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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포함된 구성원 관계에서의 일은 지극히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아니, 너무 자주 그렇다. 객관적인 눈으로 봐야함에도 불구하고 핏줄이나 지연 관계에서는 법도 규칙도 무시하는 일들이 종종 그대로 진행될 때가 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문제일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이니까 그럼 안 되는 일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이름부터 우아한 디너(만찬).
파울과 세르게 형제 부부가 디너를 즐기기 위해 만난다. 예약조차도 어려운 레스토랑에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살짝 감춰둔 상태로 천천히 식사를 즐기기 시작한다. 이들 형제의 너무나도 다른 성격과 위치(형은 차기 총리 후보, 동생은 전직 교사이면서 현재 무직)는 식사 내내 보이는 말투와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으며, 특히나 인격적인 장애를 가진 동생 파울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보여주고 있던 것은 살짝 가면을 하나씩 쓴 것 같은 모습들이었고, 이들이 그 가면을 벗어야만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이들이 즐기기 위해 모였던 그 자리의 진짜 의미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당신이 자식을 지독하게도 사랑한다면?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가르쳐야 옳은 것인가를 냉정한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파울과 세르게 형제 부부가 디너를 위해 만난 그 자리는 사실은 각자의 자식들이 저지른 만행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논하기 위해 만난 자리였는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욕심에 바탕을 둔 그 대응책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지게 만들 정도로 잔인하고 분개할만한 방식이었다. 곧 총리가 될지도 모를 세르게는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세르게의 아내 바베테는 총리부인이라는 명함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런 세르게를 저지하고자 한다. 파울은 자기가 가르친 방식대로 행하는 아들의 잘못된 방식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파울의 아내 끌레르는 오직 제 자식을 감싸기 위해 세르게의 얼굴에 상처를 입힐 지경에 이른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이 어른이고 부모일 텐데, 이들의 자식 사랑은 너무도 끔찍하고 자신들이 가지는 위치에 대한 욕심은 너무나도 커서 옳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 같았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오직 하나였으므로. 내 자식은 무조건 감싸야 하고, 내가 가진 것을 절대 놓을 수는 없다는 마인드.

이들의 욕심을 한 번 더 보여주는 대목은 정치를 하는 형인 세르게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입양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모습과 함께 보여주었던 쇼맨쉽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필요에 의한 입양과 철저한 계급사회를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적용시켜 살아가게 만들었던 점이, 결국은 그런 거짓된 마음과 모습들이 일을 더 크게 만들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테지.

 

읽다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도대체가 어디까지 갈 셈인지 몰라서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들었다. 끝까지 그들의 행보를 따라가 보고 싶어지게 만들기까지 하더라. 그래서 결과까지 보고나서야 그들을 독자인 내가 심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멈추지 못하고 계속 그 길로 가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심판을 내려야 할지 내 머릿속은 갑자기 차가워지기도 했다. 온기로는 이들의 모습들을 덮어줄 수 없었기에. 인간이, 부모가,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철저하게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때로는 팔이 바깥으로도 굽을 줄 알아야 한다.
이들 형제의 아이들의 저지른 일들은 ‘그래, 숨겨두자.’하는 것으로 덮어야 할 일이 아니다. 이미 파울의 아들 미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꼭 그때여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더 이상 나아가기 전에 딱 그때 그 순간, 해야 할 일. 미헬에게는 누군가와의 공유로 덮어둘 범죄가 아니라, 그 잘못을 가르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 하는 때였다. 힘을 가진 자가 밟아 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잘못한 것은 인정하게 만들고 반성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주어야 할 때.
일부러 부러뜨리지 않는 이상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지만 안으로 굽는 그 팔이 때로는 바깥으로도 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건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해 마지않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가능해지는 일일 수도 있다. 내 아이가 지금 성장해가는 인성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팔을 부러뜨려서라도 바깥으로 굽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무엇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지는 알고 있는 현명함이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닌가?

두 시간에 가까운 식사 자리에 동참하면서 소화는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럭셔리한 메뉴로, 우아한 분위기에 가식적인 미소를 띤 채, 양도 적어 입에 닿기도 전에 사라질 음식들로 식사는 잘 하셨나?
가끔은 답답하고, 가끔은 나의 일로 생각하게 만들고, 가끔은 흥분의 도가니로 빠지게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소화제를 미리 준비해두고 읽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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