 잘할 필요가 없으며 어떤 의미로 그들에게 이 악기는 단순한 기계라는 점을 이 책을 통해 명시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같은 피아노라도 이를 만들고 음색 자체를 점검하는 사람과 이를 도구 삼아 연주하는 사람 사이에는 낚싯줄만큼이나 아주 가는 연결고리만이 남을 것이다. 나 역시도 우리 집 피아노가 묵은 먼지가 피어오르는 녹슨 소리를 내는 지경이 아닌 한 스타인웨이는 물론이고 그냥 업라이트 피아노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그리 깊은 관심을 두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럴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한 것 같다.

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공학을 배우던 때에도,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하드웨어에 별 관심이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그냥 알맹이(=소프트웨어)만 잘 돌아가면 그만 아닌가? 했었다. 그리고 딱 그와 비슷한 관점으로 당시에는 내 하드웨어(=신체)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무거나 먹고 아무때나 먹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몸의 삐걱거림을 감지하고 내 몸과 내 정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자각하게 되어 요즘은 운동도 챙겨 하고 식사도 전에 비하면 훨씬 신경 쓰게 되었다. 그 영향 탓인지 몰라도 요즘은 소프트웨어의 효율을 올리는 측면에서 하드웨어에도 슬슬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피아노에 관해서도 앞으로 소리와 연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연습하다 보면 곧 물리적인 기계로서의 피아노가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도 궁금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혹시 모르지. 주거 공간 문제 및 금전 문제를 잘 해결(???)해서 나중에 우리 집에 삼익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 야마하 전자 피아노 한 대에 이어 스타인웨이 한 대를 들여놓을 수 있게 될지도?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피아노 치는 일상을 이어나가야겠다. 전에 한창 재즈피아노 레슨 받을 때 하루에 30분만이라도 연습 시간 확보하라던 선생님 말씀은 좀처럼 실천이 안됐는데, 일상 전반에서 한결 안정을 찾은 지금은 의식하지 않아도 거의 매일 30분 전후로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 새해에는 구체적인 곡이나 목표를 정해 연습해볼 계획이다.

트위터 이벤트로 이 책 《스타인웨이 만들기》를 받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꽤 시간이 지났는데,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는 보은성(?) 리뷰라도 올리고 싶어 사진 먼저 찍어둔 게 벌써 10월이다(앞서 언급한 내 삼익 업라이트 피아노를 배경으로 찍었다). 알고 보니 내 책장에 이 책을 만든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 한 권, 같은 역자가 옮긴 다른 출판사의 책이 한 권 눈에 띄길래 함께 사진을 남겨보았다. 20대까지는 언젠가 읽겠지 하고 비상 식량처럼 사둔 음악 관련 책이 참 많았는데 실제로 끝까지 읽은 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연말을 맞이한 겸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남은 책 2권을 비롯해, 내년 2021년에는 《음악의 기쁨》 전집도 꼭 완독하겠다는 다짐으로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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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사사롭고도 중요한 특징 두 가지를 앞서 밝혀둔다. 바로 여성 저자가 쓴 경제경영 저작이라는 점과 이 번역서에는 '그녀'가 없다는 점이다. 하나 더 꼽자면 여성 번역가의 작업물이라는 점도 부각하고 싶다.

최근에 출판 기획/편집 수업을 몇 차례 들었더니 책장을 펴기도 전부터 이 책의 방향성을 나름대로 살펴보고 분석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책의 제목이다. "후배 하나 잘 키웠을 뿐인데", 라는 구체적인 서술체로 된 제목은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선배로서의 시점을 제공한다. 그래서 나처럼 이렇다 할 후배가 떠오르지 않는 방구석 일꾼(?)도 "우선 하나 만들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독서를 시작하게 만든다는 게 좀 재밌다. 당연하지만, 이 책은 선배든 후배든 그 사이 애매한 포지션에 자리한 나 같은 애매한 프리랜서들에게도 다각도로 적용할 수 있는 여러 유용한 통찰을 전한다.

저자 실비아 앤 휴렛은 《후배 하나 잘 키웠을 뿐인데The Sponsor Effect》를 통해 스폰서와 프로테제의 관계, 일명 '스폰서십'의 개념을 설파한다. 참고로 프로테제(protégé)는 프랑스어에서 기인한 단어로 풀어 설명하자면 '보호 받는 자'를 뜻한다. 이 책의 개념으로 상술하자면 상대적으로 경험이 더 풍부하고 좀 더 다양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스폰서에게 지도와 지지를 받는 위치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프로테제는 스폰서에게 로열티(충성심과 같은 말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간 내가 개인적으로 한국 조직에서 요구 받아온 충성심에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쌍방향성이 결여된 느낌이라 굳이 외래어로 표기한다.물론 '로열티'라고 해서 뭐 또 그리 대단한 신세계의 이상과 신념이 있는 단어는 아니겠지마는)와 성과, 더 나아가 신뢰를 바탕으로 이 관계에 임하는 태도로 보답하게 된다.

이젠 살짝 좀 지난 유행이지만, 이 스폰서십을 멘토-멘티 관계에 빗대어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단정적으로 요약하기보다는 각자 직접 책을 통해 배우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쪽이 훨씬 더 효율이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스폰서십의 인상이란, 사회 초년생 시절 잠시 그려본 찰나의 이상향에 가까운 관계다. 명확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고 각자의 선을 잘 지키며 이를 바탕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그런 관계. 내가 직장 생활을 경험한 건 고작 3-4년 정도인데(파트 타임까지 따지자면 여기에 5년이 더해지니 깡그리 무시해도 좋을 데이터는 아닐 것이다) 이를 요약하자면 내가 겪은 90%정도의 선후배 관계는 괴롭기 짝이 없었지만 나머지 10%에 의지해 겨우 조직 생활을 이어나갔다. 또, 운 좋게도 이 10%에서 나는 '스폰서십' 비슷한 관계를 경험했다. 물론 당시에는 그게 그런(?) 건 줄 전혀 몰랐지만.

이 스폰서십의 관계를 머릿속으로 정립해나가는 독서 초반에 떠오른 건 아무래도 정계 인사들 이를 테면 〈부통령이 필요해Veep〉 시리즈의 설리나 마이어와 에이미 브룩하이머 같은 관계였다(좋지 않은 예).



다행히도 중후반부터는 최근 방영된 MBC 〈다큐플렉스〉 8-9회 '은이네 회사'편으로 방영되기도 한 '컨텐츠랩 비보(VIVO)'이라는 좋은 예가 떠올라서 몰입도가 한층 올라갔다. 이 책이 선제시(?)하는 건 "후배 한번 잘 키워 봐" 같은 관점이지만 인간사가 다 그렇듯 이런 관계를 무 자르듯 선명하게 나누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내 경험과 위치를 나누고 베푸는 입장이 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절실하게 타인에게 그러한 나눔과 응원을 받고 싶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다만 이 복잡다단한 순환과 혼란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더욱이 자신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후임, 선임 구분할 것 없이 그 성취를 함께 도모할 상대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그 과정에 전념해야 한다는 점이다.


"CEO는 자신의 방에 걸어 들어와

불편한 진실을 말할 용기를 지닌 이들을 선발해야 합니다.

그런 인재를 프로테제로 두어야 하죠.

제대로 된 프로테제를 고르면

많은 것을 또 배울 수 있습니다."

- 본문에 실린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 '부즈앨런 앤 해밀턴'의 CEO 호라시오 로잰스키의 말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도 좀 더 심화된(?) '혼자'의 상황을 겪기 전까지는 그냥 대부분의 일을 직접 맡아 하는 게 편했다. 나 혼자만 잘 하면 명쾌하게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이란 단순해서 좋다. 타인이라는 변수가 사라지고 오롯이 나 혼자 모든 요소를 통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타국에서 이렇다 할 사회적 관계망에 속하지 못하고 일종의 고립을 한번 겪고 보니 내가 그동안 '혼자'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 제대로 된 혼자는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업계 안이든 밖에서든 알게 모르게 많은 이의 도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에게 사회적 관계란 필수불가결한 삶의 요소에 가깝다. 《후배 하나 잘 키웠을 뿐인데》는 말하자면, 그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주변의 도움과 지지가 있었다면 이를 일깨우고 또 감사하며 나 역시 의식적으로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보자는 제안을 담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 12장, '#미투를 넘어서면 얻을 수 있는 것들#MeToo And the Third Rail'에 있다. 저자는 조직 내 권력 구조를 이용해 자행되는 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 특히 남성 고위직 인사들이 벌이는 권력 남오용과 그 결과로 모순적이게도 피해자들이 조직에서 배제되는 실태를 꼬집는다. 그러고는 건전하고도 생산적인 스폰서십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데 특히 이 대목은 여러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사내 교육 자료로 이용하며 본보기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스폰서십과 스폰서-프로테제라는 관계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던 불편한 감정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사례와 낯선 이름들이 끊임없이 나열되는 책을 읽을 때면 솔직히 좀 산만한 기분을 곧잘 느끼는데 중간중간 '실전 활용법' 코너를 통해 읽은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어 좋았다. 또, 이 책 덕분에 묵혀두고 있던 리즈 와이즈먼의 《멀티플라이어》도 함께 읽었는데 실비아 앤 휴렛이 제안하는 이상적인 스폰서십 관계 형성과 유지 과정에 좀 더 구체적인 도움과 통찰을 곱할 수 있는(?) 워크북 성격의 책이다.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책의 제목처럼, 더하기 대신 곱하기의 관점에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증폭하자는 취지의 저작이다. 0에는 어떤 숫자를 곱하든 0이 된다. 그러니 주변에 존재한 적 없는(0인) 아주 새로운 인재와 아주 새로운 역량을 찾아 헤매는 대신 이미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못한 역량을 찾아내는 '멀티플라이어'가 되어 조직 내에서 이를 배가시키는 조력자가 되자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책 모두 여성 저자가 썼고 여성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 초반에 언급한 '시점'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본다. 함께 언급한 《멀티플라이어》 역시 긍정적인 개념을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독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멀티플라이어로 생각토록 하고 그 반대의 부정적 개념인 '디미니셔'와 선긋기를 하도록 부추기는 측면이 좀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스폰서이면서 동시에 프로테제이고 또, 다른 잣대로 보자면 멀티플라이어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디미니셔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천천히 너른 바다를 항해하는 셈 치고 좀 느긋하게 내 삶의 방향성과 중간 목적지들을 설정함에 있어 이 두 권의 책을 조타의 도구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바쁜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이 책들이 전하는 말은 때로는 뻔하고 구태의연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책들은 우리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적용할 통찰을 담고 있다. 중요한 건 내 자신을 믿고, 0이라 착각해온 당신의 잠재 가치를 끈덕지게 발굴하고 이를 서로 곱하며 성장해나가는 '같이'의 가치다. 다가올 12월, 그리고 2021년 새해에는 우리 주변에서 나를 곱해주고 있던 스폰서와 멀티플라이어 들의 존재를 새로이 발견하고 또, 우리 자신 역시 누군가를 응원하고 곱해주며 상생하는 한 해를 보낼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네가 정말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디즈니에 자리가 생겼어. 완전히 신입 자리지만, 이 분야에서 진짜 일할 마음이 있다면 잡아.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리디아는 금융 업계에서 쌓은 경력을 버리고 그 제안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지금도 종종 그 얘기를 해요." 리디아가 말했다.
"부모님께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은행 관리직을 그만두고 영화사에 신입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제를 설득하는 게 훨씬 어려웠다고요."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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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노아의 《태어난 게 범죄》 출간 소식은 두 가지 지점에서 내겐 좀 의외였다. 하나는 트레버 노아의 국내 인지도에 관한 고민 때문이었고(물론 이 사람이 알아주는 코미디언이라는 것도 알고 그 유명세가 딱히 거품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한국 한정으로 소름끼치게 유명한 인사는 아니라는 거지) 나머지 하나는, 이 책이 책을 펴낸 출판사 '부키'의 그간 출간 목록과 살짝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이후 출판 기획 수업을 좀 들었는데 기획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본래 개연성이란 만들고 엮기 나름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창 출판 기획에 관심을 갖고 기획서나 검토서도 어설프게나마 써봤고(너무 단편적인 기획이라는 사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트레버 노아 같은 영미권 코미디언의 저작을 번역 출간하는 출판사 책덕의 '코믹릴리프' 시리즈에 추가될 애나 아카나 책이 요즘 슬슬 본격적인 제작 및 홍보 단계에 돌입한 탓에 이 책이 적어도 만날 사람(?)은 전부 속속들이 만나게 하려면 어떤 포장과 전략을 써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태어난 게 범죄》를 읽고 어떤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애나 아카나 책은 내가 발굴한 건 아니라서 엉겁결에 (내가 자처한 셈이지만) 편집을 맡으면서 저자(그리고 번역자)와 친밀감을 쌓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이후 《태어난 게 범죄》를 다 읽고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애나 아카나보다는 아직(?) 트레버 노아와 더 친한 독자라는 사실을. 아니, 솔직히는 이렇게 한 번 더 정정하고 싶다. 나는 트레버 노아보다는 그를 낳고 기른 퍼트리샤 놈부이셀로 노아와 친해지고 싶은 독자라고.

나는 퍼트리샤와 (넓은 의미로) 구면이다. 그 존재를 나는 〈그 엄마에 그 아들〉이란 찰떡 같은 제목으로 넷플릭스에 소개된 트레버 노아의 스탠드업 〈Trevor Noah: Son of Patricia〉으로 처음 알게됐는데 당시에는 그냥 재밌는 코미디언을 한 사람 더 알게 되어서 든든한 기분이었다(스탠드업 코미디가 재밌기란 워낙에 좀 어렵다). 물론 코미디언으로서 트레버 노아라는 사람이 상당히 능력 있는 퍼포머라는 점은 높이 사야겠지만(출력이 좋은 스피커나 엠프 격이라고 할까?), 엄밀히 따지자면 대다수의 콘텐츠 자원 출처는 퍼트리샤로 정정 표기해야 함을 친절히 알려주는 게 바로 이 책 《태어난 게 범죄》이다. 이 자원이라는 게 일종의 상속 절차를 거쳐 전해진 탓인지 앞으로 두 사람 간에 저작권 분쟁이 일어날 일은 일절 없을 거라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 게다가 퍼트리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닿은 건 트레버의 혁혁한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구슬은 꿰어야 보배가 되고 말글도 어디로든 쏘기를 해야 개그가 되는 거니까(그게 잘된 개그인지 망한 개그인지 판단하는 건 무조건 그다음의 일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트레버의 시끌벅적한 주변과 개인적 생애 주기를 갈지자로 넘나들며 서서히 나아간다. [3부]쯤으로 가야 대중들에게 익숙한 트레버 노아가 고개를 빠끔 내민다. 풋풋한 얼굴로 "웨이터가 돼서 돈을 벌고 싶다" 말하던 다큐 〈You Laugh But It's True〉 속의 한 장면에서처럼. 성실한 노동으로 벌어먹고 사는 그 최소한의 수준으로 멀쩡하게 기능하는 사회를 꿈꾸는 청년의 뒤로 생경한 남아공의 풍경이 대비되는 그 모습을 딱 2년 전 즈음 나 역시 생경한 런던의 어느 에어비앤비 임시 숙소에서 앞으로 먹고살 걱정으로 잔뜩 쫄아서는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 봤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어쨌건 현재의 트레버 노아는 겁나게 돈도 잘 벌고 일도 잘하는 코미디언 겸 방송인이 됐으므로 우리는 각자 우리네 먹고살 길 모색이나 하면 되니, 이 책은 마냥 즐기는 마음가짐으로 읽어도 좋다. 특히 [1부]는 트레버 노아가 어째서 그렇게나 멀쩡하게 재밌는 코미디를 할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비밀의 열쇠가 되어주는 파트다. 물론 그 열쇠는 퍼트리샤 놈부이셀로 노아다. 이 두 사람은, 뭐라고 할까. 딱 요즘 내가 뒷북으로 보고 있는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필구 같은 콤비라는 느낌이 든다. 그냥 생물학적 엄마와 아들로 퉁쳐지는 납작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함께 부지런히 일군 "삶"이라는 이름의 공동 작업물과 그 시간이 담보하는 그런 복잡다단한 인연 말이다.

트레버 노아를 좋아하는 이들이 꼽는 그의 독보적인 장점 하나는 원초적인 소리를 다루는 능력일 것이다. 《태어난 게 범죄》에도 언급되지만 원체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음성 지원이 되는 기분으로 읽었다(이건 사실 번역자와의 합작이긴 하다). 좀 신기한 기분이었다. 내게 아직 좀 데면데면한 사이인 애나 아카나의 책을 읽을 때는 알지 못한 그런 기분.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내 실마리를 찾아냈다. 나보다 훨씬 더 애나 아카나와 친한 독자들에게 애나의 책은, 트레버 노아의 책이 내게 말을 걸었던 것과 꼭 같이 애나의 목소리로 말을 걸어줄 것이다. 이걸 배우고 나면 책 만드는 사람의 역할은 한결 간단해진다. 책 속의 말이 읽는 이에게 무사히 전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독자에게 책이 가 닿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부지런히 짜 그물처럼 촘촘하게 넓혀가며 잇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쨌건 이거면 될 것이다. 내가 트레버 노아의 바로 이 책, 《태어난 게 범죄》를 만난 재밌고도 신묘한 우연이 더 많은 이에게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책 중에서도 특히 저자가 일인칭 시점으로 말을 거는 에세이는 저자와 친해지면 훨씬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데, 나처럼 트레버 노아의 스탠드업 실황을 먼저 본 후에 책을 읽는다면 남다르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여럿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반대 순서로 책을 읽고 공연 실황을 보는 방법도 좋다. 《태어난 게 범죄》는 출간 후 일찍이 영상화 프로젝트도 성사가 됐는데, (무려) 루피타 뇽오가 퍼트리샤 역으로 캐스팅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뒷북으로 전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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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모두 이롭진 않지만, 읽고 쓰는 능력은 즐거울 때 가장 효과적으로 발달된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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