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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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 왜 살아가나?

의심을 하는 순간,

당연하기만 했던 일상이 뒤흔들렸다.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의미심장한 문장과 함께,  한 남자가 실종되는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교사였던 남자는 취미로 해안가 모래 언덕에서 곤충을 채집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자 마을 사람들에게 하룻밤 묵어갈 곳을 물었고, 개미집처럼 모래 구덩이 속에 있는 집에서 머물게 된다. 남자는 줄사다리를 타고 여자 혼자 사는 모래 집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남자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뀐다.

 

 

 이 집에 혼자 사는 여자는 집이 모래에 잠기지 않도록 매일 밤 흘러내리는 모래를 삽으로 파내는 일을 했다. 정숙하면서도 묘한 색기를 풍기는 여자. 다음 날 남자는 자신이 구멍 속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자는 몇번이나 탈출을 계획하다가 번번히 실패하게 되고 모래 집 속에 갇혀 의미없이 살았던 일상을 되짚는다. 의미없던 일상으로 되돌아 가려는 노력을 해보지만 번번히 탈출에 실패한 남자는 결국 탈출을 미룬다.

 

 전후 대표적인 일본 작가로 꼽히는 아베 코보는 사막과 환경이 비슷한 만주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사막적인 풍경’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있다고 밝혔다. (작가는 역시 자신이 동경하는 이미지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스무살 때 우연히 이 책을 읽고 강력한 이미지에 압도당했다. 내가 사막에 와 있는 것처럼 콧속에 축축한 모래 냄새가 났고 진흙처럼 곱고 찰진 모래가루를 음푹, 집어든 것처럼 묘한 기분이었다. 자잘한 모래가루로 도금한 것처럼 모래를 뒤집어 쓰고 잠이 든 여성의 에로틱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남자가 탈출을 할지, 안할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책 한권 읽었을 뿐인데 시공간이 뒤흔들리고 촉감이 반응했다. 그래서 각색수업 때 이 작품을 망설임 없이 선택해 시나리오로 각색했다.

 

 한 남자가 모래 구덩이 속에 갇혀 끊임없이 노역을 해야만 하는 이야기일 뿐인데, 이 작품은 오랜 시간 잊혀지지 않고 내게 머물렀다. 사막 속 모래 구덩이 집이라는 기묘한 공간, 여자와 한 공간에 갇힌 에로틱한 설정, 남자가 탈출 시도 과정에서 주는 흥미진진함. 이 세가지에 빠져 소설을 정신없이 읽다 보면 어느덧 '삶의 모순'과 '자유의 의미'와 마주한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당시 일본은 전후 불안한 현실 속에서 전체주의라는 틀에 맞춰 일원 속 하나로 살아가야 했다.삶의 모순, 부조리, 억압된 자유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사막이라는 공간을 빌려 표현했던 것이리라. (전쟁 후 그런 생각을 가질만한 여유가 있었나보다. 그로 인해 삶이 아작나버린 타국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 생각할 여유도 없이 괴로움에 몸부림 쳤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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