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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같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김현진 지음 / 우리학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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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 재밌음. 처음으로 읽은 김현진의 소설이고 이 책에 반해 ‘네 멋대로 해라‘까지 읽게 됐다. 90년대,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고민의 범주가 친구, 아니면 이마에 난 여드름, 아니면 공부까지 였던 그때 그시절, 가끔씩 그립기는 해도 다시 돌아가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것 같은 그 시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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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도둑맞은 가난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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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열 네살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박완서의 책을 집었다.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제목에 잠깐 호기심이 일었을 뿐.

문학에 대해선 난 순 백지상태였다.

생각해보면, 내 생에 '문학'이란 두 글자를 처음 새긴 사람은 '박완서'였다.

그 뒤로 박완서의 모든 전집을 돌파하고

수능 하루 전날마저도 그녀의 소설을 놓을수가 없어 숨죽여 읽고

떨리는 대학교 면접실에서도 '난 박완서를 존경한다' 고 당당히 밝혔다.

직장인이 된 후에도 그녀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녀지만, 나는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제대로 한 적 없다.

나의 문학관은 그녀에게 빚진 게 참 많다.

 

여하튼, 열 네살의 나는 엄청난 미래를 당연히 모른채, 

그저 무심코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책을 읽었다.

박완서와의 첫 만남이었다.

 

 

 

 

박완서가 1975년 발표한 ‘도둑맞은 가난’엔 가난에 찌든 어린 여공이 등장한다.

억척스럽게 동거남 상훈을 먹여살리며 가난에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상훈은 단지 호기심에 가난 체험에 나선 부잣집 대학생이었다는 반전.

그는 여자의 질긴 생활력과 억척을 비웃으며 훌훌 떠나버린다.

여자는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가난'을 도둑맞는다.

 

“부자들이 가난을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짧은 글이 투척한 여운이 상당했다. 

가난을 이해할리 없는 여중생의 마음에도 알 수 없는 여운이 먹먹하게 맴돌았다. 

박완서의 소설에는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깊은 뼈대와 재미난 구성, 예스러운 모국어 사용, 너무나 마침맞아 쾌감이 도는 적절한 표현 등) 

 

그녀의 소설의 가장 큰 선물은 '여운' 이라고 생각한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고, 자꾸만, 끊임없이 머무른다.

가슴 깊은 곳, 어느 구석 한 켠에, 계속 맴돌며 잊혀지지 않는다.  .   

 

 

 그 뒤로 계속 박완서의 훌륭한 작품들을 도서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커다란 행운과 축복이었다. 이제까지 읽었던 작품들을 박완서 콜렉션처럼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앞으로 그녀의 작품을 하나하나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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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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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 왜 살아가나?

의심을 하는 순간,

당연하기만 했던 일상이 뒤흔들렸다.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의미심장한 문장과 함께,  한 남자가 실종되는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교사였던 남자는 취미로 해안가 모래 언덕에서 곤충을 채집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자 마을 사람들에게 하룻밤 묵어갈 곳을 물었고, 개미집처럼 모래 구덩이 속에 있는 집에서 머물게 된다. 남자는 줄사다리를 타고 여자 혼자 사는 모래 집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남자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뀐다.

 

 

 이 집에 혼자 사는 여자는 집이 모래에 잠기지 않도록 매일 밤 흘러내리는 모래를 삽으로 파내는 일을 했다. 정숙하면서도 묘한 색기를 풍기는 여자. 다음 날 남자는 자신이 구멍 속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자는 몇번이나 탈출을 계획하다가 번번히 실패하게 되고 모래 집 속에 갇혀 의미없이 살았던 일상을 되짚는다. 의미없던 일상으로 되돌아 가려는 노력을 해보지만 번번히 탈출에 실패한 남자는 결국 탈출을 미룬다.

 

 전후 대표적인 일본 작가로 꼽히는 아베 코보는 사막과 환경이 비슷한 만주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사막적인 풍경’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있다고 밝혔다. (작가는 역시 자신이 동경하는 이미지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스무살 때 우연히 이 책을 읽고 강력한 이미지에 압도당했다. 내가 사막에 와 있는 것처럼 콧속에 축축한 모래 냄새가 났고 진흙처럼 곱고 찰진 모래가루를 음푹, 집어든 것처럼 묘한 기분이었다. 자잘한 모래가루로 도금한 것처럼 모래를 뒤집어 쓰고 잠이 든 여성의 에로틱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남자가 탈출을 할지, 안할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책 한권 읽었을 뿐인데 시공간이 뒤흔들리고 촉감이 반응했다. 그래서 각색수업 때 이 작품을 망설임 없이 선택해 시나리오로 각색했다.

 

 한 남자가 모래 구덩이 속에 갇혀 끊임없이 노역을 해야만 하는 이야기일 뿐인데, 이 작품은 오랜 시간 잊혀지지 않고 내게 머물렀다. 사막 속 모래 구덩이 집이라는 기묘한 공간, 여자와 한 공간에 갇힌 에로틱한 설정, 남자가 탈출 시도 과정에서 주는 흥미진진함. 이 세가지에 빠져 소설을 정신없이 읽다 보면 어느덧 '삶의 모순'과 '자유의 의미'와 마주한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당시 일본은 전후 불안한 현실 속에서 전체주의라는 틀에 맞춰 일원 속 하나로 살아가야 했다.삶의 모순, 부조리, 억압된 자유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사막이라는 공간을 빌려 표현했던 것이리라. (전쟁 후 그런 생각을 가질만한 여유가 있었나보다. 그로 인해 삶이 아작나버린 타국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 생각할 여유도 없이 괴로움에 몸부림 쳤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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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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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은 나의 스물 한 살이다.

나의 스물 한 살은 <인간실격>이었다.

타오르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청춘이 버거웠던 

스물 한 살, 당시 나의 악취미는 '관음증'이었다.

악취미처럼 비뚤어지고 뒤틀린 자의 내면을 엿보고 싶었다.

참혹하게 일그러진 누군가의 생을 보며 기묘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뒤틀리고, 비뚤어졌는지,

무엇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지 세상이 알아주길 바랐다.

 

 

어느날 갑자기 주어진 청춘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틀에 박힌 대학공부는 기대와 달랐다.

특별한 일이 가득할 것 같은 스무살 이후의 삶은

의외로 평범했고, 심지어 아프고 지루하기도 했다.

슬슬 미래에 대한 걱정이 처들어와서 숨이 막혔다.

'어라, 이게 아닌데... 이럴리가 없는데'

나는 황당한 얼굴로 청춘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내겐 청춘을 감당할 힘이 없는게 아니라

청춘을 감당할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내게도, 청춘은 처음이었으니까.

 

동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다자이 오사무'는

못나고 어리석었던, 내 청춘의 단면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自分には、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当つかないのです。

 

'죽고 싶어 견딜수가 없다는' 그의 생각들이

허세와 자의식으로 무장한 내게는 영웅처럼 빛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치졸하고 비겁하게 내 안으로만

숨으려고 했던 청춘의 일면을 들킨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병약하고 감수성 여린 요조에게 세상은

도저히 진입불가한 벽으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요조는 제대로 된 사랑이나 이해를 받은 적 없다.

'사랑'이란 말은 요조에게 사용 불가능한 단어일 뿐.

 

아픈 어머니와 권위적인 아버지.

요조에게 관심없는 형제들, 몹쓸짓을 하는 하녀들.

인간에 대해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던 요조는

어린 나이에 인간과 세상의 무시무시함을 일찍 알아버렸다.

그런 요조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자신과 남을 속이며 익살을 떠는 것.

그는 본심을 감추고 익살스런 흉내를 내보며 다가가지만

 도저히 발 딛을 수 없는 세상에 좌절감을 느낀다.

 

이 좌절감은 그의 생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에게 세상은 치명타, 내려놓아야 할 짐, 요괴. 불안. 암흑.

술, 담배, 여자로 피폐한 삶을 살다가 여자와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죽지 못해 살아 남은 후에도 자살미수, 음주, 마약으로 타락한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이미 인간의 자격을 잃었음을 깨닫는다.

 

 

<인간실격>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 사회가

맞닥뜨려야 했던 무력하고 황량한 시대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참혹한 전쟁 패배 앞에 인간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자조하는 분위기에서

이 소설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일그러진 쾌락을 주었던듯 하다.

패전 후의 암담한 현실이 불러온 세계관의 붕괴, 윤리관의 혼란.

참혹하게 망가려가는 청춘의 퇴폐 소설인 <인간실격> 통해

일본의 청춘들은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했던 것이다.

 

 

"인간실격(人間失格).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이 문구를 읽고

소위말해 어찌나 간지(?)나던지.

청춘을 표현하는 최고의 문장이라고 생각했고

한동안 다자이오사무 문학에 심취했다.

그 때 난 스물한살 문예창작과 학생이었다.

 

5년 후,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자의식, 이기심, 자존심이 전부라 우울하다 징징거렸던 내가

생계를 위해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쓰고 세상 한 가운데 있더라. 

나름대로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보려 애썼으나

결국은 모든 것으로부터 배반당한 패배자 요조와 다르게..

 

 

나는 패배자가 아니었다.

 

 

두렵고 무시무시한 세상으로 들어와

요괴같이 허위의 가면을 쓴 인간들과 어울려

나름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었다.

요조처럼 무너지며 실격 당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으나,

어찌되었든 버텨내고 참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더이상 스물 한 살 치기어린 청춘이 아니었다.

내 삶, 나의 꿈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간실격을 다시 읽었다.

처참하게 무너지는 처참한 청춘이 보기 버거워 힘들었다.

이상했다. 한 때 인생도서라 여겼던 책이 지금은 읽기 버겁다.

요조가 가엽고 어리석다.

나는 <인간실격>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며

책장을 덮었다.

 

"안녕, 요조. 나의 청춘이었던 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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