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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을 망친 자본주의 - 역사학자가 파헤친 환경 파괴의 시작과 끝
마크 스톨 지음, 이은정 옮김 / 선순환 / 2024년 11월
평점 :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혁신과 번영을 가져왔지만 그 이면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낳았습니다. 환경파괴, 인간소외, 빈부격차, 기존 정신적 가치의 타락과 퇴조 등 일일이 손에 꼽을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자본주의의 가장 큰 기여인 경제성장조차, 앞에 열거한 각종 부작용들 때문에 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해 깊은 회의가 제기되는 지경입니다. 저자 마크 스톨 박사는 인류의 지난 역사를 개관하며 무엇이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았으며,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될 갖가지 곤경을 어떻게 타개할 방법은 없겠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alternative)은 혹 무엇이 있을지 등의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분업의 기적은 애덤 스미스가, 무역의 편익은 데이비드 리카도가 자신들의 고전 경제학 저서에서 매우 완성도 높게 각각 논증한 바 있습니다. 베네치아와 제노아는 각각 이탈리아 반도의 오른쪽, 왼쪽 깊은 코너에 깊숙이 자리하며, 지중해 무역을 통해 운반된 물품들이 유럽 대륙에 상륙하는 최요지로서 큰 번영을 누린 도시국가들이었습니다. 저자 스톨 박사는 스미스와 리카르도가 고전 경제학의 기초를 닦기 훨씬 이전부터 이 나라들이 고도의 제조업과 무역업을 발전시켰는데, 다른 나라가 아직도 중세적 질곡에 신음할 때 이들은 벌써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놀랄 만큼 갖춰 가는 중이었다고도 주장합니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분화(p63)도 이미 이때부터 태동되었다는 게 박사의 주장입니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에도 나오듯 원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서로 잡아먹으려 으르렁대던 앙숙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체급 차이는 워낙 컸고, 스코틀랜인들의 진정한 현명함은 잉글랜드가 해양 제국을 건설해 감에 따라 그 영향권 하에 자발적으로 편입(p116)되어 번영의 큰 몫을 함께 누리려고 일찍부터 결심을 굳혔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엘리자베스 1세 국왕이 통크게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를 브리튼 전체의 주권자로 그 후계를 긍인해 준 결단에서도 일부 원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비록 스코틀랜드의 상인층과 귀족, 왕족의 이해관계, 공유문화가 크게 달랐다고는 해도). 책에서는 이렇게 중근세, 근대의 역사를 짚으면서도, 제조업이 고도로 발달한 곳에 반드시 독성물질에 의한 환경오염이 필연적으로 따랐음을 서술하며, 자본주의가 포태했던 이 역사적 원죄 패턴에 예외가 거의 없음을 지적합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3명의 대가(大家)로 제번스, 칼 멩거, 레옹 발라를 보통 꼽습니다. 그런데 이 책 p182에서도 지적하듯, 심지어 그 제번스조차도 자신의 활동 시기인 19세기에 벌써 "현재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반성 없이 계속되면 미래 세대가 쓸 자원이 부족해진다"고 내다보았다는 점입니다. 현재 신고전파를 계승한 진영과 정반대되는 쪽에서 친환경 담론을 생산하는 상황을 볼 때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19세기 중반의 자원보존운동(conservation of resources)에 대해 간략히 짚으며, 이런 움직임이 현대에 들어 비로소 활성화한 게 아니라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의 해악이 현실화한 때에는 예외 없이 이런 자성과 경계의 거센 반작용이 있었음을 예리하게 귀납합니다.
일단 관개시설이 갖춰지고 1차 산업의 기반이 마련되자 북미대륙은 전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 부상할 자격을 여실히 즘명해 보였습니다. 여기에, 2차 산업혁명이 철도, 철강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오자, 미국은 자본주의 발전의 중추지대로 확고히 자리잡았습니다. 노예노동, 플랜테이션이 이끌던 농장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로 전환하고, GM, 포드는 미국인들의 일상에 개인용 자동차를 보급하면서 1920년대 이 흐름의 중핵으로 떠올랐습니다(p220).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지적을 하는데, 이 거대 자동차 메이커들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상징하는 1차 산업혁명,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대표하는 2차 산업혁명 등이 주도한 산업자본주의 단계를, 이 책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소비자본주의 단계로 전환했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본주의 발달에는 "여성의 적극적인 소비 참여"도 한몫했음을 또한 빠뜨리지 않고 짚습니다.
p266 이하에서는 소비자본주의의 세계화를 규정하며, 1990년대 동서냉전 종식과 함께 도래한 세계화의물결이라는 게, 사실은 이미 1960년대 운송혁명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을 저자는 부각합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소비주의와 소비자본주의를 엄격히 분별하는데, 평소에 쓰지 않던 물건을 새로이 입수해 써 보려는 경향이야 인간의 본성이지만, 소비자본주의는 빨리 쓰고 빨리 버리는 행태를 자본주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 무서운 함정, 자본주의의 말기적 행태를 가리킵니다. 동유럽 사회주의권에는 소비주의(consumerism)이 침투하여 망했고, 이제 전세계에는 소비자본주의의 마각이 골수까지 퍼져 인간 생전의 보루를 좀먹습니다. 우리들도 이제 발상과 행동의 대전환을 꾀해야 할 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