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 현대사 - 강철서신에서 뉴라이트까지
박찬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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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은 "민족 해방"의 약칭입니다. 민족 해방은 한때 반미 사조와 공산 혁명의 기치가 젊은이들을 휩쓸었던 중남미, 혹은 그외 제3세계에서 흔히 접하던 구호이자 표어이지만, 한국처럼 저리 간략히 연원 모를 두 알파벳 두문자로 약칭하는 예는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외국인에게 들려 주면 무슨 소린지 모를 것입니다. 허나 웬만큼 의식과 양심을 지닌, 특정 연령대 이상인 한국인들에게는 이 간단한 두 글자 안에 온갖 곡절과 사연이 모두 담긴 듯 다가오겠습니다.

1990년대 학번들만 해도 이 NL은 낯선 애크로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알긴 아는데 별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경이원지의 대상이라고 할지. 그러나 80년대 학번 세대들께 반독재 투쟁이란 불가침의 성역이자 영원한 죄의식, 마음의 빚을 상기시키는 비밀의 주문이었듯, NL은 침노되어서는 안 될 최후의 요새이자 도덕성과 권위 가득한 비밀의 아지트처럼 여겨졌고, 때로는 외경을 넘어 공포감마저 자아내는 본산의 상징이었습니다. 1990년대는 시대의 풍조가,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180도로 달라졌기 때문에(투쟁에서 향락, 가벼운 감상과 소비), 따지고 보면 같은 캠퍼스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었던 두 세대가 정작 그 청춘기들의 색채에는 판이하게 다른 물을 들였다는 게 신기합니다.

NL로 한국 현대사 코드를 모두 설명할 수야 당연히 없겠지만, 또 현 문재인 대통령의 행적이나 신조를 두고 NL과 유의미한 연결을 짓는 건 다분히 무리이지만(세대가 다릅니다. 개인으로서 사후 공감을 할 수야 있겠지만), 여튼 비서실장부터 해서 1980년대 후반 전대협 의장 등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인사들이 정권 핵심부에 대거 포진해 있으니, 이상하게도 시대의 대세가 전면 교체되었건만 아직도 음지에 계속 묻혀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이 NL에 대해, 쓴소리는 쓴소리대로, 온당한 재평가는 재평가대로 뭔가 이뤄져야만 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아주 포괄적이지는 않지만) 당시의 궤적과 현재의 자취를 이처럼 책 한 권으로 되짚어 보는 작업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 생각으론 이 정도 책의 세 배 분량이 할애되어야 온전한 조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운동권 출신 인사(현재는 대부분 시민사회단체 중진들로 활약하는 이)들의 회고를 들어보면, 그 나름 큰 기대를 품고 "상경"하여 거물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만나 보면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차가운 대접에 환상이 깨어졌다는 말을 책이나 강연 등에서 여러 번 접합니다. 이 NL의 전성시대라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운동권 문화, 풍조"와는 너무도 다른 구조와 흐름이 지배했음을, 이 책을 읽고서야 바르게 상기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제 편할 대로 왜곡되어 정작 그 기억의 담지자마저 당혹스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서클(언더)의 종막"이라든가, 8대니 5대니 하는 "패밀리"들이 노선과 이념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마치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 혹은 그 반대편의 멘셰비키 파벌과의 살벌한 내부 투쟁을 연상케 합니다. 물론 칼과 총의 부림을 일삼는 난동이 아니라, 논리와 대의의 향방을 놓고 벌이는 일대 결전이지만 말입니다.

"일체의 종파주의를 금지한다." 사상의 자유와 분기, 진화, 발전은 다양한 입장의 차이를 인정할 때에만 아름다운 맹아와 결실이 가능한 법인데, 마치 북에서 김일성이 갑산파 독재를 확립할 때 쓰던 살벌한 구호 같아서 영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물론 그들 엘리트 지도부로서는 전두환 체제의 폭거와 극악한 탄압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단일 대오를 구축하여 투쟁 역량을 강화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겠으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여튼 관악 집(서울대 관악캠퍼스를 뜻합니다) 곳곳에서 벌어진, 운동 노선과 조국의 갈 길을 놓고 최고의 젊은 지성들이 집결하여 벌어진 논쟁과 고민이란 그 자체로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의 부제 중 한 어구로 쓰이기도 했지만,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 씨는 한때 NL의 정신적 지주 중 한 분으로 널리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랬던 분이 직접 북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에는 그 입장에 극적 선회가 이뤄져 찬반 양 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죠.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한데 박노해 시인의 경우도 "1990년대에 태어났다면 서태지가 되었을 것이다." 같은 발언을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이게 메시지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속에서 하는 바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여튼 과거 혹심한 권위체제의 탄압 속에서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소중한 일생을 망치거나 귀한 몸 걸레짝이 될 각오를 하고(그 당시 책에 나오는 표현이더군요) 목숨 건 투쟁을 벌인 이들의 공적은 존중되어야 하며, 안기부의 칠성판과 써니텐 세트가 다 없어진 지금 맘 편하게 입만 갖고 할 수 있는 민주화 운동의 난이도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책에는 서강대 박홍 총장(당시)에 대해서도 긴 언급이 있습니다. 이분은 사실 1990년대 중반에 화제가 된 인물인데, 한겨레 등 진보 매체에서는 날마다 그의 발언을 놓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으며, 반대로 보수 언론에서는 구국의 소신파라며 열렬하게 칭송했죠. "주사파"라는 단어를 대중에게 코인시킨 계기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책에서도 지적하듯 사노맹은 PD 계열이지 NL(그토록 대립하던)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팩트 인식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게 확실합니다. 이 박 총장의 당시 발언과 행적이 과연 보수진영에 도움이 되긴 했는지, 반대로 희화화와 풍자의 대상이 되어 이후 90년대 학번이 사회로 본격 편입한 후 좌편향하는 데 일조를 했는지는 살펴봐야 할 과제입니다. 당시에는 주로 서강대생들을 중심으로 "빠콩" 같은 멸칭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는 등, 그리 호의적인 분위기가 못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첵에는 역사 공부의 텍스트로써 1980년대에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이후 1990년대에는 소위 "다현사"가 널리 읽히게 된 배경도 밝히고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만 <해방 전후사...>는 논문 모음이기 때문에 필자의 입장도 천차만별이라 어떤 일관된 관점이 부족합니다. 대신 독자가 알아서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지적인 맛이 있죠. 반면 다현사는 한 명의 저자가 선명한 주제를 제시해 가며 결론을 명확히 찍어 놓고 쓴 책이라서 "엘리트 중심이 아닌 대중적인 호응"을 얻어냈다는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었습니다.

이른바 "품성론" 분석도 지금 보면 흥미롭기 짝이 없습니다. 본디 (소위)주체사상에서 품성론이란 방계 논의나 여담에 지나지 않는데, 김일성에 대한 맹종을 강요하는 주체사상의 본론에는 시큰둥하던 이들이, 인간의 도리와 바른 범절, 의리를 중시하는 이 품성론에 대해서만은 열렬한 호응을 보내어서, 뜻하지 않게 NL의 세 확산에 도움이 되었다는 뒷이야기입니다. 오해에서 비롯하긴 했어도, 정말로 북에서 고안한 주체사상이 "풍성론"에 큰 방점을 찍은 품격 높고 포용적인 체계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마 북도 행복해지고 남에서 제한적으로 그에게 동조했던 이들도 훨씬 떳떳하고 뿌듯했을 텐데 말입니다.

NL과 PD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에서 벌어진 모 사건 과잉수사 이슈를 놓고, NL에서는 PD 측이 도와주지 않았다며 내내 서운함을 표시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조직문화를 놓고도, PD 쪽은 다분히 서유럽식 사민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NL은 한국적인(?) 의리와 연공 서열을 중시하는, 투박하고 획일적인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특정 젊은 세대 전체를 휘감고 장악했던 이 두 사조와 (현재적) 실재가, 어떻게 발전적, 변증법적으로 화해와 통합을 이룰지, 아니면 과거의 미숙한 에고에 갇혀 시대에 뒤떨어져가며 사멸할지는 그들의 쇄신 노력에 달렸다 하겠습니다. 역사의 선택이 전자 쪽이라야, 그들 자신이나 밖에서 관찰하는 국외자들에게나 "해피 엔딩"이 아닐까 생각해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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