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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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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필요한 시절이다. 아름답고 올바른 편견이 절실한 시절이다. 해서 나는 편견을 사랑한다. (287페이지 / 편견을 사랑함)

 

짧게 쓴 에피소드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웃음이 피식피식 났다. 연재로 저자의 글을 만났던 독자라면 다음에 어떤 글이 올라올지 궁금해했을 것 같다. 그의 소설 한 권을 읽다만 게 전부인 내가 그의 산문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소설가가 쓴 산문, 특히 내가 접하지 않았던 소설가의 산문을 처음 만나는 거니 궁금했던 책이지만, 기대는 거의 없이 펼치게 된 거라 더 재밌게 읽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문장이 춤을 춘다. 장면이 저절로 그려진다는 말이다. 이 짧은 글에서도 소설처럼 문장으로 그리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살아가는 순간의 모든 것을 이 책 속에 담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들렸다. 잠깐씩 쪼개 읽기 좋으면서 가볍지 않게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삶의 모습들이기에 더 애틋하고 아프게 바라보게 된다. 그의 고향의 소박한 사람들, 그의 글이 가고 싶은 길, 그의 여유롭지 못한 도시 생활,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겪는 불우한 모습들, 그가 소설가로 살아가야 할 이유 같은... 그의 경험으로 이루어낸 글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리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을 담았다.

 

언제 어느 때 만나도 좋을 책이지만, 사는 게 왜 이렇게 팍팍한가 싶을 때 펼치면 좋겠다. 그 우울한 감정에 동참하라는 게 아니다. 울어야 할 순간에 웃게 만드는 글이 곳곳에 녹아 있어서 그렇다. 소 팔아서 대학 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대로 드러냈다. 그의 아버지가 우시장에 그를 데리고 간 이유를 알아서 눈물 나다가도 그의 학점관리 태도를 보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난다. (근데 정말인가? All F 학점 받으면 등록금 되돌려줘? 이건 한 번 물어봐야겠다) 음식 배달을 하면서 넘어지고 길 위에 널브러진 음식의 잔해를 보면서 부끄럽고 서글픈 감정에 화가 나서 눈물이 나기도 전에, 괜찮으냐고,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는 한마디에 웃을 수 있는 게 또한 세상이라는 것을 들려준다. 예전보다 조금 여유로운 형편이 되어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건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시간의 맛있기에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지금도 가끔, 아주 가끔 분홍 소시지를 산다. 엄마는 그게 무슨 맛이냐고, 맛도 없는데 뭐하러 먹느냐고 핀잔을 주곤 한다. 예전에 이 소시지를 넉넉히 못 먹고 살아서 한이 맺혔다고 하면서 다들 좋아할 거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명절에 음식 준비하면서 그 소시지를 꼭 사는데, 누가 먹느냐고 하면서도 막상 상 위에 올려놓으니 식구들 젓가락이 그리로 간다. 언젠가 제부가 그 소시지를 집어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니까, 그제야 엄마가 내 말에 동의했다. 그때 간절한 마음으로 먹던 맛은 아니지만, 지금 이것보다 더 좋은 음식이 많지만, 굳이 젓가락이 그리로 가는 이유를 마음은 알고 있다. 저자가 아버지의 설탕물 맛이 지금과 다르다고 하는 건 그 시간, 그때 그 자리의 맛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를 매혹시킨 풍경들에는 예외 없이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까 그 풍경들 속에는 반드시 누군가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었고 부모처럼 무척 가까운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이처럼 과거를 추억하기에 이르러서야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18페이지 / 감정의 귀환)

 

잘 배우고 있다고, 잘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부딪히며 겪어다가 보면 그런 것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곤 한다. 그 '잘'의 기준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아닌 나만을 위한 기준이 될 때가 많다. 점점 그게 옳은 선택의 기준이 된다. 지나간 일들은 거추장스러우니 잊으면 그만이고, 지금 나를 가로막고 있는 어떤 문제가 있다면 나는 그것만 해결하면 된다. 저자가 말하는 타락이 이런 거라면, 나는 너무 빠른 속도로 타락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타락하지 않아서 인간다운 게 아니고, 타락의 속도를 늦출 힘을 가진 게 인간이어서 존재감 있는 거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겠다.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함의 과정에서 보이는 태도가 삶의 진짜 모습인 거다. 아무리 급해도, 누군가에게 괜찮은지 물어볼 수 있는 한 마디가 절실히 필요한 게 사람 사는 이곳에 진짜 필요한 마음인 것.

 

문학과 소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볼 때면, 독자인 내가 알 수 없는 감정을 어느 선 안으로 들어가 듣고 있는 기분이다. 글, 책, 문장, 관찰, 이해, 비유 등등 그가 써내려간 많은 말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며, 어떤 의미와 자세를 품고 있어야 하는지 말한다. 뭐든 가볍고 진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특히 글을 쓰는 일은 더 무겁고 진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시대를 반영하고, 사람의 마음을 뚫고, 더 잘 이해하게 할 수 있는 문장의 구성까지 염려한다. 20여 년을 소설과 함께한 저자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좋은 기회다. 나 개인적으로는 읽다 만 그의 소설을 다시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 어쩌면 그의 소설에서 산문보다 더한 인간 냄새를 맡을 수 있겠구나.' 싶은 기대감으로 방 한구석으로 밀어놓았던 그의 소설을 찾아 바로 옆에 놓아두었다. 저자에 대한 이 감정과 기대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 펼쳐봐야 할 어떤 의무가 생긴 것처럼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대가 어떤 원칙을 품고 사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그대에게만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타인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지키고 살아야 한다. 시련이 없을 때 우아해지기란 퍽 쉽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우아해지기란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만의 원칙을 허물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뇌하는 그대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희생을 감내한 그대가 누구보다 우아하다. (153 / 고난 속의 우아함)

 

오래전 연재했던 글을 묶은 거라고 해도, 지금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할 게 거의 없다. 사람들 사는 모습이, 세상이 보이는 태도가 그리 변하지 않아서인지도. 눈물을 흘리는 이유마저 변함없는 것 같아서 쓸쓸하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절박해서 서글프다. 그런데도 묵묵히 견디는 삶을 버티는 건, 이런 글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자기 역할인 듯, 임무인 듯 한마디씩 쏟아내고 있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이 글들이 더 애틋하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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