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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백억 원대의 주얼리 브랜드 사장인 도죠 슈이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다. 슈이치가 주말을 보내기 위해 갔던 별장에서 시체는 발견된다. 특이하게도 프로트 캡슐 안에서. 프로트 캡슐이란 현대판 고치라고 불리는데 캡슐 모양의 명상 기계다. 그 기계 안에서 알몸으로 누워 일정 시간을 보내면서 말 그대로 명상을 하는 것. 보통 40분의 시간을 그 안에서 보내면 6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하는 것과 같은 효과. 그 특이한 기계를 놓고 사는 슈이치가 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으로 사건의 추리는 시작한다. 그가 왜 살해를 당했으며, 누가 죽였는가에 대한 추리가 시작되면서 용의선상에 오르는 인물들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슈이치의 구애를 받았던 아름다운 여비서 사기오 유코, 유코와 애인 사이였던 주얼리 디자이너 나가이케 신스케, 슈이치의 이복동생인 슈지와 요시즈미 등.

살바도르 달리는 화가로도 유명하지만 그 특이한 콧수염과 아내인 ‘갈라’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했기에 말이다. 달리는 자신의 친한 친구였던 폴 에뤼아르의 아내인 갈라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상당히 고뇌한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아닐 것이기에. 결국 운명은 달리에게 갈라와의 사랑과 결혼을 허락했지만 달리는 죽은 형의 인생을 살아가는 고통이 너무 심했다. 갈라는 달리의 그런 고통을 덜어주고자 달리를 감시하면서 오직 그림만을 그리게 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그림을 그리게 하면서 감시까지 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런데 의외로 뜻밖의 결과를 얻은 셈이 된다. 강압에 가까운 환경에서 그린 달리의 그림은 명작으로 찬사를 받았고 달리는 자신이 그린 모든 그림에 갈라의 이름까지 생겨 넣는다. 하지만 그 명성도 갈라가 죽고 나서 끝이 난다. 갈라의 죽음 이후로 달리는 칩거 생활을 하다가 눈을 감는다. 갈라 이후로 누구도 달리에게 갈라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없었던 것. 그만큼 갈라에 대한 달리의 사랑은 컸던 것인가?

달리의 고치라 제목이 붙여진 이유는 읽다보면 저절로 알겠지만, 이 책에서 살해된 도죠 슈이치가 그 답이 된다. 살바도르 달리를 신봉해서 슈이치 스스로가 달리와 같은 수염을 기르고 달리의 그림을 수집하기도 한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달리와 슈이치는 생일마저 같다. 독자인 내 생각이지만 슈이치는 달리의 사랑마저 신봉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애인이 있는 자신의 여비서인 유코를 사랑했고, 유코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슈이치가 유코를 사랑했던 또 다른 이유가 나중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프로트 캡슐과 고치.
태내의 낙원을 꿈꾸었던 두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달리는 자궁 안이 기막히게 쾌적한 낙원이라고 표현하고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할 만큼 그의 담론은 유명하다. 슈이치가 달리의 그러한 자궁 속의 낙원을 경험하고자 고치 모양의 프로트 캡슐을 별장에 들여다 놓고 즐기기까지 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도 같은 심리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로워했던 슈이치가 그 자궁 안의 낙원을 즐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회사를 키우느라 치열하게 살아왔던 시간들의 휴식이 필요했기도 했고,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을 장소가 필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슈이치는 프로트 캡슐을 그런 용도로 활용했고 충분히 즐겼다. 단지 어쩌면 자신에게 본보기라고까지 여겼을지 모를 달리의 자취를 따라가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은 우려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사랑이 당연하게 올 것이라는 그릇된 자만과 계획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의 예외사항을 간과한 것이 그 증거라고.

“누에는 고치를 짓고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되지. 진주조개는 껍질 속으로 침입한 이물질을 수천 겹의 진주층으로 감싸 보석을 만들어. 인간도 마찬가지야. 인간의 고치 속에서도 갖가지 것들이 변화해 다양한 무언가가 만들어지겠지.” (405페이지)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한 추리였지만, 그 진행과정을 보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혹은 갖고 싶어 하는 그 고치와 고치의 역할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내내 갖게 한다. 누구나가 다 그런 시간이 있고 그런 도구가 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의 그 가장 최적의 순간을 필요로 하는 시간.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는 자신만의 도구. 어쩌면 그런 장소일지도 모를 그런 곳(것).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에게도 그런 것들이 하나쯤은 있다. 죽은 슈이치가 프로트 캡슐을 즐겨했던 것처럼 말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게 되는 ‘고치’. 어린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껍데기 하나쯤 갖고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나에게도 고치가 있다. 나의 고치는 아마, 아니, 문명 소설을 쓰는 행위이리라. (중략) 왼쪽 서가에 나란히 꽂힌 나의 작품을 향해 손을 뻗어 책등을 어루만진다. 나의 소설. 나의 고치여. - (380, 386페이지)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도 그런 고치가 있다. 그가 쓰는 소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아리스>시리즈 중의 두 번째 작품인데, 나는 이 책으로 <아리스> 시리즈를 처음 읽거니와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처음 만난다. 추리소설작가 아리스와 범죄학자 히무라의 활약이 그럴듯하다. 제법 흥미롭게 시작하는 이야기와 결국 드러낼 것은 드러내고야 마는 추리소설이기에 큰 거부감이 없이 읽어갈 수 있다. 사랑에 대한 질투와 집착, 어느 대상에 대한 지나친 광신, 헛된 망상 같은 것들이 가져오는 이상들. 결국은 인간이기에 그런 것들도 같이 갖고 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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