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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평점 :
식사는 하셨습니까?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온순하고 진실 되며 믿음직스럽게 전달될 수 있는 게 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번 쓰면 지우기가 쉽지 않고, 지워도 흔적이 남으니 말 한마디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골라서 쓸 것 같다. 무슨 말을 할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뭘까,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식으로, 한 번에 한 마디를 쓰더라도 많은 고민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더 진중하고 진실하게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실제로 내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럴 것 같거든...
오래전에, 지금처럼 팩스나 이메일, 휴대전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전에는, 편지가 가장 원활한 통신 수단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빨리빨리’를 외치는 이 시대에 우편으로 오가는 편지는 그렇게 효율적인 통신 수단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가끔 그때의 정서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가끔 있는 걸 보면, 편지는 할 말을 전하는 수단 그 이상의 어떤 의미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게 전해지는 그 무엇이 편지글에 더 얹어져서 전달되는 거라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전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그때,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았던 편지는 서로를 향한 훈훈한 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며칠에 걸려 오가는 편지 속에 상대의 건강을 염려하며 안부를 묻고, 힘든 인생에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응원한다. 특히 이오덕은 권정생의 오래된 병을 걱정하며 약값을 부쳐주고, 그가 더위와 추위를 유독 심하게 앓을 때마다 근심한다. 교회의 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며 글 쓰는 삶을 놓지 않는 그의 열정에 육체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으로 서 있는 아동문학에 관한 내용이 오갈 때마다 ‘아, 이 두 사람은 정말이지 한국 아동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불편한 몸으로 시와 동화를 쓰고 평론을 쓰는 그들에게 좀 더 투명하고 안정된, 진심으로 이루어진 아동문학계가 형성되어야 했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한탄하게 되고 글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고 싶게 한다. 글을 쓴다는 게 오직 쓰는 일 한 가지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닐 텐데, 아동문학을 둘러싼 사람들과 사회적 배경들이 그들이 가진 아동문학을 향한 애정에 자꾸 냉기를 퍼붓는 듯했다. 열심히 썼으나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고, 출판계와 작가들의 신뢰가 무너지기도 했고, 사람이 모여서 이룬 공간인지라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는 일도 있었을 테다. 그때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동문학이라고 해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게 된다.
아동문학이 문학으로서 대접을 못 받는 까닭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작가, 시인들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아동문학의 정체성과 위기는 오직 우리 문학인들의 반성과 진지한 노력으로서만 타개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재미있게 읽히면서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써서 독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한편 문단과 사회에는 우리 아동문학을 옹호하고 그 존재를 과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5페이지 /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보낸 편지)
다행인 건, 그런 위기가 한두 번 찾아온 것도 아닐 텐데 끝까지 그 애정을 놓지 않았기에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 된 두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빛나는 작품들 역시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겠고. 겨울의 추위에도 골덴바지에 고무신이면 충분하다는 권정생, 그런 권정생이 마음에 걸려 늘 걱정하는 이오덕. 열두 살의 나이 차가 무색하게 소박하게 이어가는 두 사람의 우정은 진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시쳇말로 가족끼리도 마음 상하면 돌아서서 남이 되기 일쑤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갖고 30년의 우정을 지속하기란 진심을 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내 몸이 아픈 것처럼 스스럼없이 보내는 약값이 그렇고, 바쁜 와중에 굳이 서신을 주고받는 시간을 할애하는 게 정성스럽고, 서로의 글에 전하는 애정과 조언이 상대의 발전을 기원하는 것만 같아 애틋하다. 아마 글 쓰는 일에서도 서로에게 많은 영향이 미쳤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꾸준히 관심 두고 써내려간 아동문학이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고 정이 담긴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얘기하고 싶은 거라고...
몸으로 생활하며 쓴 아이들 것과, 어쩔 수 없이 머리로 만들어진 노래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어른이 아이들을 위한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훌륭한 동요 동시인데도 아이들은 그렇게 감동스럽게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되는 고민일 것입니다. (358페이지 /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일상과 꿈에 관한 고민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게, 두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이 아닐까 싶다. 평생을 두고 이렇게 훌훌 털어내듯,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고통의 순간까지 말할 수 있는 사이가 그리 쉽게 이루어질까.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야 굳어지는 관계인지 알게 하는 편지였다.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느끼는 설렘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장면에 감동하며 수다스러워지는, 아끼는 책도 선뜻 빌려줄 수 있는 사이. (솔직히 나는 책 안 빌려주는 사람이라, 책 빌려주는 관계는 어지간한 믿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 살짝 부러워진다. ^^ 특히 이오덕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며 쓴 권정생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모두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무던히도 애썼다. 출판이 미뤄질 때마다 안타까워했고, 그의 글을 이곳저곳에 기고하기를 바라며 전달했다. 아마 이오덕의 이런 노력이 권정생의 글쓰기를 더욱 부채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보나 여러 가지로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서로의 발전을 향해 가는 길이었음은 틀림없다.
1973년 이오덕과 권정생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2003년 이오덕이 하늘로 가기까지 3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읽는 이에게 소박하고 담백하게 다가온다. 편지나 일기가 지극히 사적인 내용인데도, 이들의 편지는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오늘 하루, 어느 순간을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익숙하게 공감되는 글이다. 편하게 들리면서도 삶의 한순간을 배우는 묵직한 분위기로 말이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라고 묻는 안부가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는 일상의 인사로 느껴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과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인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에게나 밥은 먹었느냐는 안부가 금방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이 두 사람 사이의 정과 믿음이 단단함을 글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당연하게 이런 편지도 주고받고, 오늘날 이렇게 책으로 공개되기까지 이르렀겠지, 싶다. 서로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나이 들어가며 배우는 세상의 모습, 한국 아동문학의 변천사까지 한눈에 보게 하는 내용이 좋았다. 이오덕과 권정생이 서로에게 전하는 애정과 위로가 그대로 전해져 진정한 교류와 교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따뜻한 글이다.
덧)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 『강아지 똥』과 『몽실 언니』하면 권정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 요즘이다. 이 편지글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어 그런지 이 작품들이 더 솔직하면서도 아프게 보이기도 한다. ‘동화’라는 단어에 내가 가진 선입견 같은, 환상적인 판타지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여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한 시절의 아픔, 혹은 누군가의 고통이 묻어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도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서 아름다웠다.
앞으로는 제 동화도, 그리고 행동도, 좀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에 맺힌 것, 실컷 풀어 볼 수 있는 작품 쓰고 싶습니다. 선생님, 부디 염려 마세요. 언젠가 모든 오해가 풀릴 날이 오겠지요. 선생님이 지금 걱정하시는 사건도 조금 짐작이 갑니다만, 저는 별로 걱정 않고 있습니다. (121페이지 /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