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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힘들지만 이런 것도 참 좋네.'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잠시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 살아가는 건가 보라며 종종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치기도 했다. 하루 일정으로 어디 다녀올 수 있게 작은 캐리어도 하나 사자고 엄마에게 말하기도 했다. 미뤄두었던 기차 여행도 가보자고, 조금 서늘해지면 산이 있는 곳에도 가자고도 말했다. 돌아다니기를 싫어하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지만,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여전히 힘들고, 깔끔하지 않은 감정들이 남아있고, 풀리지 않는 일들이 발목을 붙잡고 있지만, 괜찮을 것도 같아서 어떤 기대가 있었다. 부담스럽고 무거운 짐 같은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란 경험도 했고, 이렇게 어울리는 소소함이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뭐 별것 있겠나 싶어 가지는 평범함이 감사했다. 그런데 늘 그렇듯 그게 오래가지 않더라. 잠시나마 느꼈던 행복이 불쾌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방해꾼이 나타나고, 정신을 못 차리게 뺑뺑이 돌리는 것처럼 힘들게 하더라. 여기저기 통화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 어차피 해결 안 될 거 손 놓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문제는 문제대로 늘어져 있고, 해결을 못 하니 머릿속은 폭발할 것 같고. 잠깐이나마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던 순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기차는 뭐고, 좋다고 말하는 건 또 뭐람. 내 몫이 아니었던 거지.
그래서였나. 저자의 책 제목을 보자마자 삐딱선을 탔다. 뭐가 그리 재밌느냐고, 시선을 가로막는 거 하나 없이 살고 있느냐고 딴죽 걸고 싶었다. 당신이 재밌게 사는 이유 따위 듣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몰랐던 사실 하나 때문에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저자의 글을 몇 번 만났음에도, 나는 저자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줄 몰랐다. 그저 유명한 의사, 책을 몇 권 냈고 좋은 얘길 많이 해주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다. 저자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지 15년. 내가 느낀 이 병은 몸도 불편하겠지만, 정신적으로 더 큰 아픔을 겪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병이었다. 저자에게 이런 아픔이 있다고 해서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불편하게 살아가면서도 사는 게 재밌다고 말하는 여유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아서 놀랐던 거다. 그러니 읽어볼 수밖에, 15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볼 수밖에...
사람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는 것도 달라진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저자가 말한다. 자신에게 찾아올 거라 짐작하지 못했던 병,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던 차에 이 절망과 억울함을 어떻게 할 줄 몰라 멍했던 한 달. 저자의 머릿속을 치고 나왔던 가능성과 긍정이 새로운 시간과 도전을 만들었다. 바쁘게 살아냈던 시간이 조금은 후회되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삶의 의욕을 놓지 않는다. 천천히 느리게 가지만 해내는 일들이 있어서 기쁘고, 자신의 역할을 아직 놓지 않으며 충실한 시간을 살아온 그녀. 아프기 전에는 몰랐던 인생의 지혜들이 육체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재밌게 사는 법을 알게 한다. 소중하고 감사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보게 한 거다. 아직 못 다한 것들을 버킷 리스트에 적어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웃음이 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자녀에게 삶의 구석구석에 대해 말하며 조언한다. 더 멋지게,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하여. 오랜만에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친구들에게는 더 솔직하게 말하며 마음을 터놓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환자들에게는 완벽하지 않은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아가게 한다. 한때 저자가 살아왔던 방식이 놓쳤던 것을 알기에 더 진중하고 솔직한 상담이 가능한 게 아닐까.
마음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 큰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것들 때문에 괴롭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치고 나올 때 당황스럽고, 여전히 제자리에서 풀 수 없는 것들이 힘들게 한다고 푸념하게 되면서 걱정은 산처럼 쌓아올리게 되는 일상. 저자의 메시지는 이런 모든 순간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하지만, 미처 마음을 다 열지 못한 나는 아직 저자의 말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했다.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메시지에 쉽게 긍정의 마음으로 돌아설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행운을 감사하고, 내가 받은 상처의 정의를 새롭게 보게 하고, 완벽하지 않아서 불안한 것들을 경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많은 것들 조언하지만 그걸 몰라서 나아가지 못했던 게 아니지 않은가. 다만,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에서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어보고 싶은 거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잖아. 잘 될 지도 모르잖아...
의무가 아닌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삶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잠시 빠져들었다. 민감한 시기에 상실을 경험한 그녀의 성장 과정도, 당연하게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직업의 세계에서도, 그리고 지금 반갑지 않은 병과 싸우고 있는 순간에도, 저자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단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조언으로, 가보지 않은 인생에 대해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가 보다. 정말 그리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말에 속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고 싶다.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못했으니 다른 방법에 눈을 돌려봐야 하지 않겠나. 내일 또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살게 되더라도, 그게 내일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지.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면, 해봐야지.
쉽게 충고하지 않아서 좋은 글이다. 함부로 단정하며 가르치려들지 않아서 미워할 수 없는 말투다. 말 그대로 누군가의 지혜를 엿본 기분이다. 지금 내 마음에 가득한 부정의 말들을 누가 좀 녹여줬으면 싶을 때 만난, 잔잔한 열기 같았다. 다행이다. 느려도, 언젠가는 다 녹겠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