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도둑맞은 가난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6년, 열 네살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박완서의 책을 집었다.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제목에 잠깐 호기심이 일었을 뿐.

문학에 대해선 난 순 백지상태였다.

생각해보면, 내 생에 '문학'이란 두 글자를 처음 새긴 사람은 '박완서'였다.

그 뒤로 박완서의 모든 전집을 돌파하고

수능 하루 전날마저도 그녀의 소설을 놓을수가 없어 숨죽여 읽고

떨리는 대학교 면접실에서도 '난 박완서를 존경한다' 고 당당히 밝혔다.

직장인이 된 후에도 그녀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녀지만, 나는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제대로 한 적 없다.

나의 문학관은 그녀에게 빚진 게 참 많다.

 

여하튼, 열 네살의 나는 엄청난 미래를 당연히 모른채, 

그저 무심코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책을 읽었다.

박완서와의 첫 만남이었다.

 

 

 

 

박완서가 1975년 발표한 ‘도둑맞은 가난’엔 가난에 찌든 어린 여공이 등장한다.

억척스럽게 동거남 상훈을 먹여살리며 가난에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상훈은 단지 호기심에 가난 체험에 나선 부잣집 대학생이었다는 반전.

그는 여자의 질긴 생활력과 억척을 비웃으며 훌훌 떠나버린다.

여자는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가난'을 도둑맞는다.

 

“부자들이 가난을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짧은 글이 투척한 여운이 상당했다. 

가난을 이해할리 없는 여중생의 마음에도 알 수 없는 여운이 먹먹하게 맴돌았다. 

박완서의 소설에는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깊은 뼈대와 재미난 구성, 예스러운 모국어 사용, 너무나 마침맞아 쾌감이 도는 적절한 표현 등) 

 

그녀의 소설의 가장 큰 선물은 '여운' 이라고 생각한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고, 자꾸만, 끊임없이 머무른다.

가슴 깊은 곳, 어느 구석 한 켠에, 계속 맴돌며 잊혀지지 않는다.  .   

 

 

 그 뒤로 계속 박완서의 훌륭한 작품들을 도서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커다란 행운과 축복이었다. 이제까지 읽었던 작품들을 박완서 콜렉션처럼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앞으로 그녀의 작품을 하나하나 기록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