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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 앨리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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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게으르고 귀찮다는 이유로 선뜻 어딘가로 떠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면 쉽게 마음도 발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어딘가에서 며칠 머물러야 하는 경우 가장 먼저 챙기는 게 소화제와 변비약이다. 낯선 곳에서 즐기는 것보다 불편하고 예민한 것을 먼저 느끼다 보니, ‘여행’이란 단어가 나와 친근할 리 없다. 변명 같지만, 여행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반면 누군가의 여행기를 듣거나 간접적으로 낯선 곳을 보는 것은 내가 갖는 불편함과는 별개로, 살짝 설렌다. 타인을 보는 게 그저 밀어내는 시선의 이방인을 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편해질 때가 있다. 여행이 주는 묘한 매력을 여행자는 분명 알았을 거다. 밥장의 표현대로라면 여행자의 ‘여행 독후감’은, 그걸 읽는 다른 이에게 그 여행의 흥분, 설렘, 감동, 여운까지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밥장은 '밥장=그림'과 동의어였다. 온라인을 통해 그의 여행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여러 책 이야기를 하고 여러 나라 이야기를 해도 그냥 독자, 가끔 그림과 함께 여행이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 책 『떠나는 이유』를 한 페이지씩 계속 넘기다 보니, '밥장=그림=여행'으로 보인다. 내가 보는 그의 동의어가 한 가지 더 늘어난 거다. 취재차 함께 한 여행이든 그만의 여행이든, 그에게 여행이 굉장히 가까운 지기 같았고, 위로였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에너지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의 많은 여행기가 있지만, 그의 이번 여행기에서는 사진보다 노트에 그린 후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는 글씨도 너무! 잘 쓴다) 처음부터 그가 노트에 후기를 그리고 쓰진 않았으리라. 언젠가부터 그에게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감정들이 사진에 전부 담아질 수 없음을 알게 된 후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압도적인 풍광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셔터를 누릅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 모니터로 보면 그때 보았던 장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실망하기 일쑤입니다. 태양 아래 모든 것들은 각기 다른 빛줄기를 반사합니다. 습도와 온도, 계절에 빛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반사된 빛이 눈으로 들어와 뇌가 인식할 때 비로소 ‘색’이 됩니다. 아직까지 사람의 눈처럼 해상도가 높거나 정교한 기능을 따라잡는 기술은 개발되지 못했고, 또 같은 색이라도 사람마다 달라 보인다고 합니다. (128페이지)

 

여행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여행이 된 중독자처럼 보이는 그의 여행기가 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어느 명소에서 풍기는 위압감이나 감탄사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느끼는 사람의 시선을 담아냈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거의 십년 전부터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에스토니아, 그리스 등 세계 곳곳을 넘나들며 다닌 흔적들이 그에게 계속 길을 걷게 하는 듯하다. 좋아서 시작한 게 업이 되고 즐기면서도 어느 순간 그 안에 갇히게 된 마음을 열어야 했을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곳, 혹은 숨을 쉬게 하는 계기. 그에게 그림을 사랑하면서 즐기고 업이 되었고, 때로 찾아오는 그 갇힘을 풀어주는 것은 여행이었을 거다. 그런 여행이 편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을 테지. 그래서 그의 여행기는 그 자신에게도, 그걸 듣는 이에게도 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풍광에서 느끼는 어색함이 아닌, 다른 점을 인지하고 그 길을 걸음으로 느긋해지는 마음의 여유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풀어가는 아홉 단어로 쓴 여행기는 건조한 삶을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단어들이다. 여행에서 찾은 아홉 가지 키워드가 인생에서 찾고 싶은 어떤 것을 기대하고 그리게 한다. 소박한 행운을 만난 기쁨, 자연이 주는 고마움, 내 것을 나눔으로 느끼는 부유함, 언젠가 펼쳐보며 든든함을 느낄 기록 같은 일들이 그의 여행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의 여행기는 여행지의 정보나 공간에 대한 게 아닌, 그곳을 상상하면서 더 채울 수 있는 향기 같은 것이다. 그가 방송 프로그램으로 함께 한 여행지들, 함께 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더 푸근하게 들린다. 이런 과정으로 이런 여행지를 이런 마음으로 다녀왔구나, 하는 후기를 듣는 게 정겹다. 영상을 통해서 보던 어느 장면을 이런 배경으로 담았구나 싶은 앎과 재미, 공감을 공유하게 된다.

 

 

여권을 들춰보면 여행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여권은 꼬질꼬질할수록 제맛입니다. 출국 창구 직원에게 여권을 건네면 빈 곳을 찾는 데 잠깐 애를 먹습니다. 몇 쪽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마땅한 곳을 찾아 출국 도장을 찍습니다. 가볍게 인사하고 통과한 후 가만히 뒤쪽을 넘겨봅니다. 일본은 QR코드까지 있으며 네팔은 손으로 씁니다. EU는 형제처럼 똑같고 아르헨티나는 EU를 애타게 닮았습니다. 타이는 입국할 땐 네모, 출국할 때는 세모이고 뉴욕은 타원입니다. 파라과이는 진하고 큰 빨간 동그라미입니다. 대한민국은 촘촘하고 소박합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생긴 도장을 받을지 디자인은 새로울지 기대해봅니다. 여권이 만료되는 2021년까지 입출국 도장으로 빈틈없이 채워보고 싶습니다. (99페이지)

 

여행이란 이름으로 나설 때보다, 여행을 떠올리는 시간이 더 즐거운 이유를 밥장의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그의 기록이 즐겁다. 기억에 남는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여행의 연장이란 것을,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록하는 그 모든 순간이 여행이 되고, 어느 사물 하나로도 여행이 시작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매 챕터 끝에 함께 한 음악들 역시 그의 여행의 매력을 돕는다. 그때, 그 장소에서만 나를 더 감상적으로 만들고 세상을 더 빛나게 보게 하는 음악들이 언급된다. 가슴을 더 뛰게 하는 건 음악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런 여행과 음악이 함께했으니 더할 나위 없었을 테지. ^^

 

 

떠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튀어나올 때마다 꺼내 들고 싶은 책이 되지 않을까.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보고 싶을 때마다 펼치고 싶은 페이지가 아닐까. 작은 사물 하나에 온전히 마음을 두고 싶을 때 보고 싶은 사진, 그림이 아닐까. 여행도 좋지만, '여행(그곳)에 대한 상상'이 더 좋다고 느끼게 하는, 내가 읽은 『떠나는 이유』는 그런,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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